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보안팀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의 주요한 임무가 "도둑 잡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분명 중요한 업무 중점이긴 하겠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매장의 안전사고 예방, 고객 안내 및 서비스, 매장 개점 및 폐점 관리 등등. 많은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게다가 절취자를 잡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객이 물건을 가방에 넣으면 절취인가? 그렇지 않다. 그걸 다시 계산대에서 꺼내서 결제한다면 그는 그냥 자기 가방을 장바구니로 쓴 것뿐이다. 매장에서 근무하는 많은 직원들이 하루에도 수 차례 우리에게 절취 의심 제보를 하지만, 확인만 해 보고 넘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런 사례를 절취로 오인하고 뭔가 고객에게 조치를 취하면? 그렇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그래서 특히 평사원급은 적극적으로 절취자를 색출, 적발하지 않도록 교육받았고, 주로 중간관리자 급 이상의 보고를 통해 신중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지침이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시라. 다 확인해서 다 잡는다. 업무상 비밀이라 자세히는 못 말해도 다 방법이 있고, 실제로 한 달에도 수 명이 잡혀서 경찰서 신세를 졌다. 나쁜 생각 하는 분들은 멈추시기를.)
그런데 내가 절취자를 잡았다. 총 두 명을 잡았는데, 처음 적발한 이후에는 내가 '장 발장'을 잡은 게 아닐까 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잡고 나니 그런 생계형 절취자는 아니었다.
첫 손님은 머리가 벗겨지고 어딘가 어눌해 보이는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매장 입구에 서 있는데 고객이 나오자 출입구의 도난 감지기가 울렸다. 계산대로 가시라고 응대했는데, 훔친 게 없다는 식으로 자꾸 그냥 나가려고 했다. 그때 제법 근무개월 수가 찼던 때였는데, 느낌이 왔다. 뭔가 이상했다. 그를 붙잡아 소리 나는 물건을 같이 확인해보자고 정중히 제안했다. 그는 처음에 협조하는 듯하더니 바쁘다는 식으로 갑자기 도망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입구 밖 무빙워크를 타고 매장 아래층으로 내려가더니 퇴점을 시도했다.
원래는 정해진 근무지를 비우면 안 되는 게 원칙이다. 근데 이미 고객은 너무나 수상했고, 상황은 긴박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무전보고를 하면서 동시에 그를 쫓았다. 그는 지하철 역사 입구까지 가더니 화장실 대변 칸으로 들어갔다. 내 무전을 들은 팀장님은 금세 지하철 화장실로 따라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는 '화장실이 급한 고객을 내가 잘못 잡은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아 이건 시말서인가?'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자초지종을 파악한 팀장님은 화장실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그가 문을 열었고, 바닥에는 계산되지 않은 물건의 라벨지가 떨어져 있었다. 햐, 역시. 팀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훔친 건 건전지와 냉장 총각김치였다.
두 번째도 비슷했는데, 이번에는 겉만 봐서는 멀쩡해 보이는 50대 아주머니였다. 천으로 된 장바구니를 들고 급하게 그녀가 뛰어나가고 뒤이어 알람이 울렸다. 10m가량을 뛰어가 다시 잡아 왔다. 그리고 가방을 다시 대 보자 알람이 울린다. 그녀는 내게 순순히 자백을 했다. 착각을 해서 하나만 가지고 나갔다고. 그러면서 꺼낸 물건은 모기향 매트였다. 이거 얼른 계산하러 가겠다고 계산대로 튀어가는 그녀. 규정대로 못 가게 막고 야간 조장 형을 불렀다. 조장과 함께 고객 상담실로 고객을 인솔했는데, 고객이 한 번만 용서해달라며 내게 싹싹 비는 것이었다.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아, 이 일은 이런 일이구나. 하지만 장바구니를 확인하자 불편한 마음이 싹 사라졌다. 계산 안 된 물건이 줄줄이 나왔다. 건미역, 요구르트, 녹차 등등등... 그냥 장을 보셨더라. 그건 '착각'이 아니고 도벽이었다.
고객들의 행색, 그리고 무엇보다도 훔친 물건의 품목들을 볼 때 그들은 생계형 절취자가 아니었다. 배가 고프고 당장 살 길이 없는 사람이 총각김치나 미역을 훔치진 않는다. 그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마트의 도난 방지 시스템이 허술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저 그들은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물건을 취하려고 한 것뿐이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여성고객이 잘못했다고 내게 사정사정할 때의 불편함은 쉽게 잊혀지진 않는다. 누군가의 처분을 결정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니. 적절한 연상인지는 모르겠는데, 학교 활동 시절 나는 단과대 성폭력사건 대책위원을 몇 차례 맡았었다. 그때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조치나 가해자에 대한 제제조치를 검토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금에서의 솔직한 고백이지만, 그 일을 하다 보니 준비되지 않았던 나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소진된다고 느꼈다. "이젠 진짜 못 하겠다."라고 생각하게 된 여러 계기 중 하나였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옳음과 그름이 명확한 성폭력 사건들. 그리고 내가 학습하고 배워 온 반성폭력 운동의 원칙들. 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나며 사건을 '공동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건 어렵고도 지난한 일이었다. 다만 어떤 이의 회복과 어떤 이의 자성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란 생각으로 매달렸을 뿐이었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처분을 결정하는 책임을 맡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여실히 느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죄지은 누군가를 처벌하는 과정에 개입하는 상황에 다시 놓였다. 현장에서 적발된 절취자를 경찰에 인계하기까지의 그 시간, 좁은 고객상담실 안에서 내게 선처를 호소하며 비는 어머니뻘의 고객과 맞닥뜨리는 건, 뭔가 본질적으로 다른 불편한 무언가가 있는 일이었다.
매장에서 직접 절취자를 잡은 건 이 두 번이 끝이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적발된 이들을 보거나, 혹은 매장 내에 다양한 사건 사고와 범죄에 연루되는 이들이 결국엔 잡혀 사법기관으로 인계되는 것을 짧은 근무기간에도 수 차례 목격했다. 죄 앞에 비굴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안 되는구나.", 그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