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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yoon May 29. 2022

도시락 싸서 도서관으로 출근합니다

도서관 사서의 꿈을 응원하는 엄마

미대를 갈 거라면서 미술학원에 돈을 쏟아붓던 아이가 어느 날 사서가 되겠다고 했다. 사서라는 직업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그게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방송국에 취직하겠다면서 연기학원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나의 엄마가 물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지만, 도서관 사서를 꿈으로 정하고 아이는 달려가기 시작했다. 대학 전공을 문헌정보학과로 정하고, 틈틈이 도서관 기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렇게 꿈에 조금씩 다다르고 있는 아이가 대견스럽다


이번에는 집과 제법 거리가 떨어진 도서관에 주말마다 사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일터로 향하는 딸아이가 애처로워 나도 모르게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걸리는 거리를 20여 분 만에 편안하게 데려다주고, 도시락도 싸서 점심시간 함께 먹는다. 도서관 문 열 때 함께 입장해 창가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간간히 흘깃흘깃 딸아이가 일하는 모습도 관찰한다. 나름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유별난 엄마라기보다, 이렇게라도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를 이해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로 독립해서 홀로 살아가기 시작한 대학 4학년 딸아이다.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도리가 없었다. 9살 어린 동생과의 마찰이 온 가족을 스트레스로 내몰았고, 본인의 의사 결정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온전히 독립체로 살아가면서 세상살이를 직접 경험해 보라고 단호하게 마음을 먹고 또 먹었다. 독립의 조건은 물리적 거리두기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적 독립도 의미했다. 편의점, 떡볶이 전문점, 식당 등등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아이가 늘 안쓰러웠지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스스로 부딪히면서 배우고 깨닫길 바랬다. 그러면서 도서관 기간제 직원 모집 공고를 챙기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번에 운 좋게 지원한 도서관에 합격했고, 어쩌다 일요일이면 함께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일주일 내내 일하고, 일요일은 느긋하게 늦잠도 자고 뒹굴고 싶은 맘도 크다. 하지만, 함께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밥을 먹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더 큰 것 같다.



계란 6개를 풀어 소금 간을 하고, 빨강, 노랑 파프리카와 대파를 송송 썰어 섞는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약불에서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며 말고 또 말면서 굽는다. 어느새 두툼한 계란말이가 완성되었다. 파프리카 향이 확 퍼지면서 알록달록한 계란말이가 도시락 한편에서 존재감을 뿜어댄다. 단짠 소불고기는 얇게 슬라이스 한 불고기용 소고기의 부드러운 식감이 관건이다. 키친타월로 핏물을 눌러 빼고, 양파와 배를 함께 갈아 간장, 마늘, 설탕, 올리고당, 후추, 맛술, 참기름과 함께 하룻밤 냉장고에서 숙성시켜 둔다. 파프리카, 부추, 버섯, 당근을 손질 후 슬라이스 해서 통에 담아놓는다. 아침에 양념해 둔 고기를 파 기름 낸 프라이팬에 야채와 함께 휘리릭 볶아 통깨 솔솔 뿌려 마무리한다. 아삭한 상추는 전날 밤에 씻어 두고, 참외도 깎아서 미리 준비해둔다. 김치는 따로 유리병에 담고, 아침에 갓 지은 잡곡밥을 보온도시락통에 담는다. 아침은 늘 부족한 잠으로 대신하는 아이를 위해 샌드위치와 커피를 준비해 달리는 차 안에서 먹도록 한다. 도서관은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기에 참으로 좋다. 따뜻한 밥과 정성스럽게 준비한 반찬을 먹노라면 함께라서 든든한 시간을 선물로 받는 것 같다 




이른 아침 도서관 문을 열자마자 머리가 희끗하신 어르신이 맞은편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으신다. 책상을 물티슈로 꼼꼼하게 닦고, 신문 한 장을 깔고 그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으신다. 뭔가 열심히 동영상 강의를 들으시는 것 같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로 도서관은 북적이기 시작한다. 가방 수북이 대출한 동화책을 반납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앉아 책을 보기도 한다. 반납한 책들을 다시 제자리에 정리하고, 이용자들의 대출과 반납 처리 업무를 수시로 하는 딸아이가 쉴틈이 없어 보인다. 고요한 도서관에 특별한 사건은 없을 것 같지만 크고 작은 일들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었다. 그걸 대응하고 처리해야 하는 업무도 사서의 몫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자료실에 방문했었던 부모가 다급히 데스크로 달려와 핸드폰을 자료실에 두고 갔는데 없다고 한다. CCTV를 돌려보길 요청하고, 그러다가 밖에서 핸드폰을 찾았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잎 클로버를 주고 가는 이용자도 있고, 할아버지 한분은 대학 4학년이라는 아이에게 연습장에 빽빽하게 손수 적은 추천하는 기업 리스트를 주고 가신다. 그렇게 동네 작은 숲 도서관은 사람 사는 이야기로 분주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다음주 도시락 메뉴는 뭘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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