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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Dec 28. 2022

<책 리뷰>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대접 ;  마땅한 예로써 대함

         / 음식을 차려 접대함


대접의 화살표는 타인으로 향해 있다.

대접이라는 말은 꽤나 공적이고, 대체로 어려운 자리를 말한다.

결코, 자기 스스로에게는 마땅치 않을 것만 같았는데...

음식과 요리로 스스로를 멋지게  대접한 요리에세이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


'맛있는 위로의 시간'이라는 부제가 참 잘 어울린다.

요리에 담긴 지금의 시간,

인생이 담긴 음식 이야기가 맛나게 차려져 있다.


구하기 쉬운 재료와 만들기 쉬운 레시피로 만든 22가지 음식에 담긴 그녀의 일상은 솔직 담백하여 그녀가 소개해 준 음식들도 역시 모두 담백한 맛이 솔솔 피어났다.

요리의 달고 짜고 쓰고 시고 매운맛과

인생의 희로애락, 생로병사, 시간 속에 자리 잡고 사는 그리움과 외로움.

작가는 인생과 요리 두 가지를 어우러지게 잘 요리해 스스로에게 대접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준다.


작가가 선호하는 신선한 재료의 색깔은 다채롭지만 하나의 요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서로의 색과 향을 내세우지 않고

그릇에 담아질 때는 서로에게 스며듬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작가는 그런 요리와 인생을 애정하는 것이었다.


해상도가 높아서 거리감 느껴지는 화려한 요리 사진이 없어도,

낯선 향신료와 소스로 잔뜩 무게 잡은 거창한 레시피가 아니더라도

(이 레시피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작가의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한 꼭지씩 읽을 때마다 냉장고를 여닫고, 온라인 장터를 검색하다가 결국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누군가가 잠시
나를 위로해 줄 수는 있어도 언제까지고
그 위로가 지속될 수 없으며,
나를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내 힘으로 찾아야만 하듯이.
45쪽




12월 초 고등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친구들 기억 속의 나는 "잘 먹지 않고, 가리는 것도 많은, 도통 먹는 거에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이 말을 강력히 부인할 수도 없는 것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먹는 일에는 영 젬병이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본의 아니게 채식주의자였다.

아빠의 식성을 따라 우리 식구들은 고기류와 비린 것(날 해산물)을 밥상에서 구경할 수가 없었다.

강원도 산골 지역 특성상 구하기 어렵기도 했거니와 가장의 입맛에 따라 밥상이 차려졌기 때문이었다.


식구라는 말은 한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란 말처럼 우리 식구는 구운 김과 김치류, 산채류, 장아찌류, 콩나물국, 감잣국과 같은 맑은 국만으로 하는 끼니를 주로 먹었다.

고등어자반 구이와 잔멸치 조림, 콩자반으로 부족한 영양분을 채운 정도였다.

친구들이 유배식? 절식?이라고 놀리는 그 소박한 밥상이 여전히 좋다.


대신 떡, 과일, 고구마, 감자, 옥수수, 견과류는 비교적 풍족히 먹었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백설기 사이사이에 흑설탕을 넣은 떡을 해서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김이 폴폴 나는 떡 접시를 들고 이 집 저 집 다니면, 이웃집에서는 빈 접시를 그냥 돌려보내는 법 없이 김치, 홍시, 고구마, 만두 등을 다시 담아주셨다.

심부름하는 어린 내게 들려주는 덕담과 칭찬이 접시에 담긴 음식보다 더 달콤한 맛이었다.


결혼 후 집안의 대소사를 준비하면서 했던 음식 장만은 부담감,

아이를 키우면서 먹거리를 담당해야 하는 책임감,

그렇게 요리는 타인에게 건네야 하는 일종의 선물 같았다.


결혼 후 8년 만에 식판 밥을 받아 들고서 목이 메인 것은 남이 해 준 밥, 남이 베푼 음식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를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부로 살아온 시간만큼 요리 실력은 늘었지만 요리에 대한 흥미와 먹는 것에 대한 정은 사실 제자리였다.

그저 배고프지만 않으면 되는 정도로 만족하면서 지내 온 시간들이 꽤나 길었다.

그래서 먹는 얘기나 음식, 요리이야기에는 움추러들기 일쑤였다.


다행히 최근에 소원했던 친구들과 다시 만나는 일이 늘면서 처음 맛보는 음식들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관계가 확장되면서 입맛도 덩달아 번져가는 중이다.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 대접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 어렵지 않다고,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작가는 소곤소곤 속삭여준다.


음식은 배를 불리는 것만이 아닌

마음을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한 그릇의 요리에는

그날의 마음과 감정을 품는 더 큰 그릇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제부터 대접의 화살표는 양방향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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