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행복하면 된다는 것
바로 행복감을 '너무' 잘 느낀다는 거예요.
물론 그 자체로 장점이지만 이 것이 매번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오랜 기간 끈기를 가지고 노력해서 결국엔 성공했다거나,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람들의 기사를 읽어보며 생각에 빠지고 감탄하는 저인데요. 그때마다 단 한 가지 목표가 있을 때, '남부럽지 않은 일상을 묵묵히 지나쳐온 사람'이 곧 이렇게 멋있고 떠들썩한 성취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닌 이유에 대한 질문과 목표가 생긴다면 그러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반복하면서요. 제 노력이 통했을 때보다는 타인의 꾸준하고 정직한 성공을 보았을 때, '공짜는 없다.'라는 절대 이치를 순순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저는 '될 놈은 된다.'라는 말은 주로 이럴 때 떠올려요.
저는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그런 끊기 있는 노력형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자각하고 있어요. 저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저보다도 빨랐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 기간 때 논술학원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너는 처음 볼 때부터 행복지수가 항상 높다?" 하셨었죠. 사실 저는 성적 측면에서 논술 전형과는 관계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긴장감 속에서 진행되는 지문 내용을 분석해서 발표하고 질의를 받는 식의 수업은 정말로 재밌기만 했습니다. 누군가는 인생이 걸려 울고 떨기만을 반복하는 중에, 글쓰기라도 배우라는 의미로 그 학원에 보내진 저를 선생님께서도 재밌어하시면서 던진 말씀입니다. 혼자 입시철 분위기와는 별개로 혈색이 잘 도는 게 고1보다 어린아이 같았달까요. 대학교 입학은 제게 인생이 걸린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학과명과 수강 과목들로 예측할 수 있는 직업들이 제 인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차피 당시 제 꿈과 직결된 학과에 대한 정보도 준비도 없었던 상황에서, 어떤 전공 어떤 학교에 입학해도 제가 원하는 삶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동시에 그 반대로, 모든 경우를 비관했을지도 모릅니다. 전문적인 이공계열 또는 교육 관련 직종을 목표로 두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전공과 일관된 커리어가 뒤늦게 필요했다면 정말 이렇게 살아온 것을 후회했을 것이 확실하니까요. 한편으로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 분들이죠.
아무튼, 누구도 이렇게 웃고 있는 매 순간에 단 한 가지 생각만 할 수 없습니다. 힘들 때 힘든 이유를 잊지 않을 수 있다던가 꿈을 생각해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다던가 하는, 말하자면 '쾌락을 포기하는 것', 그것에 가장 실력이 없는 사람이죠. 사실 아주 어릴 때부터 많은 이들이 원하는 공부, 직업, 자리를 얻기 위해서 경쟁을 빼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세상에서는 너무도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머리가 좋았다면 장점 그 자체로 남아있었을 것 같은데요. 슬프지만 이 단점을 알아챈 것 말고는 딱히 남들보다 뭔가를 더 잘 기억하거나 빠르게 알아채는 사람도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