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2월 22일 독일에서 “자유여, 영원하라!”라는 단호한 외침을 남기고,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젊은이들이 있었다.
나치에 대항하여 뮌헨 대학교의 대학생들과 그들의 지도교수가 구성한 비폭력 저항 그룹이었던 백장미단의 실제 이야기를 숄 남매의 누이 잉게 숄이 저술한 작품이다.
1943년 2월 18일 한스와 소피 남매는 뮌헨 대학 구내에서 히틀러의 만행을 고발하고 독일 국민의 각성을 촉구하는 전단을 뿌리다 체포되었다. 숄 남매와 크리스토프는 국가반역죄와 이적죄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항소 절차 없이 곧장 형장으로 옮겨져 처형되었다. 단 나흘 만에
1차 세계대전 패배로 패닉 상태에 빠진 독일 국민들에게 위대한 조국 독일 재건의 기치를 내걸고 정권을 잡었던 히틀러와 나치당, 곤궁한 시절 독일 국민들은 일자리와 빵을 준다는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을 환영하며 너도나도 나치당에 가입했고, 어린 유소년들은 히틀러 유겐트에 입단했다. 지역 시장으로 평화주의자로 히틀러를 경계했던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숄 남매도 유겐트에 입단하게 된다. 비극은 여기서부터였을까?
어릴 적부터 나치 사상을 주입하고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심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히틀러 유겐트와 소녀단은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로 아이들을 감시, 통제했다. 나치의 폭압의 실체를 알게 된 한스와 소피는 히틀러에게 저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책에 실려있는 백장미 전단은 독일 국민들에게 히틀러의 만행을 알리고, 저항하기를, 저항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한다.
인류의 비극,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그 시대를 영화와 책과 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때마다 그 야만성과 잔혹성 그리고 집요함에 치를 떨게 된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 것에 놀라고, 그 피해의 범위가 너무나 광대한 것에 다시 놀라게 되었다. 타민족과 소수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뿐만 아니라 자국민들도 전쟁의 도구로 이용했다. 어린 소녀들에게 아리아족 번성을 위한 레벤스보른 정책을 강요하기도 했고, 자신들에게 저항하고, 불응한 이들은 가차 없이 제거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가 그 안에서는 모두 합의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동조하고 묵인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앞서 읽었던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한나 역시 무지몽매함이 원인이긴 하지만 한나 역시 나치 부역에 가담하고, 동조한 것은 사실이다.
백장미단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독일 국민 모두가 나치당 일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낸다. 또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와 자유를 외친 백장미단의 저항은 비록 소수의 외침이었지만, 깨어있는 이들의 의연한 외침으로 불행한 시대를 일깨우기 충분했다.
살다 보면 옳지 못한 일을 마주할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부당하고, 불가한 일들을 알고 있지만 개인의 목소리를 내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선뜻 댓글 달기도 망설여지기 일쑤이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 만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 더 나아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신념을 지키는 일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다.
혼란한 시대, 엄혹한 시대일수록 외면과 침묵으로 회피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암흑 같은 세상에 한스와 소피 같은 깨어있는 소수의 용기와 희생이 있었기에 인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독립투사들과 민주화 열사들의 소신과 헌신이 있었기에 독립과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권력 앞에 무릎 꿇린 무고한 이들의 헌신과 희생의 발판을 딛고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음은 동서고금을막론하고 자명한 사실이다.
시대의 제물로 희생된 가족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또 다른 가족의 아픔은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남겨진 가족들은 슬픔에만 갇혀 있지만은 않았다. 사건의 기록뿐만 아니라 고인의 유지를 계승하기 위해 기꺼이 행동하는 용사가 되는 경우를 목격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달 고인이 되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남은 가족들의 평생에 걸친 헌신으로 불의에 저항하는 그 힘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시민으로 발 딛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이유로 나와 무관한 듯해서,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이유로 주변과 사회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뒤돌아보았다.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충실히 따르는 일, 자신의 목소리를 제때 내는 일 이들의 행동이 모여질 때 시대는 변화하고 인간의 삶은 발전될 것이다.
한스와 소피의 짧은 인생은 책과 영화를 통해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