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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May 12. 2022

유기(遺棄)체

나는 유기(遺棄)된 존재였다. 길바닥에 버려져서 고아원을 전전긍긍했다느니, 천애고아로 자라며 온갖 설움과 고난을 다 겪었다느니 본인의 불행을 훈장처럼 여겨 내놓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말하는 뜻의 유기는 참으로 낯설기도 할 것이며, 그걸 감히 ‘유기’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냐고 힐난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기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기된 것은 나의 정신(精神)세계였다.


모든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세상의 모든 물건에 꼬리표가 따라붙고, 하물며 비어있는 땅덩어리와 상공(上空)까지 명확하게 선 긋고 나누어 누구의 소유며, 어디의 경계며 명확한 기준과 이름을 붙여가는 것처럼 모든 물건에는 최소한의 책임과 소유가 생길지언정 사람의 정신세계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가장 변하지 않는 원초적인 것임에도, 사람의 정신세계는 으레 나이가 들면 그에 따른 책임이 따라오고 그에 맞추어 정신세계가 성숙하는 것이라고 그처럼 개인의 책무라고들 하였으나 나의 정신세계만큼은 내가 속한 조직, 내가 포함된 연령대, 내가 속한 성별 그 어느 것에도 어울리지 않게끔 저만치 뒤축으로 물러나 있었던 것이었다. 내 정신세계의 발걸음은 어째서 그렇게 느렸을까?


유기된 정신세계는 결국 나와 동떨어지다 못해 모든 것에서부터 나를 하나 둘씩 잡아 내려끌기 시작했다. 처음은 언감생심, 내 스스로 무엇이든 감히 마음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만큼 버려져있던 정신세계는 나의 능력을 내 스스로 폄하하고 깎아내려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 내 육체는 이에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마치 불수의근이 제 뜻이 아닌데도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쳐 남들 앞에 쪼그라들었고, 그에 따라 가동 범위는 점차 좁아져 이제는 일상에서 몸 하나 꼼짝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유기된 정신과 맞는 유기된 육체. 무엇 하나 나를 돌보지 못하고 있었을 때, 그러한 나 자신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이끌어 낼 힘은 부족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음에도 나는 극복할 수가 없었다. ‘아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자.’ 좌우명을 붓글씨로 적어 만들어 둔 액자에는 이미 뽀얗게 먼지가 뒤덮인 지 오래였다. 유기된 정신을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낼 만한 여력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고, 그랬었다 하더라도 저만치 뒤에서 유기된 정신은 새롭게 돋아나는 나의 정신을 짓밟고 언제든 뭉개버리려고 벌겋게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지켜보고 있었다.


밖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유기된 나란 존재는 도움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말이나 터놓고 지내는 또래들 모두 역시 유기된 본인을 저만치쯤 뒤에서부터 질질 끌어오며 살고 있었기에 의지를 할 수 없었으며, 적어도 본인의 삶에 소유가 확실한 꼬리표가 붙어있는, 나보다는 당장 앞서 있는 존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엔 그들은 너무 빛나고 있었다. 결국 막다른 구석에 내몰린 채, 나는 내 유기된 정신세계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모든 문제에 내가 해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유기. 나 또한 내가 짊어진 것들을 버리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쉽게 관계를 저버렸고, 책임이 생기려고 하는 순간 나는 마치 너무나도 무겁고 끔찍한 돌덩어리가 내 양 어깨를 짓누르기라도 하듯 이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기만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였고, 나의 일상이자 나 스스로가 행하는 나에게로의 구원이었다. 무슨 일이든 ‘이것은 내가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싫어 내버리는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살아온 나의 태도는 모든 존재가, 모든 업무가, 모든 일상이 싫증나게 만들었다. 싫으면? 버리면 그만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동안 너무 많이 내다버렸다는 것. 무소유(無所有)의 삶이 아니라 무책임(無責任)의 태도로 더는 내 손에 버릴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내 삶에서 주체성을 내다버리고 모든 책임을 유기해왔던 나는 이제 내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니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제 더는 버릴 책임이 없으며 동시에 권리 또한 없는 양 손 모두 빈털터리였고, 이제 내가 응당 가졌어야 할 책임이자 과업들은 넘을 수 없는 산을 끝없이 만들어 저 멀리 깜빡이며 보이는 험준한 산의 대피소 불빛처럼만 보이고 있었다. 나는 갈 수 없다…. 일생이라는 항로에서 조난된 나는 저 곳까지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더 버릴 것이 없으니 마지막으로 버릴 수 있는 것은 내 자신이었다. 이는 나의 정신세계가 그토록 나를 뒤에서 잡아끌며 구하고 있던 영원한 해방일지도 모른다. 본인의 손에 이끌려 뒤로 무너지기만 하면 되는데, 어째서 자꾸 앞으로만 나아가려 저항하는 것이냐, 나의 말만 들으면 된다, 더 이상 고생할 필요 없다. 끊임없이 달콤하게 속삭이며 나를 회유하던 정신세계 덕에 정말 나는 요즘 나를 내다버리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 유기로부터의 유기. 그와 동시에 가장 나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유기. 지금의 나는 나를 유기하고만 싶다.





(퇴근길에 마주한 길가의 공병(空甁)을 보고 끄적끄적…. 분리수거를 생활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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