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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신 Dec 29. 2021

도련님을 도련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아 길동이형

남편과 연애할 때 남편의 남동생을 뭐라고 지칭해서 불러야 할지 몰랐다. 당시 남자 친구이었던 남편과 대화의 주제에서 남동생이 나오면 나는 주어를 생략하고 대화를 하거나 그냥 '동생'이라고 칭해서 이야기를 했다.


사실 사는 곳이 매우 멀어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딱히 불편한 것은 없었다.


문제는 결혼을 하고부터 생겼다. 그 동생이 미혼이면 도련님이고 결혼을 하면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한단다. 제일 좋은 건 동생이 빨리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누구누구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란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형님 형수님이라는 호칭은 꼭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만연하게 쓰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살아오면서 도련님~~ 하고 부르는 건 사극에서 노비가 대감댁 아들한테 부르는 것 만 들어봤다. 내가 무슨 종으로 팔려가는 것 도 아니고.... 나는 도저히 도련님이라고 못 부르겠다고 하니 엄마가 엄청 혼을 냈다. 호칭 제대로 안 부르면 가정교육 못 받았다는 소리를 듣는다나.


도련님도 싫고 서방님도 싫었다. 결혼한 내 남편한테도 서방님이라고 안 부르는데 내가 왜?


당돌한 서울 며느리는 시부모님과 시동생을 앉혀놓고 선언을 했다.


"제가 정말 아무리 하려고 해도 도련님이라는 말은 못 하겠어요. 그런데 알아보니 국립국어원에서 곧 호칭을 개정한다고 하니 개정되면 그거에 따를게요!"라고.


쿨하신(감사한) 시부모님은 편한 대로 해라~~라고 하셨고 시동생도 별 상관 안 한다고 했다.


그렇게 결혼하고 한 1년쯤은... 주어 없이 지냈다. 만나서 시동생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때는 가만히 눈을 마주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눈이 마주치면 본론을 꺼냈다. 문제는 시어머니랑 통화할 때 시동생을 언급해야 할 때 이렇게 말할 수도 없고 저렇게 말할 수도 없어서 몸만 베베 꼬았다.


그러다 어느 날 국립국어원에서 낸 기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호칭 개정!!! 촌수나 나이 상관없이!! 도련님 아가씨 이런 거 없이 뫄뫄씨라고 부르는 것을 '권고' 한다고.


냅다 기사 링크를 복사해서 시댁 단톡에 날렸다.

그때부터 편하게 저기.. 가 아닌 뫄뫄씨~~라고 당당하게 부를 수 있어서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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