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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Apr 03. 2022

봄앓이

이성복 < 꽃 피는 시절 >

꽃 피는 시절 

                                         - 이성복 -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 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 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키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어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이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봄은 아프다

봄은 아름답다

기다리는 마음은 애달프고

지켜보는 눈은 시리다


사랑은 아름답다

사랑은 아프다

품고 있을 때 그윽하고

떠나보낼 때는 사무친다


기다림이 꽃망울로 터지고

그리움이 꽃비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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