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a yoon May 15. 2022

도대체 사춘기는 언제 끝나니?

사춘기 중학생 딸과 엄마의 성장통

굳게 닫힌 방문이 아이의 심리 상태를 말해준다는 것을 수차례 고함을 내지르며 방문을 두들기다 알게 되었다. 방문이 아주 활짝 열려 있을 때는 평온한 상태, 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을 때는 반항심이 옅어진 온순한 상태, 방문이 잠겨진 상태라면 '나 건들지 마요'라는 암묵적 반항의 상태인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서 딸아이는 부쩍 키가 많이 컸고, 신체적 변화도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항상 맨 앞줄에 앉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아이였지만,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첫째도 똑같이 또래보다 작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자연스럽게 보통의 어른처럼 컸기 때문이다. 신체적 변화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달라진 아이의 마음과 태도는 수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꾸만 온순하게 자란 첫째와 비교하면서, 얘는 왜 이래? 의문의 불만을 품게 되었다.

9살이나 차이나는 언니와의 다툼이 잦고, 반항의 정도가 날 항상 시험에 들게 했다. 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어서 빨리 이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엄마의 감정 폭발 한계점을 정확히 알고 공격하는 아이에게 늘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학교를 가지 않고,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어지럽히는 것을 주요 무기로 삼는다. 이 강력한 무기를 방어할 뾰족한 묘안이 없었고, 마침내 강력 대응으로 맞서기로 했다. 학교에 가기 싫다며 무단결석을 일삼는 아이에게 학교를 그만두자라고 했다. 함께 학교를 가서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어머님, 괜찮으시겠어요?"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힌 나에게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속으로 이쯤 되면 울면서 엄마 잘못했어요~학교 다닐게요, 라며 잘못을 뉘우치겠지 했던 시나리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굳게 다문 입은 단호해 보였다.

슬슬 앞날에 대한 걱정이 몰려왔지만 여기에서 항복하면 엄마 알기를 우습게 여길 거라 생각하니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다. 교장선생님과의 면담 일정을 남겨두고, 학교를 나서며 이제 이렇게 진짜 학교를 그만두는 것인가, 초졸로 이 아이의 학교 생활은 마침표를 찍는 것인가, 답답하고 막막함이 밀려왔다. 아이를 집으로 보내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방문이 굳게 닫힌 채로 꼼짝도 하지 않는 아이에게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이틀을 그렇게 보내더니, 담임선생님께 먼저 전화해서 학교 다니고 싶다고 했다 한다. 아이와의 기싸움에서 이긴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찌 됐건 학교를 그만둔다라는 초강력 한수는 명중했다. 지금 학교를 잘 다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달고나 만들기를 하고 가스레인지 주변에 온통 설탕 테러를 일으킨다. 먹으면서 흘린 과자 부스러기는 절대 줍지 않는다. 방바닥을 온통 입고 벗은 옷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만들어놓는다. 쓰레기는 버리지 않고 모은다. 물건이 가지런히 제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한다. 씻지 않는다 등등... 이런 만행들은 나의 인내심에 불을 지른다. 진압하기 힘들지만 내려놓기 명상과 수행으로 이겨내며 참아내고 있다. 그래도 아프지 않고 몸 건강한 게 어디 야하며 기대치의 수준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가느다란 희망의 밧줄을 부여잡고 있다. 이건 다 사춘기를 격하게 앓고 있는 거라며, 이 또한 지나가면 다 괜찮아질 거라며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인터넷과 핸드폰, 게임 중독 사례의 심각성을 접하면서 아이에게 최대한 그 사용 시기를 늦춰야겠다 결심했다. 스스로 통제력과 자제력이 생길 나이까지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집에 인터넷 설치를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스마트폰도 사주지 않았다. 철저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보낸 아이는 밖에서 뛰어노는 시간이 많았고, tv조차 없는 집에서 머무는 시간보다 자전거를 타거나, 배드민턴을 치면서 활동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긍정의 효과를 뿌듯하게 여기며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 친구들과의 소통을 위해 이제는 스마트폰을 사주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유를 얻게 되면 방종하게 되는 것인지, 신세계를 접한 아이는 스마트폰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집을 나가 동네 공원, 편의점에서 밤늦게까지 머무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통제불능의 상태였다. 당연히 학습에도 영향을 미치고, 공부는 다른 세계의 일이 되어버렸다. 서른이 넘도록 게임에 빠져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며 살고 있는 주변 지인의 아들을 보면서 강하게 통제하는 것에만 몰두했었다. 차단하고 막을수록 더 강한 욕망을 키운 셈이었다. 욕망이 터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되었다. 아이는 스마트폰을 하느라 밤에 잠을 못 자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겨우 학교를 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건강에도 이상이 생겼다. 수면부족이 몸에 이상을 일으켰고, 편도가 부어올라 병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쉽게 치료되지 않던 편도염은 강력한 항생제 부작용으로 피부병까지 앓게 되었다. 친구의 아들도 게임 중독으로 컨트롤이 힘든 상황이라 늘 충돌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사회적 문제인가 싶다가도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며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 보면 한없이 부러움의 시선이 머문다. 지금은 아이와 협상의 물고를 터서 핸드폰 사용 시간을 밤 10시 30분까지로 잠정 합의하고 실천 중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도 함께 태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의 역할도 처음이니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부족한 것 투성일 때가 많다. 이기적 관점에서 아이를 소유하고 움직이려 하기도 한다. 아이의 사춘기를 온몸으로 함께 겪는 엄마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내 아이는 안 그러겠지 했던 현상들이 속속들이 눈앞에 펼쳐질 때 당혹스러움에 혼자 울기도 한다. 속상한 마음에 옛 어른들의 레퍼토리 '너 같은 애 똑같이 낳아서 키워봐~'하면 날름 '저, 애 안 놓을 건데요?' 받아친다. 시간이 해결해준다. 도리 없다. 첫째 아이도 뾰족하던 시간들이 지나 뭉툭하게 변하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더라. 아이도 엄마도 성장통을 겪으면서 한 뼘 자라난다.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면 좀 더 지혜롭게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바람처럼 휙, 스쳐가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시국, 목욕탕을 간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