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쓰는 사람의 눈물나는 아이폰 리퍼기
아이폰에 입문한지 이제 2년 즈음 되어갈 무렵, 갑작스럽게 기기가 셀프 재시작을 거듭하는 고장이 발생했다. 원격 지원을 받았으나 문제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고, 직접 유선 상담을 진행하며 받은 점검 역시 이상이 감지되지 않으니 근처 센터를 방문해서 점검 받아보라고 권유. 편하게 쓰던 스마트폰이 오작동하자 마치 내 몸 한 구석이 어디 시원찮은 듯한 찜찜함과 불편함이 생겨버렸다. 어쨌든 불편한 것은 고쳐야 했기에 그 길로 회사엔 조퇴를 냈다. 애플 공식 서비스센터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로 한 시간은 이동하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단 것뿐.
서비스센터로 이동하면서도 기도만 할 뿐이었다. 내 차에는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지 않았고, 항상 스마트폰으로 O맵, OO맵 등 여러 가지 어플리케이션을 돌려가면서 사용했기 때문에, 가는 길에 또 다시 재시작이라도 된다면 낭패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센터 도착 5분을 남기고 단말기는 또 다시 화면에 스피닝 기어(옛날 말로는 모래시계?)를 띄운 채로 먹통. 한번 시작된 재시작은 사과 로고를 검은 화면에 띄워둔 채 다시 작동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묵묵부답이 되어버린 내비게이션이었지만, 그나마 이쪽으로 몇 번 와봤던 경험과 거기에 사무실에서 출발하기 전 로드뷰로 미리 길을 답사했기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아이폰에 입문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그야말로 ‘애플 초보’였다. 그 전에 휴대전화 수리를 맡겨본 경험은 삼성 단말기에 국한되었던 뿐이었던지라, 당연히 서비스센터는 으레 그렇게 번듯하게(?) 닦아놓은 줄 알았으나 웬걸. 내가 방문한 서비스센터는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냥 정말. 있을 것만 딱 갖춰놓은 공장 한 켠의 서비스센터 느낌? ‘서비스 센터가 멀끔하지 않으면 어떠냐? 수리만 잘 되면 되지.’ 하고 옆을 돌아본 결과, 평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석은 그야말로 만석이었다.
“저기 얼마나 걸릴까요?” 바쁘게 지나다니는 서비스센터 직원을 잡고 물었다.
“한두 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은데요? 접수부터 하고 기다리세요.”
뜨악. 생각보다 대기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렇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나는 그날 저녁에 약속을 잡아 둔 상태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조퇴까지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 불편함과 찜찜함을 다시 짊어진 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 기다리지 뭐.
한 시간쯤 기다렸을 때, 접수자 목록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OOO님. 계세요?”
“네. 여기요.”
서비스센터 직원은 내 단말기를 보더니 몇 가지 점검을 했다. 점검 결과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고장은 맞는 것으로 판명. 부품이 있나 확인해보고 리퍼를 진행해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이거, 다 초기화되는데 괜찮으시죠?”
“초기화요? 전부 다?”
“백업 안 해두셨어요?”
생각지도 못한 대화가 전개되었다. 초기화? 아이폰은 부품을 갈아끼우는 식이 아닌 통째 교환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러는 오히려 새로운 단말기를 쓰게 된다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준비되지 않은 나에겐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어… 얼마나 날아가나요? 사진, 연락처 다요?” 얼결에 내가 되물었다.
“그냥 새 단말기 받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앞에 스크린이랑 뒤에 카메라 빼고 전체 다 교체입니다.”
“아…”
그 순간, 서비스센터 직원은 무표정하게 내 단말기의 운명을 손에 쥐고 나를 쳐다보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판단을 내려야 했다.
‘뭐가 있지 핸드폰에? 지워져도 되나? 아니 연락처도 다 날아가는데 상관없나? 사진은? 그 많은 사진이 다 지워져? 업무자료도 있는 것 같은데 상관없나? 문자내역은?’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으로 10초간 쏟아져 내렸다. 과연 내 단말기에는 정말 그토록 중요한 정보가 남아있었나? 백업을 해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서비스센터를 방문했던지라 머릿속은 소규모 패닉 상태. 그러나 벌써 이만큼 기다렸던 시간과(그래봤자 한 시간이었지만), 내가 다시 여기 오려면 또 다시 조퇴나 반차를 내고 와야 하고, 당분간은 내 업무가 너무 바빠서 그러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점, 그리고 쇠뿔도 단김에 빼는 것인데 다시금 일을 끌고 가고싶지 않았다. 결국 약 12초만에 2년여의 기록에 대해 내린 결단.
“네, 그렇게 해 주세요.” 내가 말했다.
`“저쪽에서 기다리세요. 다시 불러드릴게요.” 센터 직원은 쿨하게 말하고 사라졌다.
다시금 내 손에 들어온 단말기를 붙들고, 대체 뭐가 있었지 여기에. 급하게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내 단말기 저장공간의 대부분은 사진이 차지하고 있었다. 사진. 여기 중요한 것들이 있었나. 그 중 반은 일상사진, 반은 업무 관련 사진. 업무 관련 사진이라고 해도 다 나름대로 추억이 깃든 사진들인데. 이게 그냥 다 없어지는 건가.
이미 머릿속은 코마상태에 빠져서 급하게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멍청하게도 급하게 내린 선택은 iCloud 용량 확대. 확대해서 조금이나마 백업을 해 두자! 그러나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해당 센터 와이파이는 잡히지도 않았을뿐더러, 더군다나 내 단말기의 가용 공간을 반 이상 차지한 100GB의 데이터를 어떤 식으로 iCloud에 올릴 건데? 내 요금제는 월 10GB 제공 후 일 2GB를 추가로 제공하는 알뜰폰 요금제였다. 짧은 순간에 데이터 백업은 택도 없는 상황. 패닉을 해소하려고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던 내 행동은 결국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잠시 후,
“단말기 주세요. 수리 해 드릴게요.” 센터 직원이 와서 말했다.
그렇게 내 이전 단말기는 내 손을 떠나버렸다. 스마트폰이란 것이 참 편리하면서도 그게 없게 되는 순간 사람이 스마트해지지 않게 되더라. 한 바구니에 계란을 담는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이미 우리는 우리 일상이라는 계란을 너무 많이 스마트폰에 담아놓진 않았는가. 그렇게 우주에 혼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지리멸렬한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 내가 단말기를 다시 전달받은 것은 거의 저녁7시가 가까워져서였다.
“단말기 수리 되었습니다. 여기 서명해 주시고요.” 수리 담당 직원이 나를 앉혀놓고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예 새 것인가요?”
“네, 보시면 원래 단말기 외부에 있던 충격이나 찍힘 자국도 다 없어진 거 보이실 거예요. 잘 되는지 확인 다 하신 후 이상 없다는 서명만 해 주시면 됩니다.”
“금액은…?”
“지금은 무료 보증 기간이세요.”
“아 혹시 애플케어 플러스 덕인가요?”
“아니죠. 원래 2년 보증이잖아요. 지금 2년 채 안되셨으니까 그냥 해 드린 거죠.”
이런 젠장.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입한 단말기 케어 서비스였는데. 그게 아니었어도 그냥 무상으로 수리가 되는 거였네. 씁쓸한 미소가 얼굴에 피어올랐다.
“수리 완료되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어, 근데 이거 초기 설정은…?” 연신 hello를 써갈겨내리는 단말기를 가리키며 내가 물었다.
“여기는 와이파이가 안 잡히고요, 데이터로 하셔야 해요.”
“근데 데이터가 안 잡히는데요?”
“네? 잠시만요.” 센터 직원은 다시 내 단말기를 가져갔다.
“아, 이거는 보세요. 고객님 유심이 인식이 안 되는 거예요. 저희 쪽 테스트 유심 꽂으니까 데이터 잡히는 거 보이시죠? 기기엔 이상 없습니다.”
“아니, 그런데 저 이거 설정이 되든 뭐가 되든 해야 연락을 하죠.” 답답한 마음에 내가 물었다.
“통신사 어디 쓰시는데요?”
“K○ 알뜰폰인데요….”
“아… 그거는 센터 나가시면 길 건너편에 KT 대리점 있거든요? 거기 가서 한번 말씀해 보세요. 이게 기존 유심에는 기존 단말기의 IMEI 번호가 등록되어 있어서 그런데, 쉽게 생각하면 기기가 2대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러니 통신사 가셔서 리퍼 받았다고 말씀하시면 그쪽에서 유심 재등록해서 해결해 줄 거예요?”
기묘하게 말꼬리를 올리는 직원을 뒤로한 채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시간은 이미 7시가 넘은 상황. 단말기 대리점이 문이라도 닫았다면 나는 꼼짝없이 내 단말기랑 내일 아침까지 여러 가지 다국어로 인사만 하게 생긴 상황이었다. 급하게 뛰쳐나가자 길 건너편 K○대리점이 보였다.
“어, 저 지금 혹시 유심 재등록 되나요? 길 건너편 수리 센터에서 리퍼 받았는데요.” 들어가자마자 다짜고짜 데스크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그날 저녁에 약속이 있는 상황이었다. 수리가 예상보다 늦게 끝났고 지금 내 상황이 어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대방한테 전달이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
“네, 생년월일이랑 전화번호요.”
있는 그대로 읊어줬으나, 앉아있는 대리점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했다.
“저, 알뜰폰인데요. K○ 알뜰폰…” 고개가 뒤틀리는 이유를 해소하기 위해 내가 덧붙였다.
그러자 앉아있는 직원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알뜰폰은 여기서 안 되세요. 직접 연락하셔서 하셔야 해요.”
서비스센터에서 이 방법을 안내해주던 직원이 말꼬리를 왜 올렸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그 사람도 잘 모르면서 그냥 마구잡이로 딴 데로 보낸 거였구나. 모르면 모른다고 말을 하지. 왜 사람을 이렇게 난처하게 하지? 그건 그렇다치고, 내가 지금 전화가 안 되는데 알뜰폰 서비스센터에는 어떻게 전화를 하지?
“혹시 거기 서비스센터 몇 시까지 하는지 검색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아, 지금 찾아봤는데 끝났어요. 18시까지 상담하네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니 그러면 오늘 이 단말기는 못 살리는 거구나. 당장 그렇다면 보기로 한 친구가 문제였다. 누군가의 휴대전화를 빌려서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 내가 친구의 번호를 기억한다는 전제 하에. 그러나 내가 그 친구의 번호까지 외우고 있을 리가 만무했으니 애초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한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타고 온 차가 있는 곳으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휴대전화를 수리하러 와서는 휴대전화를 못 쓰게 되다니. 아니 기능적으로는 완벽하게 살아난 휴대전화였지만 통신망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 무용지물이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수도 없는 먹통 단말기. 그나마 다니던 길이라 기억을 더듬어 밤길 운전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친구의 집. 당장 우리 집에 들러서 PC 메신저로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으나, 단지 내가 오래 알아온 친구라면 집에 당연히 있을 것 같았다. 10년지기의 감이랄까?
친구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시간은 8시를 넘어 9시에 가까운 때였다. ‘여기 친구가 없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아는 그 녀석이라면 집에 있을 건데.’ 하는 자신감을 갖고 초인종을 눌렀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뭐냐? 연락도 안 되고.”
“야, 말도 마. 휴대전화 고치고 먹통됐어. 여기 와이파이 되지?”
이미 친구는 방에서 나와의 약속이 깨질 것을 대비해 사다놓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사과는 미뤄두고 친구 손에서 맥주를 뺏어 시원하게 들이켰다.
“이거 와이파이 연결해야 뭐 어떻게든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폰이냐? 어울리지도 않는 거 쓴다고 그러더니만. 비번 저기 적혀있어.”
친구가 알려준 셋톱 박스 위의 비밀번호를 입력, 드디어 내 단말기가 세상과의 통신을 시작했다.
“됐다!” 휴대전화에 생명을 불어넣었단 쾌감에 못 이겨 내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와이파이 연결한 거 가지고 겨우?” 친구가 물었다.
“야, 그냥 먹통이었어. 이제 이걸로 메신저 다운로드 하고 연락 돌려야지. 내일까지 전화 안 된다고.”
그렇게 연락을 돌릴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 동료든 누구한테든지 간에 무슨 연락이 와도 전화가 안 될 수 있음을 알려야 했다. 내 단말기는 비로소 와이파이에 연결되고 나서야 다국어로 인사를 건네던 것을 멈추고 메인 페이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앱 스토어에서 메신저만 다운받으면 되는 순간.
“야, 이거 뭐야?”
앱 다운로드를 위해 로그인한 내가 마주한 것은 2차 인증단계. 평소 쓰던 단말기가 아닌 곳에서 앱 스토어 로그인 시도를 했기 때문에, 2차로 인증을 해야 한다며 내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냈으니 인증번호를 입력하란다. 아니, 그런데 내 휴대전화 번호는 지금 예전 휴대전화에 연동되어 있는데? 인증문자를 어떻게 받지? 황당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쯧쯔. 관둬라. 술이나 마시고 집에 가. 내일 복구해.”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나한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결국 휴대전화 번호가 살아있지 않으니 오늘은 아무런 인증도 할 수 없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말기 충전 뿐이었다. 리퍼 한 번에 무력화된 나의 휴대전화. 나는 그동안 휴대전화에 너무 많은 것을 담은 채 의존했기에 이것이 먹통이 되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된 것이었다. 결국 다음날까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PC 메신저를 통해 가까운 직장 동료에게 나의 상황을 알렸을 뿐.
다음날 9시. 사무실에 출근해서 알뜰폰 통신사의 상담시간이 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 수 있는 것은 다행히도 내 사무실 데스크의 유선전화 덕분이었다. 애초에 내 휴대전화를 활용해 연락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만약 내가 직장이 없었더라면? 그땐 정말 해결방법이 까마득했을 것이다. 상담센터와 연락할 수단조차도 없었을 테니까. 다소 긴 연결 대기시간 이후 겨우 상담사와 연결되었다.
“고객님 유심에 등록되어 있는 이전 단말기 정보 지우고 새로 연동해드리려면 3~4시간은 걸려요.”
심드렁한 목소리로 상담원은 대답했다. 아니 그렇게나 오래 걸린다고? 내 직업이 당장 휴대전화에 의지해서 일처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지만, 만약 물류 운송업이라든가 기타 영업직이었다면 피해가 막심했을 건데도 상담사는 사태의 심각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태도로 응대할 뿐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기에 신청해 놓고 기다리기만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도 휴대전화 액정 속 안테나는 터지지 않았다.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잠시 일을 하다 휴대전화를 보니 어느 순간 통신이 연결되어 있었다.
‘하, 이게 이렇게까지 불편할 일인가.’
이번 휴대전화 리퍼를 통해서 느낀 것은 정말 통신의 두절이란 것이 생각보다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디톡스니 뭐니 해서 지나치게 발달한 타인과의 긴밀한 연결고리 자체를 끊으려는 시도들도 많다만, 이를 내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겪게 되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내 휴대전화의 데이터가 모두 날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리를 간 것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무기력하게 통신이 끊어질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불편이 초래하는 불쾌한 감정은 실로 엄청났다. 요즘같은 말 그대로 ‘최첨단’ 시대에 내가 이런 불편함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이런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었던 이 모든 프로세스에 환멸이 났다. 내가 통신금액을 아낀 것도, 평소에 데이터 백업을 위한 iCloud 사용을 단지 몇천 원 하는 비용 때문에 주저했다는 것도 모든 것이 마치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날아간 사진 7,000여장. 거기에 더해 날아간 내 Melon 플레이리스트 1,000여 곡. 모든 것이 이토록 손쉽게 사라진다는 점이 정말 나를 질리게 했다. ‘별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모으고 집착했을까?’ 하는 생각 또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차후에 백업을 한 후 센터를 방문했어도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네 생업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것도 더러는 공감할 것이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와 먹고사는 비용 덕에 나는 2년간의 내 추억을 내 손에서 떠나보내고, 더군다나 1박 2일동안 세상과의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아이폰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도 잠시, 2년 가까이 사용한 후 리퍼를 거쳐 거의 새 휴대전화로 거듭난 단말기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 앞으로 2년만 더 쓰자. 그땐 너를 떠나보내게 될 것만 같다. 지나치게 답답한 아이폰 수리(리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