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판데믹을 맞은 영국 사회의 뉴 룰
나도 힘든데, 남을 배려하라고요?
요즘 영국 사회는, 서로를 조금 더 배려하자는 메세지를 전한다. 비록 사회적 거리를 지키느라 피곤하고, 물자도 부족한 이 시간, 오히려 서로에게 친절하여 긴장을 낮추고, 모두가 조금 더 살기 편하게 숨통을 트일 수 있다는 뜻인듯 하다. 최근 테스코 등 슈퍼마켓의 온라인 배송은 거의 되지 않아 답답하지만, 자가격리나 건강 등의 이유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려는 정책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탈리아에 기반을 둔 의류 회사 Yoox에서는 당분간 모든 배송을 멈춘다고 전해오며 '이제 우리 밴과 트럭은 약한 사람들과 어르신들을 위한 물품을 배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배려를 솔선수범하고 독려하려는 것은 여유 있는 큰 회사들의 경우만은 아니다. 작은 가게들도 동네 어르신에게 배달을 하고, 동네 골목을 걸으며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stay safe, stay happy" 라는 친절의 말을 붙여 놓은 집들을 볼 수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배송과 유통에 임했던 사람들이 고마움을 전하고, 주변 사람을 격려하자는, 분명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이 배려의 마음, 늘 통하는 것은 아니다. 우유 빈 병을 내놓으며, 새삼 한번도 본 적 없는 우유 배달 아저씨께 고맙다는 마음이 들어서, '고마워요, 건강하세요' 라고 메모를 적어 우유병 옆에 놓아두었는데, 다음날 아침 집 앞에서 이 메모가 뒹굴고 있기도 했다. 왜 그럴까, 남편과 추측해보며, "아, 우유값인줄 알고 열어보았다가, 굳이 이런 말을 왜 써, 하신거 아닐까?" 깨닫기도 했다. 기존의 '매너'가 '테러'가 될 때도 있다. '땡큐, 쏘리의 나라'인 영국이지만, 슈퍼마켓에서 살짝 마주칠 뻔 했다고 해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밝고 쾌활하게 "쏘리!" 를 외치면 당혹스럽다. 중학교때부터 외우고 있는 '아임 쏘리->이츠 오케이'에 덕분에 자동으로 대답은 나오면서도, 고개를 돌리며 어쩔 바를 모르기도 한다. 세상의 많은 것이 변화하는 가운데, 어떤 형태든 좋은 것이라 여겨졌던 배려, 친절함도 세심하게 조정하는 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마스크, 무례함은 또 다른 친절함
"이제 한국에서는 마스크를 안쓰고 다니는건 예의가 아니야" 친정 엄마의 말이 무색하게, 영국 사회는 반대의 의미로 마스크에 낯을 많이 가린다. 슈퍼마켓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마스크를 종종 볼 수 있지만, 밝은 파란 끈이 달려 코를 길게 덮는, FFP2의 스펙을 자랑하는 나의 마스크는 단연 눈에 돋보이는 모양이다. "왠지 사람들이 나를 피해 길을 건너는 것 같은 건, 그냥 느낌이겠지." 애써 밝은 척 해봐도, 약간의 위축감을 지울 수 없다. 어느 날 수퍼마켓 긴 줄에서 '섬'처럼 서 있다가, 분위기 전환 겸 시험삼아 앞 뒤 사람들에게 웃으며 "카트 때문에 줄이 더 기네요" 다들 불안하여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누군가 겨우 "소포(파슬)이라고 했어요?" 하고 물었다. 어찌어찌 수습했지만, 싸해진 분위기 때문에 이후의 시간은 더욱 길게 느껴졌다.
이후로도 한동안 나는, 마스크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항하여, '마스크썼다고 위험한 사람이 아님'을 전하려 노력했다.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억지로 눈웃음을 짓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파란 끈 마스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마스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처음 듣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이해하려 앞으로 몸을 기울이게 되며, 결국 모두를 불안하게한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피곤한 지금, 나를 이해시키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것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마스크에는, 조금 다른 방식의 친절함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을 때는 '오늘 마스크 쓰고 갈거에요' 하고 예고 문자를 보내는 정도의 배려를 하지만(이 때, 마스크 이모티콘이 아주 유용하다) 마스크를 쓰고 나선 길에서는 기존에 알고 있던 친절한 방식의 반대로 하면 된다는 것. 굳이 말을 걸지않고, 바람같이 휙 지나치고, 가게에서는 손가락을 써서 '한 개' 를 간단히 표시하고, 그렇게 건조한 듯, 뒤돌아보지않고 '무례하게' 나오는것, 그게 어쩌면 배려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줄어든 '사회적 거리'
또 다른 친절한 변화, 갑자기 전화 번호를 많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몇 년씩 웃으며 인사는 해도, 전화 번호는 선뜻 교환하지 않던 사람들이 우체통에 전화번호를 넣고 가기 시작했다. 엽서에는 언제든 도울 수 있으니, 어려울 때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다. "아..고마운데..이 분이 누군지 몰라.."
사실 영국 사회에서 '사회적 거리'란, 코로나때문에 생겨난 새로운 현상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누군가와 오랫 동안 깊은 대화를 하고, 이제 좀 친해졌다고 생각한 다음 날, 길에서 만나도 쌩 하고 지나가는 등, 영국 사회에는 미묘하지만 분명한 '일정 거리의 법칙'이 있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켜야하는지, 일을 같이 했다거나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눴다고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십 년을 지내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서로에게서 2미터이상 떨어져 있다는 안정감때문일까, 아니면 함께 이 일을 겪고 있다는 동지 의식때문일까. 이름을 모르는데, 먼저 전화 번호를 주며, 언제든 돕겠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큰 한걸음을 가까이 온 것처럼 느껴졌다.
친절함이, 정말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할까? '친절하기'는 편리하지 않다. 친절과 배려에 대한 새로운 룰, 신경써야 하는 수많은 작은 부분까지. 그렇지않아도 심란한 상황에, 누군가에게는 더욱 부담일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한가지에서 느껴지는 부담감은, 크게 보면 분명 안정감으로 다가오게 된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이, 친절하자는 사회적 메세지와 서로의 배려는 결국 약한 사람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판데믹, 어느 나라일것도 없이 번갈아가며 약해지고, 힘들어질때, '아프면 우리가 양보할께요, 우리가 도와줄게요' 라는 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누군가의 자비에 기대야한다는 부담스러움이 아닌, 힘들면 당연히 도움을 받아도 된다는 촘촘하게 짜여진 사회적 안전망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