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생이 말한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정독하면서 스스로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꼰대 체크 리스트의 테스트 결과 놀랍게도 조금 심각한 꼰대로 나왔다. 꼰대 기질이 다분한 것이다 ) 다짐했었다. 하지만, 지금 98년생 혜원이와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면서 조금씩 꼰대 기질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코로나의 영향을 비켜갈 재주가 없었던, 그래서 내 일상의 변화도 급격히 찾아왔다. 애써 이러한 변화의 시간들이 내 경험치를 확대해 줄 거라는 초긍정의 마인드로 세팅하면서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공동투자를 한 매장은 오픈한 지 3개월이 갓 지날 무렵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게 되었고 애타는 가슴을 쥐어짜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대대적으로 정직원들을 정리하고, 휴업에 들어갔다. 2주간의 시간이 흐르고 마냥 휴업 상태를 장기간 끌고 갈 수도 없었다. 긴급 회동을 가진 동업자들은 정직원의 자리를 우리가 대체하고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나는 업무 후 오후 5시가 되면 매장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그 시간이 벌써 2개월이 지나고 있다. 언제쯤 다시 평범했던 내 일상을 찾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이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하고 진정성 있는 일의 본질을 찾게 될 것이라 믿고 싶다
혜원이를 처음 마주한 순간, 나를 오후 파트타임 직원으로 소개했다. 나는 오후 5시에 출근이라고 하자
혜원이는 해맑게 저는 6시부터 9시까지 일한다며, 간략히 자신의 신상 소개를 했다. 사실 2000년생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20대들의 사고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만,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정말 많았다.
엄마이기 때문에 자식에게는 큰소리 칠 수 있고 때론 혼을 낼 수도 있지만, 업무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20대를 이해하기엔 내 인내심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하나의 선을 경계로 전혀 다른 이들의 세상을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말이다
또 다른 20살의 아르바이트생도 마찬가지, 이들은 시간 개념이 정확했다. 정확해도 너무 정확했다. 6시부터 9시까지 일을 하기로 했으면 출근시간은 정확히 6시 2~3분 전쯤이고 퇴근시간은 정확히 9시이다. 20분 전 일찍 와서 유니폼 갈아입고, 워밍업 하는 시간은 이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전에 딸아이가 수능 치고, 집 앞 통닭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출근시간 10분 전인데 아직 집에서 꾸물대고 있는 걸 보고, 잔소리를 했었다.
20분 일찍 좀 가라고, 그러자 딸아이가 하는 말이 그런다고 월급 더 주는 거 아니잖아요? 시간 맞춰서 가면 되죠~ 그때의 경험으로 이들에게 더 이상 내 기준으로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 시간 늦지 않게 오는 게 어디야~) 너무 6시 칼 출근하는 혜원이를 향해, 오늘도 정확하네~라고 푸념 어린 말을 뱉자, 옆에서 최 사장이 그런다. "요즘 애들 다~ 그렇습니다~"
혜원이가 하루는 라떼를 사 와서 건네면서 이야기했다.
"이 말 아세요? 라떼는 말이야~"
" 어? 어... 그게 무슨 말이야?
" 왜 어른들이 말하는 나 때는 말이야~이랬는데 말이지... 그거요"
" 아.. 하..."
그 이후 나는 혜원이에게 과거의 기준을 가지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라테를 마실 때마다 이 말이 자꾸 떠오른다.
모든 기준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90년생들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70년대생의 사고로는 감당이 안 되는 순간이 많다. 그 날은 저녁식사로 치킨 배달을 시켜 먹게 되었다. 다리와 날개를 자신의 앞접시에 쟁여두는 혜원이를 보고 김 사장이 한소리를 했다. 나중에 직장 들어가서 이러면 직장상사에게 미운털 박힌다는 뉘앙스로,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치킨 다리를 뜯고 있는 혜원이에게 나는 닭가슴살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 저랑 찰떡궁합이시네요~ㅎㅎㅎ"
퇴근시간이 되면 매장의 상황이 어찌 되었건(바빠서 손님이 나가고 간 빈 테이블을 못 치고 있는 경우라든지, 쓰레기를 비우고 정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라도..) 칼퇴근을 하는 혜원이를 야박하다 할 수도 없고, 나라면 제가 좀 더 정리하고 갈게요~할 텐데..라고 나의 프레임에 끼워 맞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퇴근시간 이후 밥 좀 먹고 간다는 혜원이는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서, 느긋하게 핸드폰을 보면서 한 시간 가까이 밥을 먹고 있다. 퇴근시간 이후이니 뭐라 터치할 수 도 없고, 그래 밥을 일찍 먹는 사람도 있고, 늦게 먹는 사람도 있는 거지.. 밥 먹는 거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할 거면 애초에 밥을 주지 말았어야 했지. 에효.
나 때는 말이지, 너무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 할 때는 교대로 창고에 가서 김밥이나 햄버거를 입에 쑤셔 넣고 소화될 시간도 없이 다시 일했었단다~이런 말은 그냥 목구멍으로 삼켜야 하는 게 현실이다.
"요즘 젊은 놈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은 아마도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4000년 전 바빌로니아 점토판 문자를 비롯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등장하니 말이다('90년생이 온다' 中)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 '열정이 사라지고 도전정신이 없어서, 그저 편한 복지부동의 일만 하려는 나약한 세대'라는 편향된 사고에서 벗어나 혜원이와 공존하며 일하기 위해서 이해하기 어려워도 받아들여야 할 것들을 알아가는 중이다. 또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고, 그를 토대로 좀 더 높은 해상도로 다가 올 온갖 감각들을 열어 둘 참이다.
요즘 스페인어를 배운다면서 나랑 같이 배우자 하기도 하고, 집에서 와인과 감바스 재료를 가지고 와서 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블루투스 스피커도 가지고 다니면서, 무슨 노래가 듣고 싶다고 하니 바로 플레이해주기도 하고, 이런 혜원이 덕분에 고단함 속에서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슴을 치기보다는 나를 내려놓기로 했다
새벽 5시에 기상하는 아침형 인간인 나와 오후 5시에 기상하는 전형적인 야행성 인간 혜원이와의 공존 시간대는 그리 길지 않지만, 함께 호흡하는 공간 속에서 우리의 생각 차이를 좁혀 보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깊게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 나갈 것이다. 우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할게~ 그리고, 새로운 세대인 혜원이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얻을 수 있는 명확한 이점만 생각하자! 고 다짐한다.
새로운 세대에 대한 내부자적 시각과 90년생의 말과 행동의 전반적인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들을 채용하고, 교육해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는 사업가이기에 혜원이와 함께 일하는 이 순간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