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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yoon Jul 12. 2020

나의 로망, 미니멀 라이프

비움을 누리는 일

잘 버리지 못했다. 내 나이만큼 먹은 것 같은 돌아가신 엄마가 사용하시던 절구통부터, 20여 년 전부터 받기 시작한 급여명세서(요즘은 메일로 날아오지만, 종이 급여명세서를 받던 그 시절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초등학교 때 일기장, 고등학교 때 입었던 교복, 해마다 의식적으로 새로 장만한 다이어리와 가계부, 내가 받았던 모든 종류의 편지와 카드.. 등 그렇게 버리지 못한 것들이 저마다의 역사를 담고, 그 시절의 기억을 품은 채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오밀조밀 들어찬 공간을 비워 낼 엄두도 못 내고 세월이 흐를수록 거기에 더해지는 아이들 용품들과 취미생활이 늘어날 때마다 더불어 그와 관련된 물건들도 집안 곳곳에 쌓이기 시작했다. 등산, 자전거, 캠핑용품들이 베란다를 점령하게 되었고, 심지어 9살 터울의 첫째 옷을 둘째에게 물려준다며 다락방에 차곡차곡 연령별로 박스에 라벨을 붙여 보관하기까지 했다.(나중에 결국 둘째는 입지도 못하고 다 버렸다)

익숙함에 머무르면서 낯선 것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결국 나를 거기에 붙잡아 두었던 게다




모성애가 뜨겁지도 학구열이 대단하지도 않은 엄마인데 유독 통학거리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참지 못해서 첫째가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대학을 들어가는 시점에 두 번의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등학교 입학때는 학교 담벼락 바로 옆으로 이사를 했다. 통학시간을 3분 내로 줄였지만, 늦잠꾸러기로 만든 부작용을 초래했다).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과 부가적으로 처리해야 할 골칫거리 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이사를 통해서 미니멀 라이프의 길로 들어선 덤까지 얻게 되자 이제는 또 다른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13년 정도를 한 집에서 계속 살다가 낯선 동네로 떠나던 날, 그렇게 많은 짐들이 우리 집에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끝도 없이 나오는 짐들에 이삿짐센터 사장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견적보다 실제 더 많은 짐들로 한숨을 간간히 내뱉는 이삿짐센터 사장님께 연신 굽신거려야 했다) 제일 많이 버린 것이 옷이었던 것 같다. 버리지는 않고 계속 사기만 한 4 식구의 옷들이 옷방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베란다, 다락방까지 차고 넘쳤으니까.. 그렇게 버리고 또 버리기를 계속하면서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시기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버리기에 더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당근 앱이라는 걸 가르쳐 주면서, 당근 세계에 빠져 부지런히 물건들을 올리고 팔기도 했다. 베란다에 널브러져 있던 캠핑용품들부터 동화책, 피아노, 책장, 토스트기.. 나에게는 필요 없이 공간만 차지하고 있던 물건들이 새로운 주인에게 가서 빛나는 기쁨을 선사하는 또 다른 보람도 느끼면서 물건을 처분하는 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21년된 서랍장

서현이가 태어날 무렵 애기옷과 용품들을 보관하기 위해 장만한 5단 서랍장을 얼마 전 당근 마켓을 통해 처분했다. 서현이가 대학교 2학년이니까, 21년을 함께한 그러면서 3번의 이사에도 흠집 하나 없이 잘 보존된 이 서랍장을 보내던 날, 시원섭섭한 감정이 밀려왔다. 신영이가 물려받아 사용하면서 붙인 스티커며 연필 낙서들을 깨끗하게 닦고 또 닦으면서 새로운 공간에서 그 쓰임을 다하길 바랬다. 부부가 함께 오셔서 이 서랍장을 데려가면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봉투를 건네는데, 다시 한번 짠 한 감정이 차올랐다.


이렇게 물건들을 처분하면서 나에게 찾아온 변화는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데 굉장히 신중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의 여백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미니멀 라이프의 길로 바짝 더 다가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비집으로 재탄생한 박스

하지만 어디에도 방해꾼은 존재하는 법, 미니멀 라이프를 살고자 부단히 애쓰고 있는 엄마의 최대적은 김 씨 자매이니.. 그중에서도 재활용 전문가 김신영 어린이는 내 뒷목을 잡게 만드는 주범이다. 버리지 못하고 자기 방에 쌓아두길 좋아하고, 두루마리 휴지심부터 각종 박스들은 오리고 붙이고 하면서 새로운 창작물로 탄생하기도 한다. 정녕 미니멀 라이프의 길은 이리도 헤쳐나갈 장애물과 극복해야 할 것 투성이란 말인가?



언젠가, 반짝반짝하게 닦아낸 가스레인지가 못내 뿌듯해서 SNS에 올렸더니, 지인께서 청소하는 비법을 물어보셨다. 어떤 특별한 기가 막힌 세제가 있느냐 궁금해하셨는데, 물건을 아끼는 마음과 습관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꾸준함의 결과랄까? 두 딸에게 항상 강조한다.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항상 깨끗하게 설거지 후에 배수구 거름망의 음식물을 버리고 가스레인지를 닦고, 주변을 정리하라고~(정리정돈 잔소리쟁이인데, 청개구리 두 딸을 개선시키기가 언제나 역부족이다)

이는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미니멀 라이프 4년 차,

꾸준하게 미니멀 라이프를 갈망하며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다.

물건에 대한 집착과 소유를 버리고 소비활동에 느슨해지면서 또 다른 성질의 소소한 행복거리를 찾을 때 삶은 풍요로움으로 채워지리라 믿는다. 그래서, 더 가벼워질 나의 삶을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비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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