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밤은 누군가의 낮이었다.

by 오름

03.


기억을 거슬러 나의 십 대를 말하자면,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슬며시 드리워진 거실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신을 찾던 모습이 많은 날을, 아니 대부분의 날을 차지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나이에 신을 알 리는 없었고 그저, 신이 있다면 당연히 나를 구원해 줘야 한다 생각했던 것 같다. 잠 못 드는 날이 잠드는 날을 넘어서는 그즈음부터 내게 기도는 간절함이 더해진 습관이었다. 단 한 번도 내 기도가 이뤄진 적은 없었지만 그마저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들이 많았다. 덕분에 서른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불면증에 새벽에 잠드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내가 일곱이 되던 해에 아빠는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그 사고는 다정했던 아빠를 조금은 난폭하게 만들었고, 여덟의 나는, 그즈음부터 엄마와 여동생을 지켜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에 휩싸여 아이 같지 않은 아이가 되어갔다.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거짓말을 시작했고, 눈치가 늘었으며, 엄마를 ‘가엾은’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기 시작했다. 가엾다는 사전적 의미를 엄마를 통해 알아가게 됐던 것 같다. 즐거움, 웃음, 행복과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먼 어린 시절이 뒤늦게 엄마가 아닌 어린 날의 내가 가엾게 느껴지곤 한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나는 그 사실이 슬펐다. 낮에 사람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들 사이의 평범한 사람인 척하는 것이 나의 우울한 기분을 잊게 해 주었는데,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지는 해를 혼자 보고 있으면 감당할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와 온몸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아무 일 없이 잠들 수 있게, 하나님 제발 한 번만 기도를 들어주세요.’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어릴 적 순수했던 모습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간절함은 억척스럽다는 말로 되돌아와 마음에 생체기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는 지난밤부터 아침까지 이어지는 아빠의 괴롭힘이, 자꾸만 아빠의 심기를 건드는 행동을 하는 엄마에게로 내 미움이 옮겨갔다. 거짓이라도 좋으니 그냥 아빠 기분을 맞춰주면 이렇게 힘든 아침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왜 아빠가 아닌 엄마를 미워했을까. 예상보다 내 안의 답은 간단했다. 아빠는 머리를 다쳤으니까. 아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는 행동일 테니까. 이 핑계는 아빠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이유마저 없었다면 내 안의 아빠는 어떤 존재로 남았을까.


학교에 가기 싫었다. 내가 없는 사이 엄마가 어떻게 될까 봐 차라리 내가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방 문 너머 긴 어둠으로부터 이어지는 끔찍한 밤을 보내고 해가 목젖에 걸려 아침이 된 걸 알면 피곤함도 잊은 채 엄마를 지켜야 했다. 아침까지 이어지는 아빠의 괴롭힘이 엄마를 지켜야 하는 강박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어쩌면 엄마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 엄마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한 손에 잡히는 팔목으로 아빠를 견뎌냈고, 고된 공장생활을 보냈으며, 나와 동생을 끝까지 지켜낸 엄마. 무엇보다 삼, 사십 대를 힘겹게 버텨냈을 엄마의 잔상을 떠올리는 일이, 그때의 우리가, 흐릿하게 시야를 가려도 더는 가여운 엄마가 아닌 스스로 행복한 엄마로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엄마의 시간을 전부 알 길은 없지만 가늠하건대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다 커서 하는 생각이지만 ‘엄마’라는 단어가 참 좋다. 엄마가 엄마여서 좋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을 텐데 우리의 곁에서 잘 버텨줘서 참 좋다. 고맙다는 표현보단 좋다는 표현이 참, 좋다. 엄마가 영원히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또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이들이 당연한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도 엄마가 된다면 당연한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방 문밖에서 숨죽여 기도하던 밤들이 내 낮보다 더 간절했다. 어쩌면 나의 밤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나는 더 많은 간절함으로 긴 밤을 보낼 준비가 되어있다.

이제는 강박이 아닌 책임감으로.

한 단어를 쓰려고.


머릿속에서 수건 돌리기를 하고 있다.

빙빙 돌아봐야 어차피 술래는 나인데,

어느 등 뒤에 수건을 놓을지 고민하는 꼴이 아주 흥미롭다.


며칠째 수건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저, 돌고 있다.


마음이 생각을 하게 하고,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기까지.

하늘은 붉었다 검었다를 반복한다.

붉은 하늘이 검은 하늘로 넘어가는 그 순간을 보기 위해.

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냥 처음부터 그랬다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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