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목가 ; American Pastoral > 1997년 필립 로스가 64세에 발표한 작품으로 유대인 작가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대표작이다.
본인 역시 31편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자평했고, 이 작품으로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소설의 구성과 형식 그리고 문장들은 소설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했다. 네이선 주커만이라는 작가가 화자로 등장해 시간을 넘나들고, 인물들과 사건들을 자유자재로 배치하는 바람에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등장인물은 저마다 살아 있고, 단락의 연결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영리해서 책을 읽는 것이 흡사 필립 로스가 깔아놓은 판에 독자는 팽이가 되어 저절로 돌려지는 느낌이었다.
미국의 목가라는 제목과 표지의 사진이 상반되는 이미지였다.
지금의 편의점 같은 공간에서 한가로이 앉아있는 청년들이 찍힌 사진이 불타고 있는 표지, 평화로운 노래 목가와 불타는 사진의 조합이라니 이 책이 담고 있을 이야기의 파장이 예측되어 읽기도 전부터 더럭 겁이 났다.
미국의 목가는 1960년대 말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아메리칸드림 완성을 목전에 둔 한 유대인 가장이 폭력과 광기에 사로잡힌 역사 속에서 무너져 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미국의 이름으로 세계 평화를 주관해야만 한다는 그 대단한 오만이 베트남 전쟁이라는 복병을 만나 무릎 꿇게 되면서 미국인들의 혼란과 국가적 가치관의 위기를 파헤친 작품이다.
<울분>에서는 한국 전쟁이, <미국의 목가>는 베트남 전쟁이 주요 소재이다. 작품이나 자료에서 마주하게 되는 전쟁은 그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다.
지난주에 일 년이 넘도록 회복되지 않는 어깨 통증 때문에 4시간 정도 오른팔 신경을 차단해서 치료하는 시술을 받았다. 마취가 되자마자 오른팔은 무게감도 없고, 통증도 느낄 수 없을뿐더러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여지지 않더니 걸을 때마다 저 혼자 덜렁거렸다. 그 장면이 마치 내 시체를 내려다보는 듯한 육체 이탈과 같은 당혹스러움에 갑자기 울렁증이 올라와 휠체어 신세를 지고 말았다. 한참 후 신경이 돌아오기 전까지 울분의 마커스가 떠올랐고, 전쟁 중에 팔다리를 잃은 수많은 이름 모를 이들에게 절로 감사와 위로의 마음이 밀려들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을까?
베트남 전쟁은 1955년~1975년에 걸쳐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냉전 시기 세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소련과 미국이 개입하면서 그 규모와 기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전쟁이었다. 승리를 장담했던 미국은 베트콩의 게릴라 작전으로 고전하면서 미국 내 반전 운동과 여론에 밀려 미군을 철수하게 된다.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약속받고 한국군도 파병했고, 그 전쟁의 소용돌이 안에서 감춰진 불편한 진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는 전쟁이기도 하다.
전쟁 초기에 미국은 남베트남 독재 정권을 지원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독재자 응오딘지엠은 베트남의 불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보다 못한 틱광둑이라는 스님은 시내 한복판 도로에서 분신으로 독재 정권과 그 정권을 지원한 미국에 대해 항의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베트남 특파원들의 촬영과 기사로 생중계되면서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하고, 베트남 전체를 파멸로 이끌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소설 미국의 목가는 주인공의 11살 된 어린 딸이 이 장면을 TV 화면에서 보게 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유대인 이민 3세대로 가장 미국적인 삶을 지향하며 올곧게 살아온 스위드의 일생은 미국의 목가를 목청껏 부를 만큼 완벽했다. 미국 내에서 중산층으로의 진입을 위해 그는 하루하루 매 순간 근면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미국 내 유대인으로서 정체성 불안과 공포는 숨길 수 없는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 위한 이방인들의 발버둥의 역사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한인들의 미국 이민사, 고려인, 조선족 등 한국인들도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대규모 이주를 겪었다. 그러나 유대민족의 이민의 역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대민족의 세계 분산을 뜻하는 디아스포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역사상 유대민족의 삶은 처절했고, 절박했다. 그 억척스러운 삶은 1세대와 2세대를 거쳐 3세대 스위드에 와서 드디어 미국 사회의 중산층 궤도에 안착된 성공한 삶이었다. 그래서 가장 미국스러운 삶, 미국인처럼 보이기 위해 오로지 삶의 안락함만을 추구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의식하고, 내면의 소리를 외면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스위드의 딸 메리는 스위드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의 평안을 위해 침묵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가장 과격한 방법으로 표출한다. 어릴 적 충격적인 영상을 본 이후 개인의 행복보다 보이지 않는 양심과 가치에 대해 고민하다 전쟁 반대를 외치며 폭탄 테러를 저지르고 자취를 감춘다. 딸은 세상에 투신하고 그 후 스위드의 삶은 서서히 침몰된다. 스위드의 완벽한 삶에서 치명적인 결함으로 남은 딸이다. 자식이라는 존재가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 정의와 대의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일상이 무참히 짓밟히는 일이겠지만, 사회적 측면에서는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항거와 저항이 큰 반향을 불러오게 되기에.
틱광둑 스님은 온몸을 불지르는 소신공양으로,
메리는 자신의 안온한 삶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폭력과 불의에 맞선 것이다. (물론 메리의 선택에 의해 무고한 이들의 희생은 결코 묻혀버리면 안 되겠지만)
베트남 번전 운동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1968년 베트남전 파병 규모가 커지자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반전 시위를 벌인 학생들의 이야기다. 평화롭던 시위가 주방위군과 대치하면서 폭력 시위로 확대되어 7명의 시위 주동자가 기소된다. 그들의 재판 과정을 그린 영화로 판사로 대변되는 미국 정치의 위선과 독선, 행동하는 청년들의 고뇌를 볼 수 있었다. 150일 간의 지리한 재판 마지막날 최후의 변론은 베트남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이 뻐근한 울림을 주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 실존 인물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 이성적으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메디 레드 메인이 맡은 역이 매력적이었는데 그는 톰 헤이든이었다. 베트남 반전 운동의 주축으로 활동하다가 후에 캘리포니아주 상원위원으로 주류 정치에 몸담은 인물이며 반전운동가 가수 제인 폰다와 결혼한 것으로도 유명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스위드는 딸 메리가 폭탄 테러라는 과격한 방식을 통해서라도 말하고자 하는 소리에 끝내 귀 기울이지 못했다는 점, 딸의 과오와 상처를 인정하지 못한 나머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무너지게 했다. 자신이 쌓아온 인생과 삶을 딸의 테러로 맞바꾸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위드는 4명의 목숨을 빼앗은 딸을 끝내 용서하지 못하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매일 죽어나가는 전쟁에는 무심했다. 자기 안의 삶에 안주한 이들의 방관이 불러오는 후폭풍은 가늠하기 힘들 거라고 경고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서 히틀러의 만행을 알리는 전단지를 뿌리다 국가 반역죄로 체포되어 나흘 만에 사형당한 두 남매의 엄마가 떠올랐다. 꽃 같은 자식들이 비뚤어진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 죽음을 앞두고 있었지만 의연하고 담담히 받아들였고, 자식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자신의 남은 시간을 헌신했다. 스위드가 메리의 고민과 결정을 만류하는 것에만 치중하느라 역사의 흐름을 놓치고, 역사에 합류하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사람들은 역사를 장기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는 사실 아주 갑작스러운 것이다
1권 141쪽
인류의 역사는 지극히 개별적이고 통합적이다. 개인의 일상의 면면이 모여 거대하고 위대한 역사를 엮어낸다.
스위드의 삶이 침몰되는 과정을 통해서 미국 사회의 위선과 모순, 불안과 위기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워터게이트 정치 스캔들, 위선과 모순, 인종과 계급 차별, 종교, 탐욕 등 당시 미국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던 병폐들을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비춘다.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리는 미국의 아름다운 노래는 추수감사절 단 하루뿐이었다는 문장이 기억난다.
아프리카의 속담 중에 "노인은 도서관이다"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오면서 쌓은 지식은 도서관과 다름없다라는 말이다. 노인의 삶 자체가 역사가 된다는 말과 같다. 냉철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과 삶을 읽어낸 작가 필립 로스 할아버지를 이제서라도 알게 되고, 그의 작품을 읽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 인간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쓴다라고 말한 필립 로스의 나머지 작품들도 기대된다
미국 현대소설의 대표작가의 대표작이라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번에는 책을 읽기 전에 영화부터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