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선 몇 줄 그었다고 찾아온 힐링

힐링의 핵심

by 히히

손이 꽁꽁 얼 정도로 쌀쌀한 아침,

부지런히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집 밖을 나섰다.


처음 만난 선생님과 수강생분들께서 "새로 오셨어요?" 하며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선 연습!


선생님은 먼저 시범을 보여주시며 선 긋는 방식을 설명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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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입逆入 - 중봉中鋒 - 회봉回鋒


역입은 선을 시작할 때, 가려는 방향 쪽으로 붓을 살짝 넣었다가 다시 돌려서 본 방향으로 시작하는 것.

중봉은 붓을 세워 선의 중심을 지나가게 긋는 것.

회봉은 선을 끝낼 때 붓 끝을 살짝 돌리거나 쿠션을 주는 마무리 방식이다.


설명을 듣다 보니 초등학생 때 서예 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중봉과 회봉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역입은 붓을 돌리는 감각이 좀 불편했다.


방향을 바꿀 때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이 들어가 반동이 생겼고,

그 때문에 붓이 꼬이면서 튕길 것 같아 아슬아슬했다.


그럼에도 화선지에 스며드는 먹물과 이어지는 선,

여러 차례 그어진 고작 선 몇 줄에 마음이 고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도 아니고, 예쁜 글씨도 아닌데 선을 긋는 행위 만으로 묘하게 힐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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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연습



'힐링'이라 하면 뭔가 예쁘고 귀엽고 아름다운 걸 만들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내가 느끼기에 힐링의 핵심은


잡다한 생각이 사라질 정도로 무언가에 몰입하는 순간인 것 같다.


멋진 결과물은 덤으로 따라오는 만족감 정도.



결과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 "망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먼저 올라와서 힐링이 어려울 수 있다.

내가 그랬었다.

학창 시절 여러 비교를 겪으면서 평가에 예민진 탓에 생긴 강박인데,

이제는 많이 자유로워졌다.


가끔 스스로 잘해야 될 것 같은 불안이 몰려올 때면,

성인이라고 마음을 억지로 강하게 만들기보다 어린아이처럼 다정하게 다독여주는 편이 낫다.


"작품을 그리는 것도 아니구,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고작 이거 하나 망쳤다고 내 인생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아. 나에겐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어. 괜찮아~"

이렇게 경직된 마음을 풀어준다.




선을 계속 긋다 보니 역입을 하는 손목에도 점점 힘이 풀렸다.


역입逆入이 마치 시작하려고 꿈틀거리는 하나의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선생님께서 수강생들을 봐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글씨는 손으로 쓰는 것처럼 보여도, 몸으로 쓰는 거예요."




'몸으로 쓰는 글씨.'



글씨나 그림은 종이에 남아 눈에 보이지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몸으로 써 내려가고 있을까.



멋진 글씨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나도 앞으로의 삶에서 멋진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멋진 이야기는

완벽한 선만 계속해서 그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수없이 비뚤어진 선을 그어도

다시 붓을 들고, 또 한 번의 선을 그어낸 이야기.



늘 행복하지만은 않더라도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내고 싶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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