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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 Aug 27. 2022

존버거 작가님께

<A가 X에게>를 읽고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의 책 <A가 X에게>를 읽은 B라고 합니다. 


 당신은 책에서 문학의 집에는 여러 개의 입구가 있다고 하셨는데 여지껏 정문에만 의미부여를 하고 살아온 저로서는 당신이 이용하는 뒷문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왜 이렇게 친절하지 않지? 중간이 없고 드문드문 띄어읽기 하게 만들지? 하며 불편해했지요. 마치 이 세상은 나에게 거짓없고 진실하게 설명해 왔다는 듯이요.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어요. 당연하게도. 어떤 현상이 생기면 왜 그럴까를 따지기도 전에 트랜드란 이름에 휩쓸렸고 맥없이 동의합니다를 누르며 살아왔으니까요. 정작 제 삶은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 소설에만 친절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첫 번째 편지 뭉치에 적힌 ‘삶은 지금 말해지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다’란 문장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무심한 마음을 접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졌어요. 전쟁은 뉴스가 아니라 현실이고 당신이 말했듯 우주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들의 기대와 희망이 스며들어 있을까요?    

 

 아이다는 아마도 책 표지의 여인처럼 깊은 눈과 단정한 입매를 가졌을 것 같아요. 이중종신형을 받은 남자를 사랑하고 난민 마을에서 약국 일을 하는 활동가 여인. 비밀 활동에 대해서, 그 위험함에 대해서 한 번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신중하고 단단한 사람이란게 느껴져요 총알이 박힌 소년을 치료하고 탱크에 맞서 인간띠를 만들어 동료를 구하는 그녀가 부서진 의자를 제대로 고쳤을 때라든지 소코의 집에서 촛대를 똑바로 꽂을 때라든지 일상의 사소한 부분이 정상이 되는 그 순간 눈물을 쏟아내는 것을 보며 비로소 전쟁 지역에서 일상과 저항을 함께 하는 삶에 대해, 73호 수감자를 만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헤아려보게 되었어요. 티셔츠를 다리며 이천하고도 126일을 헤아리는 마음, 손 그림을 그려서 위로를 주려는 마음, 햇빛을 보기 위해 유칼립투스를 타고 오른 장미의 가시를 헤아리는 마음....     


 아이다와 사비에르가 저항하는 맞은편에는 거대한 국제기구들이 견고하게 서있고, 가난한 이들에게 지옥을 설파하며 부의 축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계가 자리하고 있어요. 그들은 인간띠를 두른 여자들의 코앞에 들이닥친 탱크처럼 가깝고 견고하며 흠이 없죠. 결혼요청을 거부하는 ‘IBEC법령 제27조 F항 처럼요. 아이다가 피로함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절망 속에 있지 않았어요. 그들에게 없는 흠집이 오히려 사랑의 이유가 되고 서로를 알아보는 표시가 되고 있었어요. 수시로 폭격을 받아 황폐된 마을의 사람들이 완벽한건 매력이 없다고,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세계 최강국이란 미국이 참 허접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고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결국 돈을 위한 전쟁을 해왔으니까요. 존재하지 않는 적을 만들어내면서요. 다른 나라 이야기 할 것도 없죠. 그리고 저 자신을 돌아보아도 여전히 저 한 몸의 기쁨과 안녕을 위해 고민할 뿐이구요. 더 큰 동그라미를 그려본지 너무 오래된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아이다의 이웃 아마도 묻죠. '우리는 단지 아파하기 위해 태어난 걸까요. 정말 이유를 알고 싶어요' 라고.      


 아이다의 편지로 돌아가볼께요. 

 ‘우리는 미래에 있어요.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시작된 어떤 미래 안에 있어요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딴 미래 안에 있는 거예요. 내 손을 잡아요. 나는 당신 손목에 있는 상처에 입을 맞춰요’ 

  

 그리고 이렇게도 말합니다.

 ‘내가 받는 것은 당신의 응답이 아니에요. 있는 건 항상 나의 말뿐이었죠. 하지만 나는 채워져요. 무엇으로 채워지는 걸까요. 포기가 포기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선물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걸 이해한다면 우리에겐 두려움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하나 더. 

 ‘우리의 몸은 수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 각각이 받아들이는 신호들은 끊임없는 피드백과 상호협조가 이루어지는 네트워크를 구성하죠. 지휘부 같은 것은 없고, 몸 안에 있는 전달자들이 만들어내는 지속적인 순환이 있을 뿐이에요.’     


 작가님께 당신에게 묻고 싶어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 이름만, 때로는 관계로만(누구의 어머니, 할머니..) - 모든 인물을 일일이 호출한 것도, 그들 모두, 그리고 책을 읽는 우리 모두 ‘전달자’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가요? 거대한 세계 속에 작게 존재하는 전달자. 작지만 그 속에 자연의 무한함과 창조자의 모습을 담고 있는 개별적 존재들. 

     

 그리고 아이다가 호명한 미 구아포, 하비비, 카나딤, 미 소플레테, 야 누르..는 갇혀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저항할 수 없게 된 많은 사람들에게, 왜 아프기만 하냐고 슬퍼하는 우리들에게 종신의 사랑의 힘으로 불러내는 것만 같습니다.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라구요.     

 

 당신의 또 다른 책 <결혼식 가는 길>에 나온 바다오리를 잊을 수 없었어요. 아이다와 사비에르의 편지소설 <A가 X에게>를 덮고는 아이다의 손이 눈 앞에 어른거립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고백해야겠어요. 당신은 참 친절하고 다정한 작가입니다.     



* 손 그림을 그려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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