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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자몽에이드 Sep 18. 2023

악법의 기준을 알려주다

- <처음읽는 헌법>(조유진 지음, 이학사)

이 책의 제목이 '처음 읽는 헌법'고 부제가 '청소년을 위한 헌법 길라잡이'여서 헌법에 관해 쉽게 풀어쓴 책인가 하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저자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많이 녹아있어 그 점은 아쉬웠지만, 추상적이어서 어쩌면 더 방대한 내용을 담고있는 헌법,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해 간결체로 읽기 쉽게 잘 풀어쓴 책인 것 같다.


나는 법학전공자여서 헌법이 낯설지만은 않기에 책에 있는 헌법에 관한 설명, 헌재판례에 관한 내용은 새롭지 않았고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챕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 어러분은 악법도 법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악법의 판단기준을 무엇으로 보느냐가 될 것입니다. (중략).. 그렇지만 이제는 악법과 선법의 객관적 판단 기준이 엄연히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헌법입니다. 헌법에 어긋나는 법은 악법인 것이죠. 이러한 관점에 선다면 악법은 법이 아닙니다..(중략) 이처럼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논란이 되었던 문제들 도 헌법을 대입하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는 모든 사회문제가 헌법문제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현안과 관련된 토론이나 논쟁에서 헌법을 아는 사람과 헌법을 모르는 사람이 격돌했을 때,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압니다. 헌법을 모르는 사람은 헌법을 아는 사람을 논리적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헌법은 우리 사회에서 공인된 최상위의 규범이기 때문입니다.(이하생략) "


저자의 말대로 헌법은 우리 사회에서 공인된 최상위의 규범이고, 악법인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어야 타당하다. 그런데 일련의 판례들을 보면 우리 헌법재판소가 과연 헌법정신에 맞게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최근 변호사시험법 응시제한규정에 대한 위헌소원 결과(?)가 나왔는데, 요지는 변호사시험법상 응시제한예외사유로 오직 군복무만 규정한 것이 합헌이라는 취지이다. 그리고 그 이유의 요지로는 헌법에서 병역의무이행으로 인한 불이익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군복무만 응시제한 예외사유로 둔 것이고, 다른 사유는 무한히 확대될 우려가 있어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시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특히 임신과 출산이다.


헌법재판소는 평등의 의미에 대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라고 본다.

임신과 출산은 병역의무와 닮은 점이 많다. 

먼저, 대한민국 병역의무도 출산도 특정성별만이 행한다.

병역의무와 임신과 출산은 모두 목숨을 건 행위이며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병역의무도 시기를 선택할 수 있다. 임신 출산도 시기를 선택할 수 있다. 나이가 꽉 차 병역의무이행시기를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임신출산도 고령 내지 건강문제로 사실상 선택할 수 없는 경우가 아주 많으며 고령으로 갈수록 산모와 아기가 모두 위험해지는 확률은 사회에서 이미 익히 떠들고 있는 이야기다.(반박하고싶은사람은 자료부터 찾아보고 반박해야)

병역으로 군대에 간 사람이 변호사시험 공부를 하기는 힘들다. 임산부도 공부하기 힘들다. 임신을 해보라,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 이전과 같은 능력은 발휘하기 어렵다. 출산한 산모는 자기 몸에서 인간을 하나 더 만들어 냈다. 당연히 수험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재는 임신 출산을 변호사시험 응시제한의 예외사유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같은 것을 같게 취급하라 했으니, 위와 같은 이유로 임신출산에 대해서도 당연히 예외사유로 인정해줘야하며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라 했으니, 임신은 같이해도 출산은 여성만한다는 이유로 여성응시자들의 응시기회를 박탈하는 것에 대해 헌법에 합치된다고 판단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저자가 말하는 악법의 기준에 따르면 위 변호사시험응시제한 규정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헌재는 평등권침해는 없다고 한다. 


이것이 헌법재판연구원에 깊이 관심을 가질만큼 헌법에도 관심이 많았던 법학전공자가 나날이 헌법에 흥미를 잃어가는 이유 중 하나다.


그래도 오랜만에 헌법관련 서적을 읽어 반가웠다. 


악법의 기준을 명쾌히 알려주어 신선했다.


저자가 제시한 악법의 기준에 동의한다. 그리고 매 사안이 헌법재판연구원과 헌법재판관들의 주관적 가치판단에 따라서가 아니라 헌법정신에 맞게 판단받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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