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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Jun 26. 2022

맑은 물을 담아야 밑빠진 독을 품을 수 있다.


 요즘 들어 자꾸만 과거를 탐닉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는 문화 트렌드에 관심이 가기보다는 내가 옛날에 봤던 것들, 또는 읽었던 책들, 들었던 노래들에 집중하게 된다. 사람은 어느 일정 나이  까지만 경험이 확장되고,  이후로는 본인이 경험해 왔던 것들을 답습하게 된다고 했던가.  나이 즈음이 바로  경계인가보다.


최근엔 갑자기 “애기야 가자” 하는 파리의 연인 명장면이 생각나서 유튜브를 통해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또 “저 사람이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고!” 하고 외치는 박신양의 모습도 찾아보았는데, 그러고 나니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유튜브 알고리즘은 어느 순간 박신양이 열연한 코미디 영화인 ‘달마야 놀자’ 클립을 추천 영상에 올려놓고 있었다.


달마야 놀자가 개봉한 건 2001년. 무려 20년이 넘은 영화다. 내가 초등학생 때 개봉했고, 그 이후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까지도 종종 OCN에서 방영해 주거나, 명절특선영화 편성되어 여러 채널에서 선보였었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세밀하게 다 기억나지는 않더라도, 개략적인 플롯은 당연히 기억이 난다. 스님들이 지내는 조용한 절에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숨겨야 하는 조직폭력배들이 쳐들어와 거주하게 되며 생기는 사건과 사고들.


그 중 영화의 백미(白眉)는 누가 뭐래도 바로 ‘빈 독에 물 채우기.’ 장면일 것이다. 스님들이 지내는 절에 조직 폭력배들이 무단으로 들어와 머물기를 며칠, 더 머물겠다는 폭력배 측과 이제는 절을 떠나달라는 스님들 측의 팽팽한 의견 대립 끝에, 5:5 구성원을 바탕으로 여러 종목의 경기가 이루어진다(이 과정에서 화투, 족구, 삼육구 등 상상치 못한 경기들이 나오고, 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웃음 포인트를 넣어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경기는 결국 무승부로 끝내 결판을 내지 못하자 절의 오야붕(?)인 주지스님은 중재안으로 양 측 모두에게 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라는 문제를 낸다. 독에 물을 채우는 방법은 결국 항아리를 물에 던져 넣는 것. 폭력배들이 깨진 독을 들고 근처 연못에 던져놓고 나서야 “독 안에 맑은 물이 가득 흘러 넘치는구나.” 하며 경기는 폭력배들의 승리로 끝이 난다. 이후 주지스님은 폭력배 우두머리인 박신양과의 독대에서 왜 본인들을 감싸주냐는 박신양의 물음에 ‘너희가 항아리를 물속에 던져 넣었듯이, 나도 밑 빠진 너희들을 내 마음 속에 던져 넣었을 뿐이다.’ 하는 말로 깨달음을 준다.


 어렸을 적에 봤을 때는 단순한 코미디 영화였던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오히려 그때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사람을 마음속에 던져 넣는 것이 지금의 나는 과연 가능할까? 마음에 던져 넣음이라 함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내 마음 속에 오롯이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가? 상대를 마음속에 던져 넣기 위해서는 그만한 아량(雅量)이 있어야 하고, 나와 다름을 포용(包容)할 수 있어야 하며, 상대를 인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배척하고 밀어낼 것이 아닌, 정말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러면서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초연적인 자세.


 요즘의 나는 항상 여유 있는 입장을 취하며 타인의 처지를 고려한답시고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 하며 한두 발짝 뒤떨어져서 관망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황희 정승이 싸움 난 두 하인의 말이 모두 옳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 마음에는 ‘그것은 아니다, 내 생각엔 이것이 옳다.’ 하는 내심이 따로 있었으므로, 나는 결국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내비치지도 않았을 뿐더러 상대를 내 마음 속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던져 넣지도, 던지면 받아주지도 않은 내 마음은 결국 항아리를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연못의 너비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남에게 바라지 않아야 한다. 상대가 바뀌는 일은 없다.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여태까지 상대를 대했으나, 어느 순간 일방적이기만 한 나의 노력을 알아달라고 상대에게 툴툴거리거나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하는 나를 보며, 아직까진 내 마음 하나도 다스리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또 다시 초라해진다. 있는 그대로 누군가를 내 마음속에 던져 넣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을 넓히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좁아터진 마음에 누군가를 집어넣으려고만 하다 결국 이내 뱉어내고 서로 상처입고 상처주고를 반복할 뿐이다. 마음의 너비. 항아리가 들어올 수 있도록 먼저 내 마음에 맑은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키워나가야겠다.


유튜브 캡처 화면. 박신양의 명품 연기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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