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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Feb 08. 2022

생의 말뚝

박완서 <엄마의 말뚝>을 읽고

    

  아물었으되 피 흘리고 있음을, 딱지 앉았으되 곪고 있음을,
잘 차려입었으되 벌거벗었음을, 춤추고 있으되 몸부림치고 있음을
보고 느끼고 말하는 게 문학이 숙명처럼 걸머진 형벌이자 자존심이라면
잠시 한낱 비통한 가족사를 폭로한 것 같은 수치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박완서 작가가 《엄마의 말뚝 2》 작품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후 남긴 문장이다. 오래전 이 문장을 가슴에 새겨 두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문장은 내게 살아갈 힘이 되어 주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꿈을 잃고 방황하던 시절 등불이 되어준 문장이었다. 부모의 밑바닥 인생이 서럽고 안쓰러울 때마다 그 설움을 삼킬 수 있게 했던 문장이었다.


언젠가 내 슬픔을 토해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이름만으로도 작가로서, 어른으로서 위엄과 품격이 느껴지는 박완서의 삶과 작품들이었다.   


   

  더 이상 내일이 없다고 생각해 절망하고, 이 세상에 혼자뿐이라는 생각에 속절없이 무너졌을 때 유일한 도피처는 책이었다. 그때 읽었던 많은 책 중 <엄마의 말뚝>이 있었다. 작품 속의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엄마와 현실 속 유약한 내 엄마와 비교하면서 엄마를 많이 원망했었던 기억이 크다.


그런 강인한 어머니를 둔 작가가 내심 부러웠다. 당시엔 엄격하지만 한편으로는 든든한 엄마 그늘에 살짝 기대어 사는 삶이 차라리 포근해 보일 정도였음을 부끄럽지만 이제야 고백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부모를 여의고 6.25 전쟁 중 초등학교만 겨우 마친 아버지는 생존과 생계를 위해 광부의 삶을 선택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 이어서일까? 아버지는 <엄마의 말뚝 > 작품 속 엄마처럼 자식들의 교육에 열정이 남달랐다.


작품 속 엄마는 자식들이 근대화 시대에 합류시키기 위한 도전이었다면, 아버지는 자식들이 제도권 안의 안정된 삶에 안착시키기 위한 염원이었을 것이다. 대처를 향한 집념은 당신들의 희생과 헌신에 앞서 자식 세대에 대한 희망이자 기대였다. 그 밑바닥에는 본인 삶에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불행이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그 결핍과 불행은 결코 개인적인 원인이 아닌 식민지 시절과 전쟁이라는 지독한 몸살을 앓는 동안 순박한 개인의 삶과 행복이 거세당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00야, 공부 잘해서 서울대 가야지~”

  “서울대 가면 뭐가 좋아?”

  “그럼, 서울대 가면 여자들도 마음먹은 대로 뭐든지 할 수 있지”


아버지는 작가의 어머니가 ‘신여성’에 관해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대답을 해 주셨다. 자신의 목숨과 노동을 담보 잡혀서라도 자식들 교육과 미래를 위해 막장 인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 사대문 안에 삶의 거처를 마련하고 싶어 했던 작품 속 작가 어머니처럼 아버지 역시 서울에 문패를 달고 싶어 까끌까끌한 정부미를 먹고, 삼양 라면 2 봉지로 점심을 대신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맸다. 당시 이웃집에 흔하디 흔한 전축과 전화도 없는 궁색한 삶은 자식을 위해, 내일을 위해 미루어 두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22년 광부 생활로 모은 돈으로 구한 집은 성남 언덕배기 꼭대기 13평짜리 판잣집이었다. 옥상에 올라서면 더는 시야를 가릴 것 없이 탁 트였지만, 개미 떼처럼 줄지어 있는 판잣집들과 붉은 십자가가 마치 무기도 없이 성벽을 오르는 무모한 병사들의 행렬처럼 애처롭게 보였다.      


  아버지 말뚝의 새끼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백혈병의 발병으로 투병을 시작하면서 퇴직을 하셨다. 설상가상으로 가까이 지내던 지인이 아버지의 퇴직금을 들고 야반도주했다. 아버지는 무균실에서 투병 중 잠시 정신을 잃을 때면 돈더미에 파묻힌 동생을 꺼내라는 고함으로 가족들을 기함시켰다.


아버지는 성남시 00동 0000번지 13평 집에 본인 이름의 문패를 단 지 2달 만에 도시 땅에 발을 디뎌 보지도 못한 채, 염원하던 자식 교육은커녕 중고등학생 어린 4남매를 낯선 도시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50대 초반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땅을 파 내려가서 번 돈으로 장만한 거처는 언덕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우리 가족의 말뚝은 지하 깊은 갱도부터 언덕 꼭대기까지 수직으로 수백 미터 허공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졸지에 가장이 된 엄마는 낯설고 복잡한 도시 생태에 겁먹고, 주눅 들어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남동생 셋과 엄마와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버지의 말대로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의 병시중으로 미룬 대학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하자 엄마는 며칠째 답이 없더니 하루는 떨리는 손으로 검은 봉지를 툭 던지면서 두려움에 바짝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약 먹고 다 같이 죽자” 하셨다. 공부하는 것이 사치이고, 죽어야 할 이유가 되는 형편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아버지가 수없이 드나들었을 암흑의 갱도를 찾아 마음의 빗장을 닫았다. 그날 이후로 엄마와 나는 이 일을 지금까지도 서로 모르는 척 살아왔다.

     

  아버지의 부재와 엄마의 연약함으로 나는 소녀 가장으로 억척스럽게 도시 생활을 꾸려갔다. 작정하고 도망간 빚쟁이를 찾아다니고, 엄마의 일당을 대신 받으러 식당 주인과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동네 불량배에게 얻어터진 동생을 대신해 악다구니를 치고, 광부인 아버지의 알량한 월급에 예를 갖추다 아버지의 죽음 후 돌변한 친척과 울며불며 싸웠다. 잠시도 어깨를 내주는 법 없는 각박한 세상, 쉬운 거 하나 없는 세상살이를 견딜 수 있게 한 힘은 박완서 작가처럼 언젠가 한바탕 통곡으로 이 아픔을 글로 쓰리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차차 도시에 적응하면서 수시로 서러웠고, 고단했지만 못다 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며, 감사히도 지금은 도시의 소시민으로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세 아이에게 씩씩하고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며 살다 보니 어느덧 박완서 작가가 <엄마의 말뚝 2>을 집필하신 나이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문득 그 당시 읽었던 소설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로 자라온 환경과 체험 때문인지 경쟁사회, 개발 시대에서 소외된 삶에 관한 관심을 두고 지냈다. 빈부격차와 계급 차에 대한 불공정이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문제로 생각했다. 그러나 전후 세대로 그동안 이전 세대의 희생과 고통에 대해 가늠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작품 속 평범한 이웃 가족에서도 우리나라만의 오래된 비극인 분단과 이산의 고통이 아직 진행 중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충분히 극복해 내고 이겨낼 수 있었던 개인적인 시련을 더 크게 느끼며 투정 부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다시 읽은 《엄마의 말뚝》은 예전과 사뭇 다른 작품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간사함이란 읽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인가? 같은 소설을 읽었다는 기억이 무색할 정도였다. 미련스럽게도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상처를 가슴속에 동여매고 사느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작품 속 모녀의 고통에 뒤늦게 몸서리가 쳐졌다.


가족과 사별 후의 삶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더욱이 자식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작가의 마음은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다. 가혹한 운명의 장난인가? 작가와 어머니는 실제로 남편과 자식을 앞세운 참척의 고통을 동시에 겪어내다니 감히 예측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그 슬픔을 안고 살다 가신 그 인생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작가는 그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집필 활동을 멈추지 않으시고,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의 삶을 되살리고,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작품을 남겨 많은 이들을 위로하신 이 시대의 큰 어른이셨다.


  작가가 지금의 내 나이에 쓴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존경스럽다. 일제강점기 시절을 거쳐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온 엄마의 일생을 재탄생시킨 점이 더욱 그러했다.


 모녀라는 거리와 엄마라는 같은 이름으로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잔잔하고 담담하게 서술하다가도 문장 사이 얼핏 느껴지는 작가의 흔들리는 감정선이 오히려 더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엄마의 인생에 스며든 당시 혼란하고 불우한 시대 형편과 그로 인한 불행과 비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인으로서 변함없이 삶에 임하는 태도가 후세의 독자들에게 귀감이 된다.   

   

  작가가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듬고, 바라보다 품어내고, 당겨내고 끌어내며 결국은 서로를 위로하고 감당해내고 마침내 화해하는 아름다운 여정들이 이제야 또렷이 보였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채 부유하던 엄마의 삶에 선명한 말뚝을 되살리고, 그 삶의 가치를 빛나게 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한 사람, 바로 엄마였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회한의 그늘에 가려졌던 존재 그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식들을 오롯이 지켜내신 엄마였다.


여리고 고운 심성으로, 여자 혼자 몸으로 자식 넷을 지켜낸 시간이 아버지가 가정을 이끈 시간보다 오히려 더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마의 작은 어깨에 한껏 비비대며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이리 오랜 세월이 걸렸다.


엄마의 말뚝은 그렇게 소리 없이, 흔적 없이 가족의 삶에 스며들었다. 외롭고 고된 하루하루를 반복하면서도 결코 엄마임을, 인간됨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기에 나와 형제들은 허공에 뿌리내린 듯한 말뚝을 부여잡고 살아낸 것이었다. 그래서 그 말뚝은 이리저리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지 않았고, 뽑히지 않았다.    

  

 근대화, 전쟁, 분단국가, 이산가족, 이념의 대립 등 사회의 혼란은 개인을 비껴가지 않는다.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 고스란히 번져 들며 크고 작은 흉터를 남긴다. 현재 사회에는 차별과 불평등, 불공정과 같은 또 다른 이름의 혼란이 개인의 삶을 침범하고 있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은 분리될 수 없다. 땀 흘려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매일의 시간이 맺은 열매가 사회를 안정시키고,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작은 씨앗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전 세대의 헌신과 희생이라는 빚을 지고 사는 지금을 누리고 사는 우리 세대가 베풀어야 할 일은 다음 세대들을 보듬어 품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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