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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 Aug 27. 2022

더 멀게 느껴지는 용산

국민과 가까워지겠다고 택한 용산. 대통령과의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졌다.

  용산 시대가 개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공간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전격 이전하면서다. 지난 정부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현실적 한계를 들어 폐기됐던 정책이었다. 새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과 열린 정부를 강조하며 대통령실을 이전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4.19혁명으로 하야하면서 기존 대통령 집무공간이었던 경무대를 폐하고 새로이 옮긴 지 반세기가 넘어 이뤄진 조치다. 미국의 백악관을 모방해 푸른 지붕을 가진 집이라는 뜻으로 청와대라고 지었다는 이 건물. 대통령 직무 공간이라는 역사적 소임을 마치고, 이제는 국민에게 개방된 공간으로 돌아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탈권위적이고 개방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청와대 이전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애초 청와대 이전을 공약했던 야당이 이를 비판하고 나서니, 민주당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내로남불’ 프레임도 다시 작동했다. 정치적 타산도 얼추 맞는 모양새다. 그러나 국민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대가는 제법 컸다. 야당의 비판은 고사하더라도, 출근길 교통 불편과 불필요한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게다가 관사 공사 과정에서 업체 특혜 의혹이 불거지며 ‘배우자 리스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안으로까지 비화해 버렸다.


  이쯤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것이 개방적이고 소통 친화적인 것인가. 대통령실 경호를 수도방위사령부가 맡게 됬다는 보도도 나왔다. 원래가 국방부 건물에, 군인들이 경호하는 공간이다. 국가수반이 일하는 곳이니 경호는 물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효자동 깊숙이 있던 청와대에 일하던 것을, 용산 한복판에 있는 군사 목적 시설에서 일한다고 해서 과연 국민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권위를 내려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정부는 광화문 정부청사로 대통령실을 이전하며, 퇴근길 직장인들과 맥주 한잔 기울이는 ‘광화문 대통령’을 이야기했다. 폐기된 공약이지만 차라리 이쪽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것이 솔직히 사실이다. ‘용산 대통령’은 움직이는 교통 체증 정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대통령의 소통 시도는 지난 정부에 비해 퇴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얼마 전 지난 정부의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한 국민청원제도를 폐지했다. 대신 국민제안이라는 형태의 방식으로 개편되었지만, 선정된 10개 정도의 주제를 제외하면 모두 비공개되는 방식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운영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빚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많은 동의를 얻은 청원을 정부의 책임자가 직접 영상으로 답변하던 방식에 비하면 퇴보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 이른바 ‘도어스테핑’ 도입이 소통 강화 성과로 꼽힌다. 그렇지만 주무 부처와도 말이 맞지 않는다던가, 불편한 질문에는 그냥 자리를 뜨면 그만이냔 비판까지 여러 잡음도 끊이질 않았다. 무엇보다도 줄어든 거리는 ‘국민들과의 거리’가 아니라 ‘기자들과의 거리’였을 뿐이다.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이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물며 직장 일도 집에서 하는 언택트 시대에, 대통령 일하는 공간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이 큰 대수일까. 국민과 줄여야 하는 거리는 ‘심리적 거리’다. 하지만 심리적 거리는 자꾸만 멀어져만 간다. 얼마 전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 대통령은 서초동의 고층 자택에서 (도로 침수로 이동하지 못해) 전화로 업무지시를 내렸다가 야당의 뭇매를 맞았다. 대통령실 이전은 국민과 가까워지겠다고 한 일이라지만, 결국 재난 속 대통령은 대통령실에 없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일상과 고민, 그 가까운 거리에 같이 존재한다고 느낄 때 국민은 정치적 만족을 느끼고 또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다. 취임 100일 만에 20%대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은 국민이 대통령을 얼마나 멀게 느끼고 있는지 방증한다. 대통령이 국민과 가까워지는 길. 심리적 거리를 줄여야 한다. 치솟는 물가와 폭우라는 재난 끝에 추석을 맞을 국민을 위한 살뜰하고 따듯한 정책적 고민으로 그 거리를 좁혀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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