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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GO Nov 23. 2021

Food and the city

프랑스 파리 / 콜마르 - 전기밥솥

최근에 읽은 책중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필명 거칠부 씨가 쓴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라는 책이다. 히말라야를 걸으면서(걷기보다는 거의 등반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느낀 소회와 인상 깊었던 것들에 대하여 매우 담담하게 적어놓은 책이었다. 에세이 형식을 빌려 자신의 안을 비우고 또 비우고 부족함에서 즐거움을 찾는 그런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15일 동안 히말라야의 거친 자연을 여행하며 비도 맞고 바람 때문에 3일가량 움직이지 못하고 길도 못 찾아서 고생을 하고 나서 너무나도 더러운 숙소에서 씻지도 못하고, 언제 빤지도 모르는 이불보에서 잠을 청하는데 너무 고단하여 바로 잠에 들면서 결국 15일 만에 목적지에 도달하여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서 창이라는 히말라야식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 느끼는 행복이라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는 행복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그 책을 모두 읽은 날 잠이 들기 전에 잠시 손에 들었던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켰는데 거기서 자연스럽게 EBS의 다큐가 내 잠을 방해했다. 라다크라는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에서 사는 미국인 부부의 이야기였는데, 미국에서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너무나도 많은 것에 둘러싸이고 속박되어 있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싫어서, 여행을 갔던 라다카라는 마을에서 그냥 살기로 했다. 그리고 매우 소박한 생활을 하는데, 그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코코아 가루가 든 작은 유리병을 보여주며, 그것이 히말라야에서 즐기는 가장 큰 행복 중에 하나라는 것이었다. 하루는 코코아를 마실수 있어서 행복하고, 아직 코코아가 많이 남아서 즐겁고, 코코아가 많이 남지 않으면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남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다 마시고 나면 다음번에 코코아를 구할 때까지 기다려지는 것으로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끊임없지 자극에 목말라하고, 어떤 것이든 부족하면 항상 불안하고 끊임없이 소비하는 라이프 스타일과는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책을 읽은 후 오랜만에 프랑스 여행을 가기로 했다.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오후 1시였다. 라데팡스 근처에 숙소를 잡은 우리는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기로 하였다. 어느새 쌓여있던 메일을 정리하고 우리는 개선문을 상징해서 만든 라데팡스 근처에 있는 쇼핑몰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천천히 멋진 파리의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걸어갔다. 1층에 있는 식당가에서 아이들이 먹기 쉬운 중국음식을 고른 후 그날의 요리인 타이식 소고기 볶음 요리와 말레이시아식 닭고기 카레를 주문한 후 테이블에 앉았다. 그제야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도 요리 종류를 세트로 시키는 것이 아니고, 간단한 스낵 종류를 간식 같은 느낌으로 먹고 있었다. 그때 다른 음식점으로 이동했어야 했는데, 후회를 하며 2년 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실패를 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처음으로 파리에 왔던 것은 벌써 20년 전으로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가족과 함께였고, 당시 유행하던 패키지여행이었다. 처음으로 유럽에 온 거라 기대에 가득 차서 먹었던 프랑스 요리는 당시 나의 식성과는 그다지 맞지 않는 매우 느끼한 맛이었다. 특히 처음 먹어본 에스카르고나 오리 콩피 같은 경우에는 원래부터 식성이 민감했던 나에게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실망스러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불편한 경험을 한 것으로 나는 여행을 평생 즐기게 되었고, 지금은 프랑스 음식에 대하여 전혀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고 나서 다시 호텔로 들어가기 전 수산물 코너에서 구입한 오징어를 데치고 인스턴트 된장 가락국수를 끓여서 거하게 먹었다. 이번 여행에 가져간 짐중에 가장 무거운 것이 밥솥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있으면 가장 걱정되는 것이 식사였다. 밥을 먹이기 위해 쌀과 밥솥을 가져갔는데, 이게 부피도 많이 차지하고 무거워서 매번 호텔을 옮겨 다닐 때마다 매우 힘들었다. 우리가 히말라야였으면 절대 가지고 오지 않았을 것인데, 항상 모든 것에 만족하려고 하니 내가 내발에 족쇄를 끼우고 다니는 꼴이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파리를 떠나 우리는 콜마르로 떠났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이 되었던 마을인데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전통가옥으로 만들어진 거리는 매우 아름다웠고, 호텔 근처에 있는 구도심 지역을 천천히 걸어 다니고,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뒤, 근처 슈퍼마켓에 들려 와인을 좀 사고, 선물을 좀 산 뒤, 우리는 다시 호텔로 들어가 저녁을 먹을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여행 막바지라서 모두들 피곤한 상태였고, 결국 나는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가 무겁게 들고 온 커다란 밥솥과 고추장 그리고 김을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밥을 잔뜩 해서 아이들은 김과 멸치를 주고 나는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으며 연신 감탄을 하며 3그릇을 넘게 해치우고 말았다. 그리고는 호텔 바로 내려가 맥주를 한잔 가지고 와서 맥주를 한잔 마시며,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히말라야의 삶을 동경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 중에 밥솥이라는 커다란 짐을 족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부족함에 적응된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지금은 내게 필요한 라이프 스타일이 있는 것이고, 불편함이라는 것은 부족함에서도 생기고 과도한 풍족함에게도 생기는 것이리라. 결국 내게 필요한 것은 고추장 조금에 뜨거운 밥이었고,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 또한 그다지 풍족한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내가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인 거칠부 님이나 미국인 부부가 느끼는 행복이란 것이 내 가족의 행복의 총량이 같다고 하면, 그것 또한 좋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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