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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Mar 08. 2022

<책 리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4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 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 꽃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https://youtu.be/GYIowFwBfVk





베르테르를 처음 만난 것은 15살

책이 아닌 가곡을 통해서였다.

박목월의 시가 가곡으로 만들어졌다는 설명과 함께


가사 속의 "베르테르의 편지"가 궁금하던 차에

담임 선생님의 방에 있던 세계문학전집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냉큼 책을 빌려와 읽었다.



당시 짝사랑이자 첫사랑이

마음속에 움트고 있을 때라

베르테르의 애타는 사랑이 담긴 구절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200년 전, 독일에 살던 25살 남자,

나보다 10살 많은 어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리고 자살,

15살 소녀에게는 활자만 읽었어도

 근사해 보이는 소설이었다.


나의 첫사랑이 시작되었으나.

 쉬이 끝나지 않았다.

상대는 분명 있었으나,

분명한 것은 상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는다는 것이

마치 어른의 세계에 다가간 듯했고

금기된 세상에 발을 내딛는 기분에

더 흡족했었다.

몰래 엄마 루즈를 입술에 바른 느낌처럼.


피어오르는 감정들을 상대에게 내보일 용기는 없었으므로

그때부터 종이에 감정을 쏟아 내는 법을

베르테르에게 배웠다.





아아, 이렇게 벅차고 이다지도 뜨겁게 마음속에 달아오르는 감정을 재현할 수 없을까?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대의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인 것처럼

종이를 그대 영혼의 거울로 삼을 수 없을까?

14쪽



아직까지 말보다 글이 편한 이유는

빈 종이가 주는 한없는 너그러움 때문이다.

머뭇거림도, 주저함도 기다려주고

엉성함도, 어설픔도 참아주고

분주함도, 성급함도 잡아주고

눈물도, 한숨도 품어주기에.


첫사랑은  나의 감정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었다.

그때부터 모아 두었던

일기, 편지, 다이어리, 쪽지, 낙서

그 낱장의 기록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내 아이들과 같은 또래인

25살의 청년 베르테르를 다시 만났다.


청년 베르테르를 다시 만나고

소녀였던 나를 다시 만났다.


첫사랑의 흔적은

빛바랜 일기와 편지로 남아있지만

인간의 생로병사를 차례로 겪은

나는 이제 어른이었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1774년 작품으로

 24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대명사,

혹은 [베르테르 효과 ]를 불러온 불멸의 고전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청년 시절

약혼자가 있는 샤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면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고,

이후 친구 예루살렘이 남편이 있는 부인에게 연정을 품었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14주 만에 완성한 서간체 작품이다.


괴테가 살던 18세기 후반,

엄격한 형식과 결과를 중시하여,

합리적인 이성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고

그에 반해 젊은 세대에서는

감정 해방, 개성 존중을 주장하는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 운동이 일어났던 시절이었다.

괴테는 이 시대를 관통하면서

베르테르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르테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낭만적이며, 목가적인 취향으로

기존 체계와 권위를 벗어버리고 싶은 열정 충만한 문학청년이었다.


       

영화 괴테에서는 괴테와 베르테르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그려내었다


    

베르테르에게 있어 사랑은  자신을 맘껏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고,

서로의 문학적 소양을 알아본 로테는 자신이 추구해야 할 자아실현의 목적지였다.

그러나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사랑하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일이지만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로테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삶의 목적을 잃은 베르테르는

로테를 처음 만나던 날 입은 푸른 연미복에 노란 조끼를 입은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내게는 내 마음만이 유일한 자랑거리이며,

오직 그것만이 모든 것의 원천, 즉 모든 힘과 행복과 불행의 원인이다.

아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

129쪽



사랑은 상대에게 내 마음을 내보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마음에 집중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순탄치 않은 사랑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마음에 몰입하게 된다.


인간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일까?

동서고금, 지휘 막론하여

사람은 사랑 안에서 살아 숨 쉰다.


사랑의 색깔과 온도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고,

삶이 충만하거나 피폐해지기도 하고

삶의 행불행에 이르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읽은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에서는

성숙한 사랑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진실한 사랑은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닌

상대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되어줄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 순간에 태양과 달과 별들이 조용히 계속해서 돌고는 있겠지만,

나는 그때가 낮인지 밤인지를 가릴 수 없었다.

온 세계가 내 주위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47쪽 / 사랑에 빠진 베르테르






 독일인의  사랑은

달을 닮은 은은한 사랑이라 한다면

베르테르의 사랑은

태양을 닮은 뜨거운 사랑이었다.

베르테르의 사랑이 태양에 너무 가까웠을까?


청춘 시절, 사랑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사랑은

젊음의 닻이자, 젊음의 덫이다.

인생의 배를 정박시키기도 하고,

침몰시키기도 하기에.


베르테르의 자살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음으로서

불변 불멸한 사랑으로 남겼다.


요즘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

혹은 연인 살해라는

잔혹한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요즘 세태로 미루어보면

베르테르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해

상대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베르테르의 죽음이

단순히 사랑의 실패에 대한

회피와 도피가 아닌

시대의 엄격함과 경직성에 대한 저항이며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발로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킨 것이라 생각된다.




베르테르 나이의 곱절을 살다 보니

가까이에서 죽음을

여러 번 목격하게 되었다.


가까운 이의 자살이 몰고 오는 트라우마는

살아가야 할 남은 이의

생의 뿌리에 똬리를 튼다.

자괴감과 죄책감과 책임감의

여파는 생각보다 더 광범위하다.


자살이 충동적인 선택이거나

모방해서는 결코 안 될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어 택하는 길이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격정의 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삶의 목적과 이유가 생긴다.

다만,

청춘의 시간에는 그럴 여지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베르테르는

스물다섯 청년 그대로인데

나는 이제 엄마의 마음으로

베르테르의 사랑에 끄덕끄덕

베르테르의 고통에 토닥토닥

베르테르의 선택에 절레절레

어느새

진짜 어른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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