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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Oct 24. 2023

친구의 진심에 손가락 얹어주기

결혼식 편지 콘텐츠 첨삭기

“OO아. 부탁 하나만 할게.”


내일 모레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불쑥 내뱉은 말이었다.


“뭔데? 너 내일 모레 결혼식 아냐? 갑자기 축가라든가 하면 너 진짜….”

엄포를 놓은 것은 내 쪽이었다. 언감생심 갑작스러운 공연 등 난처한 부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내 주변에 네가 제일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아서….” 

말끝을 흐리던 친구는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보냈어.”


“뭘? 뭘 보내?”


“파일. 열어봐. 메신저로 보냈어. 너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친구가 말했다.


메신저를 열어보니 와 있는 것은 텍스트 파일. 그것도 새삼스럽게 ‘편지’였다. 거기엔 내 친구와 예비 배우자가 첫 만났을 때부터 시작해 둘이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지금 어떤 마음가짐이며, 결혼식 이후 앞으로는 함께 살며 어떻게 잘 하겠다는 등의 낯간지러우면서도 상큼한 신혼부부가 할 수 있는 다정하고 달콤한 약속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게 뭐야? 결혼식 콘텐츠야? 내가 읽어? 이걸? 너네 부부한테…?” 어리둥절한 내가 물었다.


“아니. 이건 내가 내 배우자한테 읽어줄 건데, 네가 좀 매끄럽게 다듬어 주라. 너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


 글을 아예 날 것으로 처음부터 지어 내려가는 것은 심적 고통이 큰 반면, 누군가 마련해 둔 것을 다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지 작업의 난이도와는 별개로 ‘친구가 결혼식에서 배우자에게 건네는 말인데 이를 내가 다듬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머뭇거렸으나 그것도 잠시, 얼마나 간절했으면 누군가의 손에 이를 맡겼을까 싶어 흔쾌히 승낙했다. 시간제한은 단 하루. 내일 모레 결혼식이면서 그걸 지금 의뢰하는 내 친구의 정신상태가 심히 우려스러웠다. 물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뼈대가 잡혀있으니 오래 걸릴 것은 아니었다만, 그날은 금요일인지라 내가 부서에서 회식이 잡혀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로맨틱한 글을 쓰고자 한다면, 맥주 2캔 즈음 먹고 자정부터 쓰기 시작하면 술술 풀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일의 내가 도저히 시간이 안 났다는 점이 가장 큰 난관. 친구에게 ‘내일 아침까지 어떻게든 회신해 주마.’고 약속한 후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아침이 마감 기한인 이유는 나름의 배려였다. 친구도 읽을 때 최소한 입에는 붙어서 너무 읽는 티가 나지 않게끔 자연스럽게 연습도 좀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역시나. 주말을 앞둔 날이었기에 당연히 회식에서는 과음. 눈을 뜨니 시간은 아침 아홉 시였다. 화들짝 놀라서 일어난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친구가 보내주었던 텍스트 파일을 열었다. A4 반 매 분량으로 적혀있던 친구의 편지를 왼편에 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화면의 오른 편에는 백지부터 시작해 다시금 새로이 친구가 썼던 문장을 고치고, 문단을 배열하고 표현을 바꾸어가며 나름대로 세련되게 윤색을 더해가는 나의 편지가 태어나고 있었다. 반 장 분량의 줄글이 두 장의 편지로 태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작업을 마친 후 친구에게 메신저를 통해 파일을 보내니 시간은 어느덧 열 시 이십 분. 전날 과음으로 깨질 듯한 머리에, 커피도 한 잔 마시지 못한 채 마감기한 준수에 성공했다.


“와. 역시. 네가 딱 생각나더라니까. 이럴 줄 알았어. 고맙다.”


메신저로 완성본을 받은 친구에게서는 만족을 표현하는 감탄사와 함께 끊임없이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아, 노고를 치하하는 커피 기프티콘도 함께. 내가 봐도 코끝 찡하게끔 잘 다듬은 편지를 보며 나 역시 뿌듯함도 잠시, 친구에게 물었다.


“야, 근데 왜 하필 나한테 보냈냐. 이걸?”


“글쎄. 모르겠어. 그냥 너 생각이 나더라고.”


 대체 내 친구는 평소의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글과 관련된 도움이 필요한 일에서 나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누군가 앞에서 글쓰기를 취미로 한다고 말한 적도 없거니와,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글과 관련된 업무들이 무수히 많기도 하다만은 이를 내가 대놓고 드러낸 적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 자랑할 만한 글재주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렇게 익명으로 뒤에 숨어 일기처럼 끄적이고 말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가장 가까이 지내던 친구는 나에게서 말 그대로 ‘활자’의 내음을 맡았나보다. 그러니 뜬금없는 부탁을 이렇게 했겠지.


 아, 물론 친구의 촉 또한 나쁘지 않았다. 주변의 그 많은 다른 사람들을 제쳐두고 내 친구는 한 번도 글이라는 것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를 떠올려 나에게 임무를 맡겼다. 그 막중한 임무는 마침내 결혼식 당일 편지 세리머니에 배우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완수되었다. 그 눈물은 친구의 눌러담은 진심 99%와 이를 조금 더 매끄럽게 다듬은 나의 글솜씨 1%가 더해져 만들어 낸 가장 값지고 귀한 것이었다. 나도 그 눈물을 보며 ‘그저 글쓰기에 당신이 생각났다.’ 라는 친구의 표현에 멋쩍으면서도 부담되고 또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한 과업에서 비로소 해방될 수 있었다.


이만하면 성공적인 결혼식 편지대행의 데뷔가 아니었을까? 다시금 친구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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