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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요 Jan 02. 2021

아이린&슬기-놀이(Naughty): 뭘 좀 아는 미니멀

2020 케이팝 돌아보기



두괄식으로 말하자. 이 곡에게 감히 2020 베스트 케이팝 퍼포먼스, 베스트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주고 싶다


이 곡과 활동이 어떻다를 말하기 전에, 뮤직비디오 먼저 분석해보자.

스토리를 시각적으로 정말 간결하고 명확하게, 또 매력있게 담아낸 정말 좋은 뮤직비디오다.

음악과, 퍼포먼스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뮤직비디오의 도입.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공간에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 아이린슬기를 편 가르기 할 것이다.

(슬기의 상징 색상이 파랑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만 노란 글씨는 잘 안 보인다...)


먼저 아이린을 보자. 밝은 실외에서 가로 직선이 강조된 짧은 원피스를 입고 있다.


슬기는 어두운(조명이 있는) 실내에서 둥근 절개가 들어간, 반짝이는 동그란 장식이 줄지어 달린  바디수트를 입고 걷고 있다. 각자의 공간을 닮은 의상이다.


두 사람은 닮은 헤어&메이크업 스타일링을 했지만, 어둠, 그리고 곡선직선의 다른 디테일을 가졌다. (캡처해놓고 보니 푸른색과 붉은색이기도)



의상의 디테일이 잘 보이는 마지막 장면.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옷.





다음은 각자의 솔로 파트이다


 옷을 입고 밝은 벽에 선 아이린


검은 옷을 입고 어두운 벽에 선 슬기




다음은 첫 번째와 두 번째 후렴의 장면이다


두 번째 후렴. 밝은 벽의 직선 패턴 앞에서 춤을 추는 아이린슬기


마찬가지로 두 번째 후렴에서 흑백 직선 효과가 반복되는, 밝은 벽에서 춤을 추는 둘




첫 번째 후렴. 캡처를 거지같이 했지만 손전등 같은 둥근 조명이 계속해서 둘을 비춘다. 마치 흑백영화 필름이 돌아가듯이...


  

이 역시 첫 번째 후렴. 슬기가 있던 어두운 동굴에서 춤을 추는 둘.




대충 분홍색파란색을 분리한 것이 무슨 의도인지 눈치를 챘을 것 같다.


각 속성을 연결해보자

.    아이린 : 직선 - 빛 (곧게 나아가는 빛 - 해? 지상?)

.    슬기 : 곡선 - 어둠 (감싸안는 어둠 - 달? 지하?)


이것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둘을 대비시키고자 했을 것이라는 점!

(타이틀곡인 '몬스터'에서도 아이린과 슬기는 대비된다)


그렇다면 이 반대되는 성질은 어떤 효과를 만들어낼까?




아이린과 슬기의 놀이가 '무슨 놀이'냐고 묻는다면


그림자놀이다.




자, 텅 빈 공간을 상상해보자.


텅 빈 공간에 그림자가 생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텅 빈 공간에 그림자가 생겼다는 것은 무엇을 증명할까?


그림자가 생겼다는 것은 존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빛의 공간에 존재가 나타나면 그림자가 생긴다.

완전한 어둠의 공간에 그림자가 생기려면 빛이 필요하다.


그림자어둠놀이이다.


어둠은 함께 무엇을 만들까?


어둠이 만드는 그림자는 그 둘이 섞여있어 완전한 어둠도 완전한 빛도 아니다.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존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린슬기

이것은 어둠이다


  


그렇다면 저 그림자는 뭘까?

무엇이 아이린이고 무엇이 슬기일까?

무엇이 이고 무엇이 어둠일까?

저것은 아이린과 슬기일까?


아니면 몬스터일까?





재미있는 것은, 아이린과 슬기의 그림자놀이는 처음이 아니다 (RBB 뮤직비디오)


(나는 빛과 어둠 사이에 위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존재가 있는 어둠의 공간에 빛이 비치면 비로소 생기는 것이 그림자다. 어릴 적 했던 그림자놀이를 떠올려보자. 방의 불을 다 끄고 나서, 강한 손전등을 켜 그림자를 만든다. 그렇듯 아이린과 슬기의 관계도 동등하게 묘사된 것은 아닐 것이다.)



손과 팔로 각이 진 모양을 만들며 퍼포먼스를 전개하는 춤의 장르인 '텃팅'은 그림자놀이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르가 아닐까 싶다.

텃팅 장르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케이팝 씬에 가져온 것은 놀이가 처음인데, 안무가 심재원 씨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아이린과 슬기가 방송에서 전한 비하인드에 따르면, 놀이는 원래는 짧게 방송되는 커플링곡이었으나 이수만 씨가 퍼포먼스 비디오보고는 후속곡을 하라고 했다고.

A&R, 안무가, 아티스트의 능력과 최종 결정권자의 센스가 극적으로 맞아떨어져 주인공으로 나올 수 있었던 놀이… 많이 사랑해줘야 한다...


"하나의 조명 왜 그림자는 둘이야?"

몬스터의 가사와도 연관 지어 해석하고 싶지만... 그럼 이 글이 너무나 세계관 분석이 될 것 같아... 이쯤 하려고 한다... 조금 분석한다고 해놓고 한 바가지 써버렸다...


곡의 제목도 놀이 - Naughty인 게 신의 한 수. 말장난과 손장난... 장난 아니에요





무튼, 세련된 음악을 새로운 퍼포먼스가 받아내고, 그 모든 것을 뮤직비디오가 완벽하게 담아냈다. 번쩍번쩍 아이돌 과열 시대에 SM이 찾은 흑백의 돌파구다.


래 미니멀이라는 것은 맥시멀까지 가보고 덜어내야 하는 거지 대충 처음부터 ‘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모르고 하는 ‘심플’은 그냥 덜 만든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톤을 넣을 줄 몰라 선으로만 그린 그림과 선으로 그려야만 해서 선으로 그린 그림은 다르다.

아이린 슬기의 놀이(Naughty)는 맥시멈을 해낼 수 있는 회사와 아티스트가 많은 것들 중 엄선하여 만들어낸 탁월한 미니멀이다.

두 사람의 목소리, 춤, 비주얼은 흑백임에도, 듀오임에도 모자람이 없다. 덜어냈기에 더욱 빛난다.

감성이 빛나는 슬기의 보컬과 담담한 아이린의 보컬, 이게 뭐지?를 연발하게 하는 능숙한 텃팅 안무, 퍼포먼스를 살려주는 군더더기 없는 비주얼. 적지만 아쉽지 않다.

조금은 과격하고 화려했던 타이틀곡 몬스터와의 시원한 대비도 놀이의 감흥을 살린다(원래 단짠단짠이 진리).


타이틀인 몬스터가 아쉽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놀이를 이미 본 이상, 몬스터만 나왔다면 지금만큼의 감상은 남지 않았을 것 같다. 아이린과 슬기가 훌륭한 듀오이듯, 몬스터와 놀이 역시 환상의 페어다.


SM의 곡을 자주 쓰는 작곡팀인 문샤인이 요즘 참 잘한다. 2020년에만 해도 SM 아티스트의 곡을 대체 몇 곡을 썼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놀이가 압도적으로 좋은 곡. 보아 앨범의 곡들도 좋다. 'Temptations'와 'Got Me Good'.


SM엔터. 시국도 시국이고, 감당하기 힘든 아티스트 컴백 개수에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이 많이 보였던 올해, 여러모로 회사의 가오(그래도 스엠은 스엠이네)를 굳건히 지켜준 기특한 곡이다.




장난스러워서 더 장난 아닌 놀이



(재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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