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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Nov 10. 2023

고향의 초입 닭칼국숫집.

  겨울의 초입. 입동(立冬)을 마주한 그의 마음은 부쩍 쌀쌀해진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다. ‘얼마 만에 돌아온 고향인가.’ 하며 감흥을 느끼기엔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타향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거니와,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역마가 낀 팔자인지라 생김이든 모양새이든 비슷한 여러 곳에서 고향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경우도 많았다. 담뿍 가슴을 적시는 옛 정취는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그에게도 고향은 고향이었다.


‘거의 이 년 만인가.’


 시린 코 끝을 수 차례 흘쩍인 끝에, 잡념을 주워가며 일 톤짜리 트럭에서 훌쩍 뛰어내린 그는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의 내음을 맡으며 차 문을 쾅 닫았다. 세게 닫힌 차 문 때문에 트럭의 짐칸에 씌워놓은 비닐 천막이 움찔거렸다. 그의 직업은 보따리장수. 트럭 뒤에 온갖 채소와 부식(副食)들을 싣고 손님들을 찾아나서는 것이 그의 업이었다. 장날이면 장이 서는 곳에, 장 서는 날을 놓친 경우 어느 시골 한복판이든 주택가 어디든 촌스러운 스피커 음성으로 크게 소리를 틀어놓고 호객을 하는. 그러나 그의 성격은 그의 트럭이 빚어내는 소리와는 영 딴판이었다. 스피커에서 힘차게 박차를 맞추어 나오는 소리와는 다르게 그는 말 그대로 숙맥이었다. 남들 앞에서 말도 잘 못 하고 눈도 잘 못 마주치는 성격 덕분에 애써 큰 소리로 그러모은 손님들도 몇 번의 거래 끝에 종내 끊어지기 마련이었다. 손님 발길 끊어지는 게 뭐 대수냐. 흐르는 상권(商圈)을 좇아 떠날 수 있는 것은 엉덩이 밑에 네 바퀴 깔고 지내는 보따리장수의 특권이었기에 그는 그렇게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미련없이 떠나는 생활을 지속해 왔다.


  입에 풀칠이라도 할 요량으로 시작한 생업은 벌써 2년 남짓 되었다. 말했듯 그에게 퍽 알맞은 직업은 아니었다지만, 당장 먹고 살 것이 없어 고민인 직업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어느 한 장소에 정착해 진득하게 무엇인가 오래 해 본 경험이 없는 그에게 보따리장수는 하늘이 내려준 천직이라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그도 남들처럼 어딘가에 정착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0대 초 어린 시절에는 딴에는 똘똘한 머리를 가졌다고 생각해 고시 준비도 했었으나, 몇 번의 실패 끝에 포기하고 말았으며, 이후 적절한 나이의 남들을 따라서 회사도 몇 년 다녀봤으나 누구나 다 하는 직장생활이 마치 그에게는 맞지 않은 옷을 입혀놓은 ‘꼭두각시놀음’처럼만 느껴져 그는 오래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그 이후 사업을 한다는 친구를 따라 함께 동업자의 신분으로 발품만 팔기를 몇 년, 준비하던 사업은 엎어지고 둘 다 초라한 낙향을 결정했을 때 결국 수중에 남은 것은 마지막 거처의 방을 빼며 돌려받은 전세금 1천 3백만 원이 전부였다. 그때 나이는 서른 아홉으로, 어느덧 불혹(不惑)은 그의 목전에 와 있었다.


  더 이상 돌아갈 곳도, 그렇다고 더 나아갈 곳도 없는 교착 상태의 그는 결국 떠돌이 생활을 선택했다. 그저 멈춰버릴 수는 없었다. 그의 곁에 누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향에서 그를 생각하며 그 긴 세월 뒷바라지만 해 온 홀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기에 어떻게든, 쉬면서도 잠들 수 없는, 아가미 호흡흘 하는 물고기처럼 나아가야만 했다. 그는 결국 1천 3백만 원 중 1천만 원을 사용해 낡은 트럭을 장만했고 나머지 돈으로는 판매할 야채와 부식 그리고 차에서 지내면서 사용할 물품들을 구매했다. 머물러 쉴 수 있는 거처를 스스로 소각한 그는, 그렇게 네 바퀴의 움직이는 집에 올라 전국 각지를 떠도는 유랑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국 곳곳의 장터와, 시골 마을회관의 앞 공터와, 아파트 상가 앞의 갓길과, 한적한 주택가의 늦은 오후 골목까지 온갖 상권이란 상권을 다 섭렵하고 경험하기까지 그에게는 꼬박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중간 중간 판매할 부식거리와 채소들을 구매하러 근처의 큰 농수산 직판장에 들르는 일을 빼면 그는 항상 움직이고 있었다. ‘나아가야만 한다.’는 강박 하에 쉼 없이 움직이기만 했던 그가 고향에 다시금 들를 생각을 한 이유는 역시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의 나이가 불혹을 바라보는 지금, 그의 어머니는 이제 여든 중반을 넘긴 나이였다.


  어느 나이대서 부터 으레 어머니는 아파왔다. 항상 아파왔던 사람인 것처럼. 자식이 이렇게 익어가는데 어머니는 세월 앞에서 더 무참히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별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자 도리였다. 그런 어머니에게 돌볼 사람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저명한 사실이었지만 그는 한사코 고향에 눌러앉아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만은 피해왔다. 어머니는 그에게 감정의 소요(小搖)를 일으키는 매개체였다. 그가 어머니를 바라볼 때면 마음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지면서도 또 울컥 치솟는 감정도 있으며, 무척이나 서럽고 슬프기도 하였다. 으레 자식된 도리로 해야 할 일들을 어머니에게 해 드리지 못한 것들로 인해 마음이 지나치게 괴로운 탓이었다. 정작 어머니는 아들에게 바란 것이 없다지만, 그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으로부터 오는 무게를 대한 부담스러워 했으며, 그럴 때마다 또한 저 먼 근원에서부터 자리하고 있는 한없이 가해지는 모정에 기반한 사랑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높은 파도처럼 엄습해오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위대한 모정 앞에 아들 본연의 모습은 작아지게만 되는 그 순간 그는 가슴이 콱 막힌 것처럼 속이 끓어 오르는 것이었으나 표출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는 결국 고향에 자리할 수 없었다.


  슬그머니 마을 어귀에 도착할 때부터 그는 마음 한 편이 불편해져 왔다. 평소엔 해거름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음량을 소거하던 스피커는 마을 초입에서부터 진즉에 꺼 버렸다. 본인이 본인을 초라하게 바라보았기에, 이런 모습을 고향 동네에 자랑이랍시고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차를 몰았다. 살던 마을이, 그리고 본가가 가까워질수록 황량했던 그의 마음에는 무엇인가 답답하면서도 불쾌한 두근거림이 일었다. 오랜만의 고향 방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점점 커져만 가는 알 수 없는 감정의 격동에 차마 마을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차를 돌려 그가 고향에 올 적에 가끔 들렀던 어느 국숫집 마당 주차장에 차를 댄 것이었다. 끼니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식당 주차장에 차를 댄 이상 차에서 내려야만 할 것 같았기에 그는 덜컥 트럭에서 내렸다.


‘여긴 여전하네.’


  식당 뒤편의 휑하니 빈 논을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이미 추수를 마친 여러 논에는 흔히들 공룡 알이라고 부르는 곤포 사일리지가 마지가 마다마다 두세 묶음씩 놓여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폭은 넓지만 수량(水量)이 부족한 하천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건조하고 황량한 풍경을 바라보니 고향을 목도하고나서부터 울렁거리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 것만 같았다. ‘그래. 이참에 식사를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비닐하우스의 문처럼 생긴 식당의 문고리를 잡아당겨 안으로 몸을 옮겼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점심때가 제법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후끈한 열기가 안면에 스쳤다. 점심시간 무렵 근처 지역 단골들과 뜨내기손님들이 한 차례 휩쓸고 간 잔열(殘熱)이었겠거니 생각하며,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그는 혹여나 사장님이 동향(同鄕)사람임을 알아볼까 최소한의 말만을 사용해 음식을 주문했다. 메뉴는 닭 칼국수. 바알간 국물에 잘게 찢어넣은 닭 백숙이 들어가고, 그에 칼국수 면과 직접 손으로 빚은 김치만두가 들어가 하나의 냄비 속에서 열정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음식. 그가 이 년 만에 고향에 들어와 선택한 메뉴는 다소 자극적인 것이었다. 감정에 지속해서 오는 강한 자극을 또 다른 자극으로 눌러야만 한다는 듯이. 주문한 음식이 그의 앞에 차려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분 정도. 이후는 식탁마다 설치된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끓여 먹기만 하면 되었다. 테이블에 함께 제공된 큰 김치 통에서 겉절이와 섞박지를 꺼내 접시에 꺼내 담고 있자 이내 국수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불을 줄이고 작은 접시에 국물을 덜어 들이켰다.


  뜨겁고 얼큰한 국물이 그의 식도를 쓸어내렸다. 이윽고 온 몸에 퍼지는 전율. ‘마지막 끼니가 언제였더라.’ 돌이켜보니 어제 이른 점심 이후로 지금 이 시간까지 고향에 방문한다는 생각에만 빠져 입에 집어넣은 것이 따로 없었다. 얼큰한 국물이 선사한 감동도 잠시, 그는 곧 냄비로 빠져들 것처럼 달려들었다. 연신 국수를 덜어 입으로 가져가 삼키고, 울컥 올라오는 감정에 목이 멜 것만 같으면 아까 덜어놓은 김치를 씹어 함께 넘겼다. 그렇게 우악스럽게 식사를 해야만 방금 전까지 식당 문밖에서 일렁이던 그 복잡한 심경을 잠재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식사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은 되레 보는 이에게는 어색함을 자아낼 정도로 실로 과장된 섭취의 광경이었다.


  냄비를 반쯤 비웠을 무렵, 그의 얼굴도 이제는 가스불로 올라오는 열기와, 뜨거운 음식의 협동으로 인해 땀으로 번들번들해지고 있었다. 물수건으로 연신 얼굴을 닦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식사를 멈춘 채 땀만 닦아내리고 있었다. 아니 흐르는 땀을 물수건으로 받아내고만 있었다. 그렇게 얼굴에 수건을 받치고 있어야만 눈가에 흐르는 것들 역시 함께 받아낼 수 있었기에. 2년의 고생 끝에 고향에 돌아와 먹는 국수의 맛은 참으로 일품이었으나, 마을 어귀에 다다라서야 무엇이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꽁무니를 빼고 차량을 선회해야만 했는지. 자신이 왜 이렇게 누군가에게 부끄러운 존재였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회한과 후회가 한 순간에 몰려온 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는 와야만 했기에 이 모진 운명 또한 참으로 착잡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얼굴에 물수건을 대고 어깨를 들썩이던 그는 코를 크게 들이마셔 목 뒤로 넘기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래. 비로소 그렇게 도착한 고향이었다. 고향이라는 것은 그처럼 본인의 뿌리가 자리한 곳이자 피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곳이었기에. 오랜만에 먹은 그는 닭 칼국수의 맛 하나만큼은 여전히 일품이라고 생각하며 계산을 마친 그는 다시금 그의 마을로 차를 몰기 위해 트럭으로 다가갔다. 짐칸의 비닐 천막 사이에서 어머니에게 주려고 따로 산 과일의 선물용 포장이 초겨울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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