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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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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Dec 26. 2023

포근한 바다, 울진(1)

 바다를 보고 싶으면 울진에 가곤 한다. 일상에 떠밀리다 보면 왕복 세 시간 내어 옆 도시 다녀올 마음 잘 들지 않으면서도 연말에는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인다. 도시와는 다른 포근함. 하늘도 바다 색도 짙푸른 울진은 도시 출신에게 말 그대로 고요의 도시다.


 좋아하던 물회 식당이 있는 죽변항으로 향한다. 울진으로 가는 국도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단체로 휴일을 즐기는 바이크 동호회를 발견한다. 줄지어 질주하는 모습이 짜릿하다. 겁 많은 나에겐 먼 세상이다. 한참 더 달리니 이번엔 운구차 행렬이 비상등을 켜고 줄지어 주행하는 모습이 보인다. 바이크 동호회와는 대조되는 애도의 기운이 공기를 데우고 지난다.


 한 시간 반여를 달려 울진에 와서야 울진항을 죽변항과 헷갈리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다시금 죽변항으로 고치고 15분여를 되돌아간다. 어느 때는 짜증이 솟았을 법도 하건만 울진의 차분함에 녹아들었는지 되레 무던하다. 일찍이 출발했음을 새삼 감사한다.


 몇 번 와본 익숙한 마을길을 지나 죽변항에 도착한다. 연휴를 맞아 여저기서 관광객이 몰렸다 보다. 주차를 하곤 식당으로 향했는데 아뿔싸, 자주 가던 물회 식당이 없어지고 말았다. 대신 그 자리엔 다른 수산물 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입소문이 나 장사가 꽤 잘되던 집이었는데. 장사를 접기까지 어떤 일들이 오갔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오래간 정든 자리를 부디 가뿐하고 뿌듯하게 털고 떠나셨기를, 속으로 바라본다.


 한 길 옆의 식당에는 남녀노소 여러 팀이 줄을 서있다. 이런저런 방영 현수막이 붙어있는 것을 보니 매스컴 덕에 유명세를 탄 모양이다. 딱히 일정도 없이 왔겠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어 기다린다. 곰치국과 장치조림이 유명한 곳이라는데 둘 다 처음 들어보는 요리다. 호불호가 꽤나 갈린다는 평을 발견하고는 내심 두근거린다.

가려던 식당이 폐업하여 우연히 방문하게 된 우성식당.


 대기 시간이 더딜 것 같아 주변을 배회해 본다. 도시 재생 사업으로 새로이 조성되는 골목도 있고 생선 몇 마리 걸린 예스러운 집들도 있다. 바닷가에 살아본 적이 없는 나에게 어촌은 늘 생소하고 신선하다. 풍경도, 냄새도, 들리는 소리도 새롭다. 바람의 질감도, 햇빛의 농도도 낯설다. 이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촌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그래서 육지인들은 바다를 많이도 동경하는가 보다.


 호떡을 파는 포장마차나 칼을 갈고 파는 노점상들을 신기하게 구경하다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까, 식당 대기 시간이 다 되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식당 내부는 정겹고 북적인다. 어머니 뻘이 해놓으셨을 법한 성탄 장식들이 괜스레 정겹다.


 곰치국은 시원하니 얼큰했고 장치조림은 경상도인의 입맛에 딱 맞게 자극적이었다. 곰치국 속의 고기는 물컹하여 요상스러웠지만 걱정한 만큼 특이하지는 않았다. 우연이 이끈 성공적인 점심식사를 자축하며 만족스레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모님이신지 직원이신지 모를 아주머니가 참 친절하시다. 오늘 방문한 손님 중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고 말한 분이 계셨다는데, 감명 깊으셨는지 나가는 손님에게 연신 '기다린 보람이 있으셨어야 할 텐데...' 하며 생글생글 웃으신다. 기분이 좋다. 가게는 늘 나갈 때의 기분이 중요하다.

짭조름한 감칠맛이 일품이었던 장치조림.


 얼큰한 한식을 먹어서인지 아메리카노 생각이 절로 난다. 멀리 이동하기는 번거로우니 차로 이삼 분 거리의 가까운 커피숍으로 향한다.

 '개 있어요'라고 적힌 문마따나 들어감과 동시에 강아지 한 마리가 컹컹 짖으며 반겨준다. 투박한 생김새를 따라지었는지 이름도 '망치'다. 제격인 이름이라 생각하고는 커피를 주문한다. 휴일 기분도 낼 겸 케이크 한 조각도 함께 주문한다.


 가게는 곳곳에 주인의 취향이 묻어 있다. 동물 그림과 사진, 엽서, 여행 티켓. 그런가 하면 식물과 화분도 굉장히 많다.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장님인가 보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마음을 이어 가져온 책 한 권을 편다. 넓은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햇살이며 낮은 건물의 생김새들이 독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역시 독서는 마음이 바쁘지 않은 곳에서 더 즐겁다. 점심을 많이 먹어서인지 배가 불러 케이크는 다 먹지 못했다.

망치의 시선.


  배도 채웠겠다 카페인도 섭취했겠다, 바다를 보러 나서야지 마음먹는다. 마침 오늘은 요 근래 중 날이 포근한 편이다. 바다를 보기 적당한 곳이 보이면 멈추리라 정하고선 차를 타고 해변 도로를 드라이브한다.



  포근한 바다, 울진(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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