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러브 Jul 30. 2024

선풍기와 곱창

새벽 3시, 눈을 떴는데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어. 바람세기는 1로 맞춰진 채로. 단박에 알았지, 그가 켜둔 것이구나. 잠들기 전 지나가듯 말했어. 지난 새벽에 너무 더워서 잠에서 깼지 뭐야, 깨고나서 1시간은 뒤척였나봐. 너무 덥더라 진짜.


하소연처럼, 푸념처럼 했던 나의 말을 놓치지 않고 잡아두었던 사람. 그리고 먼저 잠든 나를 위해 콘센트를 연결해 둔 사람, 그래 내가 사랑한 사람은 늘 그런 모습이었어. 


뭐 먹을까? 라는 질문에, 서로가 먹고 싶은 걸 말하기보다 상대가 먹고 싶은 게 뭔지 묻는 사이, 그러다 결국엔 내가 좋아하는 걸로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래, 생각해보니까 그날도 기름기 많아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곱창을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함께 먹었었지.


어쩌면 이제 나는, 선풍기를 보아도 곱창을 보아도 고마운 마음이 들 것만 같아. 선풍기에, 곱창에 나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서 말야.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보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걸 해주고, 상대방이 불편한 걸 해결해주는 그런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감사한지.



아무도 없는 집, 

혼자서 에어컨을 켜기는 뭐하고 선풍기를 틀어야겠다 싶어서 코드를 꼽는 순간, 그 고마운 마음이 생각나서, 잠든 나를 위해 선풍기를 켜준 마음이 생각나서 뭉클해지는 저녁. 어쩌면 가족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상대방을 위해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비록 선풍기를 켜는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내가 무심코 한 말을 스쳐보내지 않고 꼭 잡아둔 채 기억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해지는 밤.


나도 누군가의 말을, 잘 잡아두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 연금, 이것만은 알고 가입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