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시작된 것은 식사가 끝난 후, 남은 점심시간 동안 사무실 한 구석에 앉아 또래 직원들끼리 커피를 마시며 시간 까먹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말문을 연 것은 우리 회사 막내. 막내는 우리 사무실에서 나름대로 요즘 이슈인 ‘MZ세대’의 대표성을 갖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전에 겪었던 타 부서와 업무협조 경험을 이야기하며 상대가 본인을 얼마나 불편하게 했는지, 타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달라서 오는 불편함은 어떤지를 토로하고 있는 중이었다. 막내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나이는 젊지만 이른 입사로 직장 내 나름 경력(짬? 이라고 표현해야 하나.)이 있는 중견급 사원이 말을 가로채 갔다.
“야, 그건 일도 아니야. 내가 너 때는 어땠냐면….”
나는 이런 류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서두(序頭)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느껴지는 것은 바로 공감의 결여(缺如)이다. 말을 먼저 꺼낸 화자는 본인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을 원했으나, 듣는 사람은 애초에 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자기 얘기만 준비하고 있다가 자신의 주제로 이야기를 바꾸어 풀어내기 바쁘다. 과연 그 사람은 상대방이 하려는 얘기를 얼마나 들었을까? 초반의 20%만 듣고 나머지 80%는 귀담아듣지 않은 후, 자신의 이야기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지 않았을까? 익숙하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대화의 불편함은 내가 이러한 문장을 어디서 자주 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했고, 마침내 대학교 동기들을 떠올리게 했다.
20대 중반, 취업준비를 하며 그 즈음의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난들을 펼쳐나갈 곳은 바로 또래 친구들밖에 없었다. 모두가 힘든 처지에 있다 보니 동기들끼리 모이는 자리를 가지면 마치 자조집단(自助集團)과 같은 모임이 구성되기 마련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한 명, 한 명씩 스스로가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으며 좌초되고 부딪친 고난과 고통을 표현할 때, 내 동기 중 몇몇은 저렇게 타인이 겪은 고난에 집중하지 않은 채 오히려 상대방의 고통을 축소시켜 버리고 자신의 불안과 어려움을 과하게 포장해서 늘어놓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개개인으로 보면 나쁜 친구들은 아니었다. 모두가 다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었고, 한시도 게으르게 살지 않은 친구들이었음에도 그 순간순간 동류의 또래 집단에서 터져 나오는 ‘너보다 내가 더’ 하는 문장은 그 모임에서 내 기분을 퍽 불편하게 만들었다. 보통은 “야, 나는 더했어.”로 시작하는 문장. 남에게서 빼앗아 온 대화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 지 몰라서 말꼬리를 흐리며 “~그랬었어….” 하고 끝나는 맥없는 대화.
나는 그런 친구들을 보며 ‘아니, 우리 학과는 애초에 ‘공감’하는 일에 집중이 되어 있는 학과인데, 이런 학문을 공부한다는 녀석들이 어쩜 이렇게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남이 열심히 드리블하고 있는 주제에 강하게 태클을 해서 결국 자신의 앞으로 빼앗아오다시피 한 친구들의 얘기는 결국 ‘너도 힘들지만 나도 힘들다. 나도 공감이 받고 싶다.’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차례가 왔을 터였는데. ‘조금 후에, 먼저 말한 친구가 충분히 공감 받고 난 후에 나섰어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은 그 순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주제를 빼앗아가는 친구들에게는 나는 오히려 공감해 주지 않고 이번엔 내 식대로 화제를 바꾸어 버렸다. 그 또한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동년배 또래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언제든 번개같이 방향을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앞서 말하고 있던 친구를 두둔하려고 했으며, 방금 전까지 누군가 원하던 공감을 본인의 앞으로 가로채려던 또 다른 타인에게 다시금 결여를 선사했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앞선 그가 느낀 공감의 결여를 덜어줄 수 있을까 싶어서. 그렇다고 먼저 말한 친구의 어려움을 다시금 대화 주제로 꺼내서 들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난 상담사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 자리에선 친구였으니까. 그 정도의 배려까지는 할 생각이 나도 없었는지도.
오늘 사무실에서 나름 경력 있는 사원이 우리 사무실의 막내에게 하는 말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요 근래 나는 어땠던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요즘 남이 하는 이야기에 충분히 귀 기울인 후 공감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던가? 그렇지만은 않았다. 최근의 나는 내가 모르는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입을 꾹 닫는 편이었고, 그 외에 조금이라도 내가 말할 기회가 있는 일상적인 주제로 화두가 향할 때면 먼저 나서서 “나는 이랬다.”하면서 대화를 내 쪽으로 끌어오려고 했었다. 항상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편한 대로의 ‘I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드시 들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각자 하고 싶은 말들도 많다. 6월 초에 주어진 꿀만 같은 연휴동안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경험들을 하고 왔을까.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끌어안고 또래들에게, 동료들에게 돌아가 한없이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 뽐내고 싶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편이다. 나도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마다하지 않겠지. 그래도 내일 하루만큼은 조금 꾹 참고, 나의 급한 성격을 누른 채 남이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야겠다. 말하는 사람에게 공감까지 주진 못하더라고 그 사람이 반드시 하려던 말은 마저 다 할 수 있게. 그 정도 시간은 있는 것 같으니까 아직 나에겐. 내일은 꼭 ‘All Ears’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