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 Inflation
특별한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을 하나의 문화 소비이자 경험 소비로 인식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디서 뭘 먹었다"는 것이 그 사람의 취향을 드러내는 요소이자 인증 사진을 찍어 공유하고, 자신의 경험과 취향에 하나의 스토리를 더하고 싶은 욕망도 숨어져 있다. 취향 인플레이션으로 피로감이 증대하고 있는 요즘, 핫플보다는 아주 작은 것부터 세심하고 철저하게 지켜나가는 장인 정신이 깃든 그런 곳이 더 마음이 가고 발길이 간다. 그래서 더욱 신중해지고 고민하고 찾게 되는 식당, 내 소중한 한 끼 식사를 허투루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맛의 깊이가 다른 음식을 마주하고 이런저런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오늘은 뭘 먹을까'가 가장 중요한 하루의 미션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선호하는 요리 군은 아니지만, 40년이라는 시간의 꾸준함을 지켜 온 중국집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오래간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반가운 얼굴을 만나는 장소로 점찍어 두었다.
매장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세월의 깊이를 가늠하게 했다. 탕수육과 간짜장을 주문했는데, 메뉴가 제공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고, 그만큼 기대감도 한껏 올라갔다. 나는 이 순간의 기대감과 묘하게 얽히는 긴장감을 즐긴다.
정말 시간을 거슬러 그 시절에 먹던 딱 과거의 그 맛이었다. 인공적인 감칠맛이 없는 야채가 살아있는 순수한 간짜장과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었던, 케첩 소스 맛이 진한 소스에 소박한 야채들이 어우러진 탕수육이 자연스레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간 여행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계산을 하면서 사장님께 이 자리에서 얼마나 영업을 하신 거냐고 여쭤보니,
"아가씨 나이보다 훨씬 오래됐지~ 40년!" 하며 웃으신다. 갑자기 팩트도 잊은 채 40년 보다 오래 산 나의 나이를 한껏 낮춰 봐주신 사장님의 센스에 나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우연히도, 며칠 뒤 대학가에서 핫플이라고 하는 신상 중국집을 다녀오게 되었다. 최신 트렌드를 입힌 분위기에 플레이팅도 사진을 찍게 만드는 요소가 충분했다. 흘러나오는 음악도 힙했고, 중국집 같지 않은 중국 메뉴를 파는 카페 같은 느낌이었다.
세련미가 물씬 풍기는 이 공간에서 맛보는 짜장면은 허기를 채우기보다 한 그릇의 멋진 경험이었다. 맛있는 맛집보다 멋있는 맛집이 더 인기인 시대에 인스타 그래머 블한 것들이 넘치다 보니 먹는 것보다 여기저기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메뉴가 나오자 일단 인증 사진부터 확보하고 젓가락을 든다. (짜장면이 불든말든 사진의 각도 잡기에 여념이 없다) 중국집의 기본 베이스 양파 대신 양배추와 무말랭이가 기본찬으로 나왔고, 물 대신 시원한 재스민차를 제공하는데 정성스러움과 감성이 묻어 나왔다. 중식을 나름대로 트렌디하게 풀어내어 신선하고, 사장님의 생각과 고민이 고스란히 메뉴에서 느껴졌다. 유행만 좇는, 반짝하고 사라지는 곳이 아닌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탄탄하게 이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보쌈과 부대찌개를 만들고 먹고 함께한 그 세월이 23년이다. 좋아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잘하는 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늘 감사하다. 앞으로 더 오랜 세월을 깊이 있게 그리고 꾸준하게 고객들의 가치 있는 경험을 위해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그 첫 마음을 유지하고 싶다
레시피를 개발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나의 취향을 한티재라는 브랜드에 녹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취향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브랜드는 함께하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억지스레 표현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발현됩니다
-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中 / 강민호 -
유독,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잘 먹기 위해서 운동도 하고 체중조절에도 예민하게 안테나를 세운다.
미니멀 라이프를 살고자 하는 강박증에 물건에 대한 집착과 소유는 줄어들고 있으나,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자제력을 잃기 십상이다. 단순히 먹는 걸 좋아하는 것과 이것이 나의 일이 되었을 때는 다른 시점에서 그 본질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수없이 많은 식당을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배운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명확하게 구분하게 되고, 진정성 있게 차별적 가치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브랜드를 만들고, 똑같은 간판이 하나둘씩 늘어날 때마다 책임감과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에서 든든한 한 끼 식사를 하는 그림을 그리고, 그 공간을 은은한 조명과 재즈음악, 세심함으로 채우고자 했다. 코로나 훨씬 이전이었으나, 위생과 개인별 제공에 초점을 맞추었다. 생수 제공과 1인 부대찌개, 1인 보쌈, 밥과 반찬은 무한 리필되는 넉넉함, 하루 두 번 삶는 수육, 갓 지은 밥, 당일 만드는 보쌈김치 등 시간과 품을 들여 가치 있는 식사를 제공하는데 혼신을 다한 시간들이었다. 고객들의 가슴에 강력한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
이렇게 장사해서 남는 게 없다, 식재 원가가 높다, 인건비가 너무 많이 나온다, 이런 메뉴를 추가하고 싶다 등의 소리는 선택과 집중에 방해가 된다. 장사의 고수들은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에 투자를 해야 할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트렌드에 몸을 싣고 흘러가고 싶지는 않다. 얕은 장사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지금도 품질에 투자하기 위해 노력한다. 단언컨대, 투자한 만큼 정직하게 고객들이 반응하고, 계산할 때 엄치 척하면서 정말 최고였어요!라고 외친다~
마트에 파는 시판용 순두부가 아닌 식감 좋은 몽글몽글한 수제 순두부로 업그레이드, 해산물을 강화하고, 부대찌개의 햄을 오리지널 스팸과 넉넉한 재료들로 충실함을 더하고, 물기를 최대한 없애기 위해 주문 후 매트하게 버무려 내는 보쌈김치, 매장에서 매일 아침 직접 만들어내는 반찬 김치,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들은 결국 치열한 환경 속에서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한 치트키임을 비밀스레 말하고 싶다. 소란스럽게 티 내지 않아도 소리 없이 강한 브랜드로 오래도록 남고 싶은 바람이다.
대구시민이라면 한 번씩 다 가 봤을 정도로 오픈 당시 힙했던 카페를 그러니까, 오픈 이후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시 찾게 되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매장이었는데 너무나 조용하고 한산한 모습에 조금 당황하며,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워졌다. 트렌드가 빠르게 이동하고 익숙함과 흔함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현실에서 꾸준함을 지켜나가며 장사를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과제인지 다시 한번 가슴이 덜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