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중에서도 가장 정열적인 계절은 역시나 여름이 아닐까. 이글거리는 태양 에너지의 영향 때문인지 사람들도 에너지가 넘치게 마련이다. 봄과 가을은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활동하기에 최적기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뜨거운 여름보다 활동이 뜸한 편인 것 같다.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찬 바람이 펑펑 나오는 에어컨을 마다 하고 산으로 바다로 달려 나간다.
나 역시도 일 년 중에 여름이 가장 바쁘다. 놀거리가 너무나 많다. 특히 여름날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물놀이다. 어렸을 때부터 여름이면 강에서 살다시피 했을 만큼 물을 좋아했지만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다 큰 처자가 물가에서 놀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8,9년쯤 전부터 시작한 웨이크보드 타기는 하루 종일 물가에서 놀 수 있는 명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처음 배울 때는 뭐든지 어렵기 마련이다.
특히 웨이크보드는 스타트 자체가 어려운데 줄을 잡고 기다리다가 배가 끌어올리는 순간,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타이밍에 과감하게 보드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 말은 쉽지만 실상은 어렵다. 실패할 때마다 강물이 코로 들어오는지 입으로 들어오는지도 모른 채 들이마시곤 한다. 또 팔은 얼마나 아픈지 대 여섯 번 스타트를 실패하면 물 위에 한 번 올라서지도 못한 채 바지선으로 귀환해야만 한다.
첫날은 세 차례의 귀환을 끝으로 결국 성공하지 못한 채 집으로 귀가하고 말았다. 두 번째로 간 날,
드디어 성공해서 짧은 거리나마 물 위에 간신히 버티고 서서 끌려갔다가 왔다.
그렇게 시작해서 서너 번의 여름은 날씨가 더울 때만 가끔씩 가서 물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애초에는 물에서 노는 것 자체가 즐거웠을 뿐이고 웨이크보드 타기는 핑계였을 뿐인데 좀 더 잘 타고 싶어진 것이다. 잘 타는 사람들을 보니 부러웠다.
물 위에서 갖은 묘기를 부리면서도 얼굴은 평온했고 오히려 신나 보였다. 간신히 파도를 견뎌내며 물 속에 곤두박질 칠까봐 덜덜 떨면서 주행만 하는 내 눈에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웨이크를 훌쩍훌쩍 높이 뛰어 넘나드는 것은 기본이고 왼쪽으로 뛰어 오른쪽 방향으로 착지해서 반대 방향으로도 자유롭게 주행하는 등 기술이 다양했다.
웨이크를 밟고 높이 점프해서 공중에서 텀블링을 하는 모습은 정말 멋졌지만 나는 죽었다 다시 태어나면 모를까 불가능한 동작이었다.
내가 다녔던 바지선에 단골로 오는 남자 한 분은 일 년에 300회는 기본으로 탄다고 했다. 하루에 보통 네다섯 번을 거의 매일 타다시피 하는 데다가 초봄부터 초 가을까지는 타는 모양이었다. 웨이크보드 타기에 어찌나 열정적인지 오십 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 못지않은 기술이 가능했다.
노력해서 안될 일이 무엇일까 마는 웨이크보드의 고난도 기술은 잘못하면 큰 부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몸이 가장 큰 재산인 나로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는 속 보이는 핑계를 대고 고난도 기술은 처음부터 넘보지도 않았다.
다만 적어도 한 해에 백 번은 타기로 맘먹고 몇 년을 청평으로 다닌 덕분에 이제 겨우 웨이크 두 개를 편안하게 넘는 정도는 되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일렁이는 파도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재미를 더해 주는 도구일 뿐이다.
열정은 전염되는 것 같다.
현실에 안주해서 편안하게 살고 싶다가도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누군가를 보게 되면 내 안에서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나곤 한다.
가끔씩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의욕이 사라지면 살 맛도 안 난다. 삶이 밋밋하고 그 날이 그 날인듯 느껴지면 우울의 우물에 빠져 버리기 쉽다.
그럴 때는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열정적인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면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자극을 받는것도 좋다.
이제 곧 신나는 여름이 시작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몇 몇 사람들은 진작에 입수를 했다. 그들은 아직도 차가운 3월의 강물에 거침없이 뛰어든다.
열정으로 끓어 오르는 뜨거운 피는 추위도, 나이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한 번 뿐인 짧은 인생, 신나게 후회없이 살아보자. 열정의 불씨가 재가 되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