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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yoon Jun 05. 2022

김밥에 꾹꾹 눌러 담은 엄마의 마음

엄마표 우엉 김밥

길을 걷다 마주한 노점상에서 마지막 떨이 우엉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어둠이 깊어지는 찰나 서둘러 자리를 털고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어르신의 눈빛이 와닿았다. 말도 안 돼 는 가격이라 죄송한 마음이 더 컸지만, 덥석 받아 들고 가던 걸음을 재촉했다. 꽃다발 인양 한 손에 움켜쥐고 아랑곳하지 않은채 지하철을 탔다. 괜히 일거리를 만들었나 자책하면서, 벌써부터 몸과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걸 언제 손질해서 김밥을 만들지? 그냥 마트에서 단무지랑 세트로 파는 걸 살걸 그랬나? 오만가지 마음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편리함으로 치자면 그냥 아침 일찍 문 여는 동네 김밥집에서 두줄 사다가 도시락통에 엄마가 만든 것인 양 싸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런 편리한 마음이 행여 아이에 대한 사랑의 크기로 재단될까 봐 늘 손수 재료를 사다가 김밥을 말아준다. 그런데 오늘은 어쩌자고 덜컥 우엉을 사버렸다. 평상시에는 생략되던 우엉인데 말이다.

생각보다 일이 몇 곱절은 더 많았다. 우엉을 씻고, 껍질을 벗기고 자른 다음 얇게 슬라이스 해서 간장에 조린다

우엉조림은 은근히 인내심이 필요한 요리이다. 만들다 보면 사다 먹을  하는 얄팍한 생각이 치고 올라온다. 더군다나 손질되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우엉이라면 더욱더 자책골을 넣은  마냥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인내심과 정성이 더해진 우엉조림을 맛보는 순간  우엉을 집어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손질된 우엉은 식용유에 살짝 볶아 , 맛술, 설탕, 진간장을 더해 뭉근하게 조린다. 마무리로 참기름과 올리고당을  두르고 통깨를 톡톡 뿌려주면 끝이다.( 통깨를 뿌리는  순간이 제일 좋더라)


우엉의 양이 너무 많아서, 일부는 덜어 난생처음 우엉차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한다.

이것 또한 인내심을 키우기 좋은 시도이다. 슬라이스 한 우엉을 채반에 펼쳐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며칠을 말린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덖는다(볶는다). 이걸 3번 정도 반복한다. 점점 뭔가 형태가 되어가는 비주얼에 안도감이 들고, 마지막으로 빈 유리병에 담는다. 머그잔에 우엉 4개 정도를 담고, 팔팔 끓인 물을 부어준다. 은은하게 갈색 빛깔이 우러나기 시작하고 진한 우엉 향이 퍼지기 시작한다.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냉장고에 시원하게 두었다가 얼음을 동동 띄워 먹기도 한다.


그럼, 본격적인 김밥 말기를 시작해볼까?(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유명 김밥집 스타일을 따라 해 본다. 참치는 기름기를 쫙 빼 마요네즈와 후추를 살짝 뿌려 준비하고, 당근은 채 썰어 소금 넣고 볶아준다. 계란지단은 최대한 얇게 여러 장 구워 자른다. 깻잎은 씻어 물기를 제거한다.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 설탕, 소금, 참기름으로 간 해 뜨거운 김을 빼준다. 김발을 도마 위에 펴고 거친면의 김을 위로 올라가게 올린다. 밥을 김 위에 최대한 얇게 펴 깻잎을 깔고, 나머지 재료들을 가지런히 올린다. 재빠르게 한번 말아 김발로 잡아주면서 꼭꼭 힘주어 말아준다. 참기름을 쓱쓱 완성된 김밥에 발라주고, 먹기 좋게 자른다. 역시나 기분 좋은 마무리는 통깨를 톡톡 뿌려주는 것이다.



아이의 도시락을 채우고, 접시에 가지런히 담은 김밥을 입안으로 가져간다. 이미 김밥을 자르면서 김밥 꼬투리를 입으로 부지런히 옮긴 탓에 정작 식탁에 앉아 본격적으로 먹을라치면 몇 개 더 먹지 못한다. 음식을 만들면서 재료 손질부터 완성되기까지 수고스러움이 더해지면 먹을 때 미소가 지어진다. 입안에 퍼지는 깊은 맛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또 편리함을 뒤로하고 스스로 고단한 과정을 선택하는지 모르겠다.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면서, 두 아이의 현장체험학습일에 단 한 번도 김밥을 남의 손에 맡긴적이 없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족한 사랑도 꾹꾹 눌러 담아 단단히 말아준다. 그런 김밥을 펼쳐 든 아이들에게 엄마의 마음이 가 닿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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