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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신 Dec 08. 2021

논알코올 맥주를 사랑하게 된 애주가


나는 술을 좋아했다

정확하게는 맥주를 좋아했다


소주는 화학 냄새가 났고 막걸리는 시큼한 냄새가 났고 양주는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싫었다

(물론 엄청난 예외 항목으로 조개구이를 먹을 때만큼은 소주를 마셨다. 그건... 못 참음..)

맥주는 그 자체로 너무너무 맛있었다

한여름에는 샤워를 다 하고 먹는 맥주의 그 청량함을 느끼기 위해 집에 와서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벌컥벌컥 먹으며 행복함을 느꼈다


엄마 말도 잘 안 듣는 내가 아주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은 바로 의사 선생님이다

술을 입에 댄 후부터 첫 번째로 가지게 된 금주기간은 라섹수술을 하고 난 뒤 한 달이었다

난 그 한 달 동안 밤낮을 바꾸며 살았고 tv, 컴퓨터, 책도 보지 않으며 라디오만 듣고 집에서도 선글라스 끼고 살았었다 그런 노력까지 했는데 선생님이 금주를 하라고 하셨으니 금주 따위... 가뿐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라섹 수술을 하고 한 달이 지난 뒤 처음으로 외출을 할 때 무엇을 먹을까에 가장 중요한 주제는 술 생각이 안나는 밥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한참을 고심한 끝에 강남역 뒤에 어떤 카레집을 찾았다.

카레라면... 카레는 흰밥에 슥슥 비벼먹는 맛이니 괜찮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주문을 했는데.. 아뿔싸.

그곳은 일본식 카레집이었고 옆 테이블에서는 시원한 생맥주와 함께 카레밥을 드시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울면 눈이 아프기 때문에 속으로 울면서 카레집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건강한 삶을 살다가 두 번째로 가지게 된 금주기간은 임신과 함께 찾아왔다

심지어 그 전주에 집에 손님들을 잔뜩 초대할 생각으로 샹그리아를 20L 넘게 담가서 냉장고에서 예쁘게 숙성 중이었고, 임신 테스트 하기 전날엔 홈플러스에서 스텔라 한 박스를 사면 어여쁜 스텔라 잔을 한 개 준다길래 맥주 두 박스를 사서 냉장고에 고이 모셔놨었다. 그날 마신 스텔라 한 병이 그 해의 마지막 맥주가 될 줄이야..

그 어떤 임신 초기 증상도 없었는데 그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서 불현듯 '아 테스트기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테스트를 했고 매직아이 따위는 필요 없는 선명한 두줄을 보게 되었다.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니 '뱃속에 애도 있는데 술좀 그만 좀 마시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였나 보지'라고 하니 더욱 할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첫 번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긴긴 금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임신 중이었지만 임신인 줄 몰라서 마신 술의 양도 상당했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워 다급히 맘 카페에 검색을 했는데 '임신인 줄 모르고 아침해 뜰 때까지 매일 마셨었는데 건강한 애가 태어났어요'류의 글이 많아서 안심을 했다. 애기가 알기 전에 먹은 건 모른 척해주고, 임신인 것을 안 다음에도 먹으면 그때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썰도 있었다. 이때 논알코올 맥주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식의 바다인 유튜브의 의사 선생님들께서 만든 논알코올 맥주에도 소량의 알코올이 들어가 있을 수 있다는 콘텐츠를 보고 난 뒤라서 찝찝함이 있었다. 그중에서 진짜 리얼로 알코올이 없다는 논알코올 맥주를 찾아서 마시기도 했었으나.. 그 맛이 그 맛이 아니었다.

그리고 '안 취할 거면 술을 왜 마셔?'가 나의 주된 생각이었다.

취하려고 마시는 건데 말이야....! 안 취하면....! 맥주 맛 음료가 무슨 소용이냐고.....!!!!!


그래서 초반에는 엉엉 내 삶에서 맥주를 잃었다며 이제 그 허전함을 뭘로 달래냐며 엉엉거렸는데 그건 나의 귀여운 기우였다. tv에서 보는 입덧은 음식 냄새를 맡고 우웩 하며 화장실로 가서 토하면 휴-괜찮아졌어요 하는 그런 것이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달랐다. 입덧은 숙취와 같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숙취는 잠을 푹 자면 낫고, 아무리 심해도 오후 4시가 넘으면 온몸의 평화가 온다는 것을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아서 시곗바늘만 쳐다보며 얼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도하면 된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삶. 그것이 숙취다.

하지만 입덧은 달랐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숙취를 24시간 달고 살아야 한다. 초반 입덧 때문에 술은 고사하고 음식도 쳐다보기 싫어서 금주로 인해 힘든 점은 전혀 없었다


문제는...~!~!~!

입덧도 사라지고 몸도 그렇게 무겁지 않아 가장 살 것 같았던 임신 중기였다. 특히 고기를 보면... 그렇게 맥주가 당겼다. 오죽하면 술을 잘 안 먹는 남편에게 맥주 좀 대신 먹어달라며 먹방 보듯이 남편이 먹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도 했다. 그런 길고 긴 시간을 지나서 조리원에서 나온 날 단유를 강행한 나는 몸조리를 하던 친정집에서 맥주를 깠다. 1년 만에 마시는 맥주는............ 무슨 맛이냐면............. 한 캔도 못 마시고 뻗을 정도로 강력한 알코올의 맛....이었다

나는 한 캔도 다 못 마시고 취해서 뻗었다. 와 1년 동안 안 마시다 마시니 이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했다.


그리고 아기 재우고 홀짝이는 맥주가 주는 위안으로 살던 어느 날이었다

토요일은 친한 부부네에 가서 놀고 일요일엔 우리 집에 내 친구가 와서 놀기로 계획이 되어있었다

일요일에 내 친구가 왔을 때 내가 마음 놓고 놀 수 있도록 아이는 남편이 전담해서 보기로 했었고, 대신 토요일에는 부부네 집에 갔을 때 내가 아이를 보고 남편이 술을 마시고 놀기로 되어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숙성회와 족발을 시켜서 먹고 있었고 안주가 안주인지라 맥주를 못 마시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 집의 아내는 아직 수유 중이어서 집에 논알코올 맥주가 박스로 있었고 '언니 이것도 먹을만해요'라고 해서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에 논알코올 맥주에 손을 댔다

그런데 어라? 맛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걸로 끝났으면 그냥 괜찮았구나~ 하고 다시 손을 안 댔을 것 같다

그런데 몇 캔을 마시고 몇 시간을 놀아도... 몸이 힘들지 않아...!!

아이를 케어하고 운전하고 집에 와서 이것저것 정리해도 정신이 멀쩡하고 몸이 힘들지 않아...!!!

엄청난 신세계였다

아이를 재우고 밤에 맥주 마심 ->그다음 날 푹 못 잔상태에서 아이가 날 깨움

안 좋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시작의 반복이었는데... 그런 것 없이 맑은 정신 가벼운 몸으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말이야?

그 뒤로 자연스럽게 도수가 있는 맥주보다는 논알코올 맥주에 손이 가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맥주의 그 알싸한 맛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인간이었다

그렇지만 맥주의 맛을 보고도 머리가 맑고 몸이 가벼워서 내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에 매료가 되었다

논알코올 맥주를 사랑하는 것이 과연 애'주'가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맥주의 홉을 사랑하니 애주가가 맞다고 우기고 싶다


지금도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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