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야 Feb 02. 2022

배꼽 빠질 뻔한 동그랑땡의 실체

진정 실수인가

전원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후 막내인 남동생이 휴무면 먼 걸음을 해줘서 참 좋다. 병원에서 근무하니 가장 힘든 요즘이다. 집에 왔다가 갈 때면 밑반찬이라도 싸 보낼 수 있으니 세상 행복하다. 받는 거보다 주는 게 익숙했던 삶인데 현업을 정리하고 자연과 함께 하니 여유로운 마음까지 담아 줄 수 있음에 더 감사하다.


남동생이 미혼이다 보니 명절은 거의 근무를 도맡아 한단다. 이틀 정도 연이은 휴무이면 좋으련만 명절 밑에 휴무가 하루밖에 없으니 오라 가라 하기도 애매하다. 애매하지만 밀어붙인다.


"휴무가 하루라 왔다 가기 힘들어도 반찬 가지러 간다 생각하고 무조건 와. 그래야 내가 맘이 편하지."


내 욕심일 수도 있는데 그 욕심을 채워주러 동생이 온단다. 참 착한 동생이다.


자그마치 명절 5일 전 아침에 미리 설날 아침상을 차리고 설날 아침에 한번 더 상을 차릴 생각에 식재료의 반은 남겨둔다. 그렇게 동생과 함께 미리 설날 아침상을 맛보고 설날엔 혼자 차려 먹으라고 음식을 싸 보냈다.


설날 아침이다.

전날 나이트 근무라 아침에 퇴근하자마자 아침을 먹을 테니 남동생에게 문자를 보낸다.




문자를 보낸 지 얼마 후 우리 집보다 더 일찍 아침을 먹은 동생이 보낸 인증샷이다.

"우와~~~벌써 먹었구만 좋으넹!"



기분이 업이라니 내 어깨가 벌써 천정에 척 붙었다.



잘 챙겨 먹었다니 그거면 됐다.







우리 집 설날 아침상을 차린다. 갈비찜 남은 것을 기어코 설날 전날 바닥을 본 바람에 메인인 갈비찜이 안 보인다. 있는 대로 꼼지락꼼지락 아침상을 차려놓으니 홍 집사(남편)가 깜짝 놀란 모양이다.


"오잉~~~ 아니 무슨 차례도 제사도 없는 명절상을 이리 차렸수?"
"갸(동생) 왔을 때랑 똑같쑤! 두 번 먹을 뿐!"

"떡국이나 먹을 줄 알았는데 이런 감동일세!"

"아니~~~ 집 짓느라 고생했으니 입주하고 첫 설날 아침에 한번 제대로 차려주고 싶어서리 ㅋㅋ맛나게 드슝!"


맛이야 어떻든 홍 집사가 완전 감동 먹었나 보다. 사진을 찍어 아들에게 보내주겠다며 식탁의자에까지 올라가 난리다.

'찰칵찰칵' 소리에 나도 모르게 씩 웃음이 난다. 그런데...


"아아아아아 잠깐! 아궁 빼먹은 게 있넹. 동그랑땡 ㅋㅋㅋ 아구야 냉동실에 있는데 깜박! 우야노~

흠... 걍 사진만 찍을까나 ㅋ 내가 완전 열심 만든 거라 뺄 수가 없네. 사진 찍고 점심에 먹자."


깜박한 동그랑땡까지 올려 사진을 찍는다. 한바탕 깔깔 거리며 아침을 먹고는 상을 치우고 있는데 어느새 홍 집사가 아들에게 아침상을 찍은 사진을 보낸 모양이다. 홍 집사가 아들과 영통(영상통화) 중이다.

멀리서 들으니 부자간에 통화내용이 뭔지 요란하다. 그럼 그렇지 장난 쟁이 홍 집사가 그냥 넘어갔을 리가 없다.


아들에게 사진 관련 퀴즈를 낸 것이다.



'상에서 다른 한 가지 음식을 찾으라'는 퀴즈를 낸 것이다.

으그~~~


(아들과 아빠- 오타: 위 상에서 ~~~}


아들: 다른 거? 뭘까나? 음... 생선이 날 거? ㅋㅋㅋ

아유 그 아들 아니랄까 봐 한 술 더 뜬다.

엄마(나): 마! 내가 설마 날생선 올렸거써ㅋㅋㅋ.


깔깔거리다 아들이 결국 두 번째 답을 던진다.

"동그랑땡?"

뭔가 색깔이 다르단다. 귀신같은 눔!


아들이랑 한바탕 웃고 났는데 2탄이 터졌다. 친구 같은 막내 이모에게 새해인사차 통화를 하던 중 홍 집사를 바꿔줬더니 어쩌고저쩌고 하더만 사진을 또 보낸다. 이번엔 이모에게 보낸 것이다.



시작은 칭찬세례로 시작하는듯하지만 행여 그럴 리가 있나. 바로 퀴즈로 이어진다.

'에라이ㅋ'



(막내 이모와 홍 집사)


아주 이모랑 조카사위랑 신이 났다. 그런데... 여기서 된장!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더니 딱 이모다.




마이 웃었다는 이모의 문자를 보니 새해 첫날부터 기분이 좋다. 올해로 100세를 맞이하신 시어머님 삼시 세 끼를 차려드리고 있는 이모다. 지난 3월에 다시 아들 집으로 오셨으니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하도 까탈스러운 성격이라 딸 중에 누구 하나도 달랑 반나절도 모셔가지 않겠다는 어르신이다. 그런 시어머님을 모시는 이모는 코로나 이후 단 하루도 밖에 나가지 않고 어머님과 함께 하고 있다. 집을 지은 조카집에도 한 번 오지 못했다. 1박을 하다가 큰일이라도 생김 안된다는 이모의 말에 반박을 할 수 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초긍정 유전자 덕분에 이모는 항상 까르르까르르 웃는다.

홍 집사와 막 카톡을 끝낸 이모의 문자다.



이모가 실컷 웃었다니 그거면 됐다. 실수인지 그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동그랑땡의 실체가 '기승전웃음'을 선물하니 그거면 됐다.


"아우 진쫘 놔~ 이런 못 말리는 유전자들 ㅋㅋㅋ"


오늘은 땡땡 얼은 동그랑땡 덕분에 배꼽 빠질 뻔한 새해 설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사음식 깎는 거 아니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