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뒤적이면 잘 조립하면 어쩌면, 괜찮은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01. 말을 잘 못해서 글을 쓰는데, 글마저 꼬인다.
영화「킬러들의 수다」 속 원빈의 대사가 떠오른다.
“마음속으로 말을 하는데 왜 발음이 꼬이는 걸까.”
수년 전 신박하다며 깔깔대고 봤던 영화 속 장면이었지만, 우습게도 지금 내가 그렇다.
분명 마음속으로 말을 하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 대체 왜 나는 말을 더듬고 발음이 꼬이는 것일까. 심지어 홀로 앉아있는 방의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아마도 이것은 누군가 읽고 있을 이 글이 내겐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이 어색하고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5년 전 늦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생활을 하던 나는 상사와 업무 이야기를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머리가 핑 돌고 숨이 가빠져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고, 기억이 나는 시점의 나는 병원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 심전도 검사를 비롯한 몇 가지의 검사와 상담을 거쳐 부정맥은 아닌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그럼 저는 뭐가 문제인가요?”라고 물었고, 의사는 전에도 이런 적이 있냐며 내게 되물었다.
내게는 마음속 네모난 상자가 몇 개 있다. 상자를 열면 그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상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통스러운 기억 혹은 날 울리는 몇 가지의 단어들. 그리고 받아들이기 싫은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어떤 것들이 형체를 숨기고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내 앞에 서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의사는 그중 하나의 상자를 기어코 열게 만들고 있었다. 입술을 떼기가 썩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아, 몇 번 있긴 했어요.”
“어쩌면 공황 증세일 수 있으니 해당 학과에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다소 냉소적 말투로 말을 하고는 수액을 다 맞고 퇴원하라는 말까지 덧붙이자 다음 환자에게로 몸을 돌렸다.
회사의 연락을 받고 놀라서 한 걸음에 날아오신(?) 부모님은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나오는 나를 보며 괜찮은지 물었고, 그들의 곁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긴장하고 있던 지금의 남편이자 그 당시 남자 친구는 다소 상기된 얼굴에 걱정이 많이 묻어나 보였다. 물론 부모님의 그날의 상태는 몇 줄의 글로 표현되지 않을 만큼이라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여하튼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의 대화처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공황장애 인가 봐’라는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단정 짓 듯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젠가부터 내가 공황장애일 수 있겠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정신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나이 서른. 외면했던 나를 마주할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