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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May 11. 2024

연명의료결정제도

봉양일기3

아줌마는 한창 잘나가던 신발공장의 사모님이었다.

매일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은행의 VIP룸을 이용하며

그 옛날 빳빳한 신권을 지갑에 몇십만원씩 넣어다녔다고 한다.

이건 엄마에게 들은 얘기고

내 기억 속의 아줌마는 맛의 신세계를 선사했던 강렬함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1,2학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아줌마가 해준 갈비찜을 먹고 개안했던 기억이 있다.

아니, 세상에 이런 맛있는게 있었어?

나는 눈이 뜨이고 입이 벌어지는 강렬한 경험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줌마는 파김치도 잘 담갔고 물김치, 총각김치 등 못하는 김치가 없고

또 그 김치에 실패란 없었다.

엄마, 아줌마는 왜 이렇게 음식을 잘해?

그러게 말이다.

엄마는 특유의 겸손함으로 아줌마의 손맛을 나와 같이 경외했다.


십 년 전인가, 집에 놀러오신 아줌마께 여쭤보았다.

아줌마의 대답인 즉, 돈 잘버는 남편이 이곳저곳 맛집을 데려 다니며

이 맛을 내라고 닥달한 결과, 손맛이 완성되었다는데......

음, 정말 그런 트레이닝 기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줌마는 손맛 좋고 또 손이 크고 남 챙기는 걸 좋아하셨다.

당연히 나도 아줌마를 좋아했다.


그런데, 그런 아줌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설 무렵이었다.

엄마는 눈물 바람이었고 나도 목이 메었다.

아줌마의 집안은 이미 가세가 기울어 공장은 날아가고

아저씨는 부도의 여파로 돌아가신지 이미 오래였다.

예전에 엄마와 같이 간 어느 점집에서 아줌마네 집이 유리잔이 산산이 깨지는 것처럼 

풍비박산이 난다고 했다던데

왜 또 그런 불길한 예언은 이리도 잘 들어맞는가.


중환자실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날, 엄마가 아줌마 병원에 다녀오셨다.

목에 튜브를 꽂아 음식물을 공급하는 상태.

그렇게 되면 또 오래 산다더라.

그런데 그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니.

엄마는 한탄처럼 말씀하셨다.

지인이 한 말도 떠올랐다.

요즘 요양병원은 환자 한명당 정부 지원금이 나와서 환자가 볼모래.

한 마디로 환자를 죽게 놔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번 주 퇴근해 돌아오니 '연명의료 결정제도' 리플렛이 있었다.

이거 하신다더니 서명 하신거에요?

아, 이거, 응. 보건소 가서 했다.

그러셨구나......

차마 잘 하셨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고

그저 부모님의 결정을, 의사를 존중해야한다는 생각이 씁쓸하게 들었다.


사실 부모님이 연명치료 중단 서명을 해야한다고 얘기하신지는 오래되었다.

주변에서 아무래도 그런 사례를 많이 보고 들어서겠지.

하지만 듣는 자식인 나는 그게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한다면

연명치료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나 역시 확실히 대답하기 어렵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이번에는 가서 해야해, 해야해

이렇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만 

막상 병원에 가면 진료 보느라 잊어버리신지 5년 정도 된 것 같다.

다녀와서 저녁에

아 맞다. 연명치료 거부는 또 안 하고 왔네.

이게 노상 반복되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지만

즐겁다는 느낌은 가질 수 없기에 

될 수 있으면 멀리 떼어놓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특히 그게 내 혈육의 일이라면 더 그렇다.


한 달이 지나면 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이 발급되어 집으로 발송된다는데

그때 난 어떤 얼굴로 그 등록증을 보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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