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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Jan 11. 2023

<책리뷰> 고추밭 연가

푸른 그리움이 번져


장미숙 작가님과 20년 봄에 블로그 이웃이 된 지는 20년 봄.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곁눈질로(눈팅으로) 공모전 정보와 더불어 엄선된 수필 작품을 감사히 읽었다.


매일 새벽 시간에 올리는 수필 작품들은 수상작이 대부분이라 수작임에 틀림없었지만

모두 잠든 시간에 깨어 많은 이들을 위해 포스팅을 올리는 작가님의 열정과 성실함에 더욱 놀랐다.

더불어 충실히 삶을 살아가는 작가님의 일상을 담은 글을 기다려 읽다 보니,

가까운 동네에 계신다는 것과 내가 자주 걷는 둘레길로 운동을 가시는 것도 알게 되었다.


블로그 이웃, 닮고 싶은 작가님이 주변 가까이에서 어쩌면 마주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가짐을 다잡게 되었다.

혹시, 산책길에서 마주치면 어떤 인사말을 건넬까 하는 고민도 했더랬다.

블로그에 댓글 다는 것도 쑥스러워서 잘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얼마 전 작가님께서 [에세이 문학]을 선물로 주시는 이벤트를 진행하셨는데 쑥스럽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냉큼 신청했다. 그런데 가까이 사는 걸 아시고 작가님이 손수 배달을 해 주신다고.

자전거를 타고 오시기로 했지만 송구스러워서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눈과 강추위로 미뤄지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작가님이 젊은 시절 자주 다녔던 근처 공원에서 만나 뵈었다.


'어느 곳이든 당신이 사랑하는 곳이 당신의 세상"이라는 말처럼

작은 공원 곳곳에 기억을 되살리고, 아련한 시선을 보내시는 걸 보니 한때 그 공원을 엄청 사랑하셨던 것이 느껴졌다.

들려주신 말씀에 마음이 묻어나고, 그 마음속에 인생이 들어있었다.



작가님의 [고추밭 연가]를 다시 꺼내 읽었다.

단청 없는 전각이 오히려 절제된 기품을 내뿜는 것처럼 50편의 수필은 꾸밈없는 진솔함으로 피워낸 아름다운 생의 기록이었다.

그 생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어머님에 대한 절절한 사모곡과 삶과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쓴 일상의 기록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주변의 흔한 사물과 생물과도 말 걸기를 주저하지 않는 보드라운 마음으로 거친 세상을 살아온 많은 날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성숙한 마음으로 생을 품어내었다.


다행인 것은 수많은 길을 굴러온 탓에 넘어지면 일어서는 힘을 길렀고,
상처를 싸매는 법도 알아냈다는 것이다.
오르막길에서는 호흡을 가다듬는 것도 배웠고,
두려우면 뒷걸음질 치기보다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마, 구를 힘이 남아 있는 한 내 삶의 바퀴는 멈추지 않으리라.
내가 굴러가야 할 길이 저만치서 손짓한다.
지친 시간을 다독거리며 인생 바퀴의 페달에
나는 한 발을 힘차게 올려놓는다.
다시 시작이다.
17. 바퀴 중


작품 속에는 순우리말과 사투리가 곳곳에 숨어있었다. 단어들만으로도 떠나온 고향과 옛 정서를 듬뿍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겨르로이 / 가분재기 /  애옥하다  / 오보록 / 비쓸비쓸 / 씀벅씀벅 / 어금지금 / 욜그랑살그랑 / 머드러기  /도사리 / 토리 / 궁글리다 / 담숙하다 / 눕눕 / 버름하다 / 훔훔하다 / 매초롬 / 수득수득 /   알숨달숨 /
흘부들하다 / 외 붓듯 가지 붓듯 / 굽도 젓도 할 수 없다


수필이라는 장르는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나'가 잘 드러나는 고백적인 장르이면서도 때문에 개성적이다. 주변 모든 것이 재재로 사용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통찰과 사유와 비판이 더해져야 하고, 더불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닿을 정서와 울림이 동반되어야 좋은 수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 문학의 정석을 보여준 작품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산의 속살을 온 감각으로 느끼며 산길을 걸을 때면
누군가 옆에 있는 것처럼 담숙 해진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산은 늘 그 모습으로 모든 것을 포용해 주기 때문일 게다.
삶에 지치고 사람에게 다친 마음까지도 따스하게 감싸주는 산,
산이 있기에 절대적인 외로움은 없다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는다.
41. 푸른 성지 중


개인의 경험과 사유가 다른 이의 마음에 가닿아 번져간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작가님의 푸른 그리움이 번져 내게도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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