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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Jul 06. 2024

기준을 세운 목적

의도를 이해하지 않으면 기준은 껍데기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싶다.

한정된 위장, 맛있는 음식은 널려있어 고민은 깊어진다.

20대 때는 진짜 먹을 것에 관심이 없었는데.

끼니는 그저 때우는 것,

그런 것보다는 차라리 술에 관심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술자리의 바이브를 좋아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일을 하다 보면 그냥 끼니는 어찌어찌 넘겨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호르몬의 조화인지(단순 식탐일 수도;)

나는 이제 그 누구보다도 먹는 것에 까다로워졌다.

약속을 해도 음식점을 제안한다.

기왕 먹는 거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것일 수도.)


원하는 음식점을 가도 고민은 있다.

예전에는 식사를 인당 한 개씩 시키고 

share 할 것을 한 개 시키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위가 줄었다.

하지만 다양한 것을 먹어보고 싶다.

게다가 나는 탄수화물을 줄이고 싶다.

그렇기에 어떨 때는 식사는 됐고 단품으로만 만족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회사 근처에 좋아라 하는 밥집이 있는데

그날도 그랬다.

이 집은 식사 가격보다 곁들임 가격이 낮으니 곁들임을 2개 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곁들임을 많이 시켜도 식사는 인당 한 개를 시켜야 한다는 말을 듣고

뭐지? 싶었다.

아마 인당 식사 메뉴를 시켜야 한다는 기준의 의미는

식사 값 정도의 테이블당 이익이 나와야 하기에 정한 기준일 텐데

그건 메뉴의 문제가 아니라 가격의 문제일 텐데 말이다.

사장님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텐데......

내가 곁들임 2개를 시키면 더 이득인데!!!

사장님은 이런 상황을 알까?


이런 상황은 업무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업무 기준에 따라서 일을  했다고 하지만

결국 그 기준을 세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만다.

그 식당의 직원처럼.

일상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한데

그래서 일을 할 때 생각을 하면서 하느냐와

기계적으로 하느냐는 큰 차이가 난다.

영혼을 담느냐 마냐도 차이가 난다.

영혼까지는 안 바란다 하더라도

반복적인 관성에 빠지는 것은 스스로 경계해야겠다고,

그리고 의도와 목적을 이해하고 일을 하자고

식당에서 원치 않는 탄수화물을 섭취하면서

곱씹어봤다.

그 식당? 다시는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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