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생, 특히 중·저학년일수록 이것저것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다는 교직관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즐거우면 그만'이라거나 '행복은 성적이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뉘앙스와는 조금 다르다. 특출 난 분야로 일찍이 진로를 정한 것이 아닌 이상, 공부는 잘할수록 좋다는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기왕이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좋은데 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인지. 그 이유는 초등학생 때 '이것'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래에 이어가 보도록 하겠다.
'이것'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을 잘하게 만든다. '이것'은 글짓기, 발표, 설득, 토론 능력을 키워준다. '이것'은 감수성, 지식 습득력, 표현력, 논리적 사고를 발달시켜 준다. '이것'은 단순하고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의 삶에서 느긋하고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든다. '이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예상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것'은 바로 독서이다.
혹자는 시시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고작 독서라니. 전혀 새롭고 획기적인 답변을 원했던 독자분께는 죄송하다. 하지만 공부에 그런 지름길은 없다. 하지만 지름길 없더라도 먼 길 걸어갈 수 있는 다리 근육을 키워줄 수는 있다. 마찬가지, 앞으로의 공부가 수월하도록 뇌의 근육을 키워 줄 수 있다. 그 방법이 바로 독서다.
초등학교 수준의 공부는 모든 과목이 일맥상통한다. 핵심 성취기준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보조자료들. 이 보조 자료에는 텍스트, 미디어, 수업 모형, 교과 재구성, 상호작용, 피드백 등이 있겠는데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텍스트'이다. 텍스트는 방금 나열한 모든 보조 자료 속에 녹아있으며 학생들이 자료들을 이해하는 기저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세상을 수용하는 방식 자체가 텍스트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학습이 이루어질 때 미디어나 경험적 지식이 기억에는 더 쉽게 남겠으나 결국에 이를 자신만의 텍스트로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여 머릿속에 저장해야만이 '진짜 학습'이 이루어졌다 할 수 있다. 자신만의 언어로 구성해놓지 않은 지식은 쉽게 휘발된다. 남에게 가르치는 행위가 가장 효과적인 학습 방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성 언어로서 지식을 전달하려면 사전에 그 지식이 정돈된 텍스트로서 머릿속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짧게나마 텍스트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충분한 공감이 되실는지. 자기만의 텍스트 구성 능력을 키우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근육이 하나 있다. 바로 문해력이다.
요즘에는 문해력이라는 낱말 자체가 범용적으로 쓰이는 덕에 우리에게 친근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문해력을 단지 '맞춤법 능력'이나 '한글을 이해하는 능력', '어휘력'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흘'이 삼 일인가 사 일인가를 아는지 등의 사례를 더러 문해력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이는 반쪽짜리 문해력이다.
문해력의 핵심은 Text(문자)를 Context(맥락) 속에서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같은 모양의 낱말을 받아들이더라도 해당 낱말이 Context 속에서 긍정 언어인지 부정 언어인지, 직설적 표현인지 비유적 표현인지, 강조하는 표현인지 완곡한 표현인지, 핵심 언어인지 부연하는 언어인지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발제자의 맥락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응 문자를 생성해 내 요약·반응·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의도'를 파악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이다. 문해력이 뛰어난 학생은 똑같은 학습 자료를 접하더라도 글쓴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텍스트의 어느 파트가 핵심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감각적으로 알게 된다.
문해력을 기르는 효과적인 방법은 절대적으로 독서다. 그중에서도 다독(多讀)이다. 물론 깊이 있는 독서나 토론, 글짓기도 효과적인 방법임이 맞다. 하지만 그것은 보다 높은 발달 단계에서 적합한 훈련법이다. 아직 텍스트가 낯선 초등학생 아이들에게는 다독이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자칫 독서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는 활동은 독서 습관이 잡히기 전에는 조심해야 한다. 가능한 많은 텍스트를 접하게 하라. 텍스트에 노출되는 시간이 문해력 상승에 비례한다.
그저 독서를 많이 시키라는 것이 비법의 핵심은 아니다. 알려드리고자 하는 진짜 핵심은 바로 아이로 하여금 독서를 즐거워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대다수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는 말을 지겹도록 한다. 학교에서도 으레 하루 20분 정도는 독서 시간을 준다.
'그 정도면 된 것 아닌가요?'
아니다.
독서 교육의 키 포인트는, 아이가 느끼기에 '독서'가 재미있는 행위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 있는 책을 읽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가진 책을 다 읽으면 새로운 책을 사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독서가 하나의 놀이로써 아이에게 스며들어야 한다. 읽는 시간에 비례하여 독서 근육과 사고력이 길러지기 때문이며, 그 길러진 근육으로 말미암아 더욱 고차원적인 독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순환이 된다. 독서 버전 '복리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반드시 흥미 위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 같은 성인들도 처음 겪은 행위가 즐겁지 않다면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흥미를 위해서 만화책을 읽는 것도 안 읽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자칫 텍스트보다는 이미지에 더 집중할 수가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줄글을 추천하는 바이다. 만화와 줄글이 섞인 책들도 많이 있다. 아이가 독서 초보라면 제목만 보아도 흥미를 쉽게 가질 수 있을 만한 가벼운 책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요지는, 독서의 분위기를 경쾌하게 마련해 주는 것이다.
어떤 책이든 많이 읽다 보면 자연스레 관심 분야가 생긴다. 소설이 좋을 수도, 과학 책이 좋을 수도, 위인전이 좋을 수도 있다. 아이가 책을 사달라고 하면 지체 없이 구해주어야 한다. 부모의 욕심으로 너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사줄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그저 예비로 몇 권 정도만 비치해 두고, 아이들이 사달라고 하는 책을 사야 한다. 아이들이 책을 사달라고 했다는 그 사실 자체에 감사하고 신을 내야 한다.
문해력이 높아지면 논리력과 구성 능력 향상이 뒤따라온다. 텍스트로 길러진 두뇌의 작동력은 공부를 하기 위한 필수 근육이다. 꾸준한 독서 습관이 밴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학습 목표에 도달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짧다. 배운 내용의 핵심을 짚는 방법과 그 지식을 머릿속에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에게 독서 습관을 들여 보라. 생각지도 못한 수학, 과학, 사회 성적이 오를 것이다. 국어 성적은 말할 것도 없다.
필자도 독서를 사랑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독서를 사랑하신 부모님 덕이 컸다. 이 글을 읽는 학부모님들도 일상에 지쳐 힘들겠지만 아이와 함께 독서하시길. 명령과 지시 만으로는 독서에 대한 아이의 진심어린 흥미를 이끌어 내기 힘들다. 부모가 통제하는 일은 재미없을 확률이 높다는 정보가 아이들 머릿속 빅데이터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서를 즐기는 모습을 시범보이길 추천한다. 그런 척이라도 좋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반드시 부모를 따라 하게 되어 있다. 좋은 점이든 안 좋은 점이든.
독서는 최고의 공부이다. 나는 초·중학생 시절에 책을 달고 살았다. 그 덕인지 고등학생 시절 국어 영역(당시에는 언어 영역) 공부를 단 1분도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1등급을 놓친 적이 거의 없다. 텍스트가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국어 시험이 더 이상 시험이 아니다. 국어 시험이 그저 '독서 퀴즈'정도의 난이도로 탈바꿈하는 기적을, 많은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학교에서 학부모와 상담할 때, '다른 학원을 그만두고 독서만 시킬까요?'라고 여쭤보시는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자를 수 있지는 않다. 학원에서도 물론 훌륭한 문제 해결 방법론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녀를 살펴보는 것이 먼저다. 현재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판단하고 처방을 내려야 한다. 이미 전반적인 학습 습관과 구성력이 갖춰졌다면 부족한 부분을 보습하거나 강점 분야를 더 특출나게 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아직 학습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을 보인다면 학원에 다니는 것이 별 소용없는 일이다. 학부모, 학생, 학원 교사 모두가 얻을 것 없는 게임이다. 자녀의 학습 수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고 애매하게 느껴진다면 무조건 독서 습관부터 먼저 들여주는 것이 좋다. 장기간 튼튼하게 자라난 독서 근육은 복잡한 사고를 요하는 고학년과 중학 수준 공부를 굉장히 수월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독서가 만병통치약이라는 나의 의견에 동의하는 분도 반대하는 분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의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만은 꼭 받아들여서 아이에게 건강한 독서 습관을 길러주길 바란다.
*필자의 생각에 '영어'는 조금 별개이다. 언어 구성이 달라서 영어는 따로 공부함이 도움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