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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Feb 10. 2022

<책리뷰> 책 읽어주는 남자

시대를 잇는 사랑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는  감미롭고 로맨틱한 제목과는 달리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마음을 짓누르는 질문과 슬픔으로 한동안 마비 혹은 진공 상태를 겪었다.


법조인 출신의 작가가 쓴 소설은 세계 2차 대전의 쓰나미가 지난 후의 독일 배경으로 15세 소년 미하엘과 36세 여인 한나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우연한 만남은 15살 어린 미하엘에게 첫사랑이자, 일생의 깊고 어두운 그늘로 자리할 운명 만남이었다. 또한 이 만남은 남녀의 만남뿐만 아니라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의 만남으로 당시 독일 사회에서 전후 세대 간의 미묘한 갈등을 엿볼 수 있는 만남이었다.



미하엘이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던 한나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다. 그리움을 안은 채 성장한 미하엘은 8년 후 법대생이 된다. 그리고 전범자로서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선 한나를 만나게 되고 베일에 싸인 그녀의 실체를 알게 된다. 끝내 문맹임을 밝히고 싶지 않은 한나는 스스로 전쟁 중범죄자임을 자처하여 교도소에 장기 복역하게 되고, 미하엘은 자신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를 보낸다. 미하엘의 녹음테이프를 듣고 글자를 익히게 된 한나는 미하엘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미하엘은 답장하지 않는다. 한나는 출소 전날 자신이 모은 돈을 아유슈비츠 생존자의 딸에게 전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1920년 생인 한나는 문맹이라는 약점을 비밀로 지닌 채 홀로 전쟁의 시대를 관통해 살아왔다.  문맹이라는 것은 또 다른 이름의 방치이자 학대이다.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문자를 습득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무기이자 방패가 될 수 있기도 하고, 안정된 사회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는 탑승권이기도 하다.


 글을 모르는 채 살아간다는 일은 매일이 전쟁과 같은 삶이었을 것이다. 한나가 일상의 질서와 거리에 지나칠 정도로 엄격함을 유지한 것은 문맹자로서 살아내야 하는 자신만의 방어법이었다.


한나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울타리 안의 안온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했고,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생존에 내몰렸다. 홀로코스트라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았지만 한편으로 무지몽매한 시민으로 가담했던 전쟁통에서 헤어 나오기까지는 결국 자신의 일생을 바쳐야 했다.


15살에 연상의 한나를 우연히 만나게 된 미하엘은 일평생을 두고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약점은 충분히 이해하고, 그 비밀을 지켜주려고 했지만, 그 약점으로 인한 그녀의 과오를 용서하기까지 일생을 바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한 복판에서 강제수용소 감시원으로 일하면서 무고한 이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죄를 사이에 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전해 듣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고민하게 만든다.


무엇이 두 남녀의 일생을 뒤흔든 것일까?

한나는 전쟁의 중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것보다 문맹이라는 개인적인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지만 미하엘 도움으로 글을 깨우치고 나서 스스로에게 단죄를 내린다. 법정에서, 사회에서 준 벌을 달게 받은 후 자살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벌을 준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홀로코스트 작품들과 확연히 차이가 있었던 점은 이 작품은 전범국인 독일과 독일인 입장에서 나치와 그 부역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미하엘을 통해 전후세대의 죄의식과 부채감을 얘기한다. 과오에 대해 침묵하고 회피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준엄한 평가와 함께 진정한 반성을 요구한다. 이성이 마비된 이들이 주동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부역자들의 죄를 어떻게 바라보야야 할 것인가는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무사유한 아이히만과 무지한 한나가 생과 이별한 순간은 모습이 다른 것처럼 이 두 사람의 평가 또한 달라야 하지 않을까?


네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이 좋은 건지 알 수 있고

그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너는 당연히 그 사람이 그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해 주어야 한다.” (154쪽)


미하엘이 서먹한 아버지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을 때 아버지가 해 준 말이다. 미하엘의 입장에서는 첫사랑이자, 일생토록 영혼을 지배한 여인이었지만, 그녀의 죄에 대해 관대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도움으로 글을 깨우친 한나가 편지를 보내오지만 끝내 답장하지 않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교도소에서 만난 그녀에게 "교도에서 배운 것이 있냐고?" 물을 정도로 그녀의 죄에 대해 그녀가 반성했는지를 따져 묻는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해도, 그녀의 죄까지 사랑할 순 없었으므로.


 

한나와 미하엘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을까?


둘 사이를 가로막은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어 서로 성장했으며, 이해했고, 진실에 가닿는 인생으로 인도했기에 감히 전쟁의 참혹한 상처에서 피어난 또 다른 이름의 사랑이었다고 기억하고 싶다.

다른 두 시대를 뛰어넘은 것은 사랑이었다.



영화   <더 리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감독의 영리한 구성과 케이트 윈슬렛, 랄프 파인즈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중무장한 작품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소설이 주는 감동의 농도와는 확연히 달랐다. 소설에서 던져주는 묵직하고 깊은 질문이 영화에서는 축소되거나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우들의 표정과 말투, 배경이 어우러진 영상에서 녹아드는 슬픔과 안타까움은 손에 잡힐 듯 아슬아슬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를 여러 편 챙겨 보았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쉰들러 리스트>, <글루미 선데이>, <피아니스트> 등, 이 영화들을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토록 잔혹할 수 있다니,

그런 과거를 지닌 채 현재를 살아가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인류가 위대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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