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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미아 May 18. 2021

저는 겨울방에 묵는 손님입니다.

#산청에살어리랏다 #퇴사요양일기

평일이 돌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해가 뜬다! 야호!

산청에 머무는 6일 동안 3일이 비가 왔던 터라,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비가 오는 감성도 이틀이지 삼일차가 되면 마음도 몸도 늘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7일 차가 되던 오늘 아침. 드디어 해가 개었다.

태닝하기 딱 좋은 마루

함정은 내일이 석가탄신일이라 펜션에 손님이 또 꽉 찼다는 것.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새로 생긴 마루에 누워 태닝을 하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들을 얼떨결에 맞이했다.


- 안녕하세요~

- 아네, 혹시 봄 방이세요?(왜냐면 내가 봄 방 앞의 마루에 누워있었기에, 손님이 오면 자리를 내어주었어야 해서 내심 아니길 바랬다)

- 네

- 아(아쉬움),, 사장님은 지금 안 계세요.

- ...? 

- 앗 저는 겨울방에 묵는 손님입니다.


설명을 이어서 붙이자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 가족 A는 ‘아~’ 했다. 주섬주섬 내 짐을 챙겨 다른 벤치로 이동한다. 그런데 또 다른 가족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온 대가족 B. 크흠. 일단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혹시 모르지 않나, 이 분들이 다른 자리에서 바비큐를 하실지도? 하지만 이 자리에서 바비큐를 하신단다. 허허… 나도 손님이지만 이럴 땐 가끔 난감하다.

고양이를 찾는 설기

자리를 비켜 드리고 손님은 출입하지 않는, 주로 사장님들이 있는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이미 지난 삼일 동안 방 안에서 박혀 작업했던 탓에 나는 밖이 그리웠다. 무엇보다도 햇볕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겨울방으로 들어가기보단 야외를 택했다.


조금씩 산청 일상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대가족 B의 막내 아기가 설기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희준이라고 불리는 22개월 아기는 직진남이다. 설기를 보고 무서워 하기는커녕, 좋다고 마구 달려 들어서 내가 난감한 수준. 원래도 순한 설기지만 또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동물이기에,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아기와 설기 둘을 케어하느라 진땀이 났다. 애기 엄마는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희준이를 안아 데리고 가셨다. 하지만 우리의 직진남 희준이는 엄마품에 3분 정도 안겼다가 다시 나에게 달려왔다.

대가족B로부터 받은 감사의 표시: 고기

자세히 보니 강아지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나에게 달려오면 내가 번쩍! 안아주는 그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지난 삼일이 은근히 외로웠던 터라, 그리고 조카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던 터라, 나는 희준이를 있는 힘껏 안아주고 놀아주었다. 저녁을 먹고도 겨울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괜스레 마당에 나가 아이들과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사장님과 함께 마당에 자리 잡은 잡초들을 없애기도 했다.

잡초를 없애는 풍사님과 땅파는 설기


완전한 타인과의 만남이 즐거울 때도 있다.


여행지로 좋은 시간을 보내러 온 이들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바라는 것도 주어야 할 것도 없는 만남에서는 부담도 불편함도 없다. 일 하는 동안은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내가 무엇을 취할 수 있는지 어떻게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올지를 디폴트로 삼았어야 했다. 한마디로 관계 속에서 나 혹은 나의 조직에 이점이 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는 것.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보는 것은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욱여넣는 것과 같았다. 이런 방식을 강요받은 것도 퇴사를 한 이유의 일부다. 맞지 않는 옷들로 가득 찬 옷 장인데, 내가 뛰쳐나올 수밖에.

어린 희준이 뛰어오는 모습이 아른거리는 저녁이다. 산청이 너에게도 좋은 기억을 남겨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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