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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 Jan 01. 2022

"아저씨, 고맙습니다."를 듣기까지.

나는 풍선을 구조했고, 풍선은 실종됐던 내 감정을 구조했다.

  나는 원체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뭐 그저 보는 건 싫어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가끔 예닐곱 살쯤 되는 아이들의 특유의 귀여움에는 시선을 좀 뺏기는 정도? 하지만 아이들을 돌보거나 하는 건 지금으로선 솔직히 질색이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이의 과외를 1년 가까이 맡아했던 적이 있는데, 그건 말이 과외지 그냥 보모 역할이었다. 말이 통하지도, 그렇다고 말를 듣지도 않는 제멋대로인 이 아이를 나는 어쩔 것인가. 있던 정도 다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 외에도 생업의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내게 주적과도 같았다. 식당에서 일할 때 유아 동반 고객은 홀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떠났고, 가장 충격적인 기억은 따끈따끈한 똥기저귀를 매장 의자 위에 올려두고 그대로 갈길을 간 고객이었다. 사실 아이들은 원래 그런 거고, 배려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 존재들이다. (똥기저귀 사례와 같은)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사는 게 여유가 없던 내 맘에 아이들이 들어올 틈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여유도 없이 운동씩이나 하겠다고 설쳤었다 내가.


  마트에서 일하던 시절 매장 순회근무 중이었다.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고객이 보안직원인 나를 급히 찾았다. 무슨 일이냐 그를 따라가 보니 천장에 헬륨 풍선이 매달려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고객인데 아이가 놓쳤다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깟 풍선 하나, 그냥 포기하고 돌아섰겠지만 아이가 계속 풍선을 찾아달라고 조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표정은 난처하면서도 절박해 보였다.


  풍선은 내 힘만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개의 마트들이 그렇듯 우리 매장에도 무빙워크가 있었는데, 하필 매장 2층에서 3층으로 올라오는 무빙워크 동선의 천장이었다. 층고도 굉장히 높아 사람 손으로는 어떻게 되지 않는 위치인데, 무빙워크 위에 걸렸으니 영업 중에 그걸 멈추고 사다리를 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보안팀장님과 기술팀에 무전으로 보고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객에게 양해를 구했다.


"고객님 위치가 어려워서 저희가 도와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아이가 워낙 보채서... 어떻게 잘하면 될 것도 같은데요."


  고객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고객 서비스의 영역인지, 우리는 천장에 매달린 어린아이의 풍선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 수긍하지 못하고 끈질기게 풍선을 요구하는 고객 앞에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 고객 앞이야말로 고객 서비스의 최전선. 어 도리가 없어 일단 팀장님께 보고를 다시 하고, 폐점 이후에라도 조치가 되면 연락을 드릴 테니 고객센터에 연락처를 남기고 가시라고 했다. 그러나 고객은 본인이라도 어떻게 해 보겠다며 근처를 계속 서성이며 애꿎은 풍선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가 풍선을 찾아 당신 손에 쥐어줘야 한다는 듯한 고객의 태도에 사실 화가 좀 났다. 일하면서 느낀 거지만 매장의 책임이 아닌 영역에 너무도 당연하게 권리를 요구하고, 직원들에게는 무례하게 대하는 고객들이 너무 많았다. 소위 말하는 '진상' 고객들. 반려동물 출입을 막자 "당신네 물건 팔아주려고 왔는데도 못 들어가게 하냐?"며 "그럼 네가 데리고 있으라"라고 목줄을 나한테 내던지고 매장으로 사라져 버린 고객. '턱스크' 착용 상태로 매장에 입점하려기에 제지하자 "너나 똑바로 쓰라"며 내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고객. 이런 '고객님'들 사이에서 지쳐있던 나는 이 고객의 '무리한 부탁'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상태와는 별개로 어쨌든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기술팀에 자문을 구했다. 처음엔 어렵겠다고 하던 기술팀도 상황을 설명하자 알겠다고 했다. 10분쯤 지났을까?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기술팀이 커다란 표지판인지 뭔지, 하여간 길고 높은 물건을 가지고 왔다. 풍선에 매달린 줄에 어떻게 간신히 그 물건을 걸어 돌렸고, 꼬인 줄에 묶인 풍선이 슬슬 끌려왔다. 그렇게 최초 접수 30분 만에 우리는 풍선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센터에 연락하자 아직 고객이 거기에 있다고 했다. 풍선을 들고 고센터로 내려가면서까지도 휴식시간을 빼앗기며 풍선을 구조하게 만든 고객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센터에 가자 아까는 만나지 못했던 아이 엄마와, 그 풍선의 원래 주인이었을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고객에게 별말 없이 풍선을 건네자 고객들 표정이 환해졌다. 아이 엄마로 보이는 고객이 아이에게 말했다.


"얼른 아저씨 고맙습니다 해야지~."

"아저씨 고맙습니다."


  나는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갈음하고 얼른 돌아섰다. 사실 그 불만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들키는 게 나도 모르게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마스크라도 쓰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뭐지? 싶었다. (나 아저씨 아닌데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들뜨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나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상황실로 내려가며 생각했다. 내가 너무 삭막하게 말라가고 있었구나. 풍선 놓친 아이 마음과, 그 아이 마음 아플까 어떻게든 그거 찾아주고 싶었던 부모 마음. 그런 건 살피지 못할 정도로 내가 많이 차갑게 굳어버렸구나. 사실 고객이 나한테 그렇게까지 무례하게 요구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이에게 풍선을 돌려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운동을 정리하는 기간 마트에서의 일은 '공활'(지난 글 참고)이라기보다 내겐 차라리 심리치료에 가까웠다. 무책임했던 운동권 선배들의 배신과, 부족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실망, 학우대중들로부터 받은 외면과 상처로 감정이란 게 아예 산산이 조각나 가루가 돼 버린 채로 일을 시작한 나였다. 마트라는 현장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부대껴야 했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감정을 다시 되찾고 회복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사소한 사건들과, 그 안에서 내가 나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날 퇴근하며 아이가 집에 가는 길에 혹시 풍선을 또 놓치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아이가 밖에선 절대 풍선을 놓치지 않고, 무사히 집까지 잘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 그게 내 진심 어린 바람이었다.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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