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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Jul 13. 2024

어른인 내가 두바이정도는 양보했어야 했나.

그놈의 초콜릿이 뭐길래 이렇게들 난리람?

“자기야 이거 봐.”

옆에 누워 스마트폰에 빠져 있던 연인이 나에게 화면을 불쑥 내밀면서 말했다.


“뭔데?”


“이게 지금 유행하고 있는 간식이래. 두바이 초콜릿이라고. 안에 피스타치오 베이스로 해서 뭐가 바삭거린다던데?”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웬 인플루언서가 화면 내에서 초콜릿을 하나 잘라 먹으며 연신 탄성을 내 지르는 중이었다. 엄청 맛있고 바삭하고 초콜릿도 맛있고 어쩌고....


“아, 초콜릿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뭘. 나 그리고 견과류 별로 안 좋아해.”


딱 잘라 관심없이 말하고 다시 내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손가락. ‘두바이 초콜릿 구입.’


평소엔 먹을 것에 관심이 거의 없고 정말 생존을 위한 소량의 음식만을 섭취하는 나의 연인이지만, 반대로 빵, 떡, 초콜릿 등 디저트에는 사족을 못 쓰는 귀여운 매력 또한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호기심을 갖는 두바이 초콜릿을 어떻게든 구해보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이 다급해졌다.


그러나 검색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찾아보니 이게 두바이 현지에서도 무슨 온라인을 통해서 예약을 해야 되는 둥 구하기가 어려운 편이며, 국내 유행을 소화하려고 수입해 오는 것으론 물량이 한계가 있는 상황. 설령 그 물량이 많이 수입된다고 해도 서울 및 수도권 중심으로 풀리겠다만, 내가 사는 지역은 세련된 해외 문물(?)을 접하기 어려운 시골 지역. 당장 조달에는 무척이나 무리가 있어 보였다. 모 편의점 기업에서 비슷한 상품을 판매한다고는 하는데, 여러 검색을 통해 본 결과로는 맛이 영 아닌 것 같고....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여러 번의 검색 끝에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어느덧 초콜릿 후기 정보만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발견한 기적같은 게시물. ‘OO시 두바이 초콜릿 판매처.’ 알고리즘 학습은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섬칫하게 만들었다. 내가 평소에 관심을 두고 반응한 OO시 정보에 최근 검색어인 두바이 초콜릿을 조합해, 누군가가 올려놓은 ‘OO시 두바이 초콜릿 판매처’ 게시물을 내 눈 앞에 띄워놓는 모습에 전율도 잠시, 손가락으로 열심히 피드를 넘겼다. 그래서 어디라고?


이 시골 촌구석에서는 결국 두바이 초콜릿을 직접 구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 결과, 레시피를 통한 ‘셀프 조달’의 성행. OO시에 위치한 몇몇 카페에서 두바이 초콜릿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은 모양인지 후기도 나쁘지 않은 편. 여러 게시물에서 보았던 것처럼 뭐가 바삭바삭하고... 달고... 그런 후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게시물 내 여러 카페 중 한 곳은 더군다나 집 근처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꼭 그 초콜릿을 구해 그보다도 더 달콤한 연인의 함박미소를 보고 싶었다.


- 다음 날 -


평일보다도 바쁜 주말을 보냈다. 잠시 출근해서 회사 일도 돌봐야 했고, 가족 행사도 있었으며 부동산도 방문하고 정말 정신없이 보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분명 내가 무엇 하나 잊은 것이 있는 것 같은데....’ 하던 마음은 작열하던 한여름의 태양이 하루를 정리하고 이만 넘어가려고 하는 무렵에서야 해소되었다. 아, 두바이. 급하게 어제 찾아본 카페로 전화를 걸었다.


“네 OO입니다~”


“아, 인스타그램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두바이 초콜릿 아직 있을까요?”


“잠시만요... 네, 지금 딱 하나 남아있네요. 예약해 드릴까요?”


 “아, 네. 바로 갈 거예요. 5분 안에 도착하니 빼 놔 주세요. 감사합니다.”


짧은 통화를 끝으로 급하게 차를 몰았다. 아직 있구나! 다행이다. 쉴 틈 없이 바빴던 주말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작은 초콜릿 하나로 연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나에게도 행복한 일이었으며, 그 행복한 일을 기대하면서 내가 느끼는 행복함은 그보다 더욱 더 컸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감정의 연쇄(連鎖).


카페로 차를 몰면서 ‘두바이 초콜릿을 한국에서 만들어었으면 그것을 두바이 초콜릿으로 부를 수 있는 건가? 아니, 두바이’식‘ 초콜릿이라고 해야하지 않는가? 한국식 두바이 초콜릿이라고 하는 건 어떨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만, 어쨌든 이름이 중요할 게 뭔가. 어차피 내가 원본을 경험해 볼 기회조차 없는데. 맹인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듯 두바이의 정취를 OO시에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뿐이지 않는가. 자조적인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중, 이윽고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 앞에는 ‘두바이 초콜릿 오늘 매진입니다.’라는 절망적인 입간판이 위엄있게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서 있었다. 그래. 내가 마지막 손님이니 당연히 매진이겠지. 그리고 저런 입간판까지 따로 있다는 것은 정말 이 두바이식이든 한국식이든 이 초콜릿 하나가 구하기 힘든 희소성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렷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카페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OO입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 아까 전화... 두바이...”


“아, 여기 있어요. 다행히 하나 남았네요. 다음번에는 미리 전화주시면 더 예약 가능하세요.”


“아, 혹시 인당 물량 제한도 있나요?”


“아니요. 그런 건 따로 없어요. 필요하신 만큼 미리 연락만 주세요.”


혹시 먹어보고 좋아하면 더 사다줘야겠다는 생각에 추가 구매 가능여부까지 확인했다. 곧 결제가 이루어지고 내 손에 들린 것은 정말 손가락 두 개 만한 초콜릿 하나. OPP(Oriented Polypro Pylene) 봉지 안에 자리한 그 초콜릿은 정말... 무척이나... 기대 이상으로... 자그마했다. 와. 이게 O,OOO원? 두바이 물가가 살인적이라더니 이걸 이 먼 OO시에서 이렇게 체감한다고? 아니. 이 모든 것은 이 초콜릿 하나 사 먹기도 어려운 시골이 문제인 것이다. OO시. 너의 초라함이 왜 내 지갑의 초라함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인가. 아, 인생이여. 고뇌에 빠지며 초콜릿을 손에 달랑달랑 들고 문밖을 나섰다. 행여나 내 손의 열기로 녹아내릴까 끄트머리만 잡은 채, 카페의 문을 열자 매장의 시원한 공기와 전혀 상반되는 더운 열기가 후끈 올라왔다. 인상을 찌푸리기도 잠시,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망연자실한 채로 입간판만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소녀 3명이었다.


“어떡해. 오늘 없대.”


“아, 좀만 더 일찍 올걸.”


“진짜 없나? 물어볼까?”


초등학교 3~4학년 언저리로 보이는 소녀들은 아까의 그 절망적인 입간판 앞에 서서 우는 소리를 웅얼대고 있었다. 아마도 이 친구들도 누군가에게 듣거나 혹은 인스타그램에서 소식을 보고 초콜릿을 구매하러 온 모양. 그중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후 소녀의 눈은 내 눈에서부터 아래로 쭉 떨어지며 급기야 내 손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깜짝 놀란 나는 그 달랑거리던 조그마한 초콜릿을 큼지막한 내 손 안으로 한층 잡아당겼다. 마치 반입 금지 물품을 몰래 학교로 숨겨 들어갈 때처럼. 방금 전까지 냉장고에 있던 이 자그마한 존재가 행여 녹을까 꽉 쥐지도 못하겠고, 밖으로 꺼내놓자니 소녀의 눈초리가 무척이나 죄스럽고.... 그 결과 엉성해진 손은 생달걀 2개 정도를 가벼이 쥐고 있는 억지스러운 모양새가 되었다. 내 손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꼭 알아야겠다는 듯이 뚫어지게 보고 있는 소녀를 뒤로하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여름 저녁의 더위보다도 더하게 목덜미와 귀가 후끈 달아올랐다. 


소녀들을 마주한 시간은 채 3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나이와 경험을 토대로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순식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희소성과 절망. 동심의 좌절. 소녀들 또한 내 어색한 몸짓과 눈빛으로 그 상황을 알았을 것이다. 과연 나는 그녀들에게 ‘초콜릿 사러 왔니?’ 하고 물었어야 했는가. 과연 물었다면 나는 이걸 이대로 양보해서 그녀들에게 기쁨을 주고 동심을 달콤함으로 충족시켜 주었어야 했나. 아니 근데 좀 비싼데, 돈이라도 받고 주었어야 했을까. 여러 생각이 넘어가는 해를 뒤로하고 내 머리로 쏟아져 내렸다. 이 초콜릿 하나로 내가 얻는 기쁨은 저 세 명의 소녀들이 얻는 기쁨과 얼마나 차이가 컸을까. 내가 연인을 통해 얻는 기쁨과 즐거움은 과연 저 세 소녀의 기쁨보다도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사람의 기쁨에는 경중(輕重)이 있는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때의 좌절하던 소녀들에게 ‘이거라도 가져갈래?’하고 어른스럽게 양보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내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응당 나 또한 나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랬어야 한다고 나를 몰아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음에 또 사러 올걸 그랬나. 감정의 오르내림이 무척이나 불편하고 죄스럽지만, 이것을 보고 즐거워할 내 연인의 표정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나도 이게 필요한 것은 사실이니까. 손가락만한 초콜릿을 두고, 동심을 더 어루만져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조금은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대체 이 초콜릿이 뭐길래. 내일 전해주고 무슨 맛인지 조금 얻어먹어나 봐야겠다.

너무 작아 너. 두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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