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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Oct 06. 2023

해방의 콩나물 국밥

지긋지긋한 상사로부터의 해방

“밥이라도 먹고 가요.”


A가 나에게 말했다. 밥?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할 만큼 신성하고 중요한 때를 내가 당신과?


A가 밥을 먹고 가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사내 인사발령 때문이었다. 내가 이 부서에 몸 담은 지는 약 2년 즈음. 2년을 절반으로 나누면 반은 비록 직장일지라도 행복하고 좋은 기억이 가득했다면, 나머지 반은 정말 천지차이로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만이 가득했다. 내 직장생활을 후자로 이끈 것은 바로 그 A. 어느 날 나의 곁으로 날아온 A는 정말이자 사내에서 악명이 자자한 그런 인물이었다.


A가 나의 직속 상관으로 온 이후 ‘갑질’ 이라고 하기는 애매한 스트레스가 지속되었다. 업무 범위 밖인 듯, 안인 듯 애매한 업무지시. 손바닥 뒤집듯 말 바꾸기. 기억 안 난다고 덮어 씌우기. 본인이 호감인 직원 감싸고 돌기. 자기 생각 강요와 아주 무례한 언행. 그에 더한 잦은 회식과 감정 분풀이 역할.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깨닫고 벗어날 결심을 하기까지는 꼬박 1년의 시간이 걸렸다. 멍청하게도 속은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고 더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의 정신적 대미지를 입고나서야 말이다. A가 처음 우리 팀에 왔을 무렵 기존 인원들은 말 그대로 ‘항복’ 선언을 함과 동시에 줄행랑을 쳐 버렸다. 결국 남은

것은 그 중 가장 막내였던 나 뿐. 그때 나도 도망갔어야 했는데... 선택을 주저했던 나는 결국 새로 온 동료들과 함께 캡틴 A를 내세우고 위대한 항해를 시작해야만 했다.


A의 강림 이후, 매일같이 지속되는 스트레스와 부담감으로 지쳐갈 때면 그래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보고 버틸 수 있었다. A는 공공의 적이었기에,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데에는 충분한 동기부여를 제공했다. 그 결과 나는 이제 이 부서를 떠나면서도 언제 어디서 만나도 든든하게 팀워크를 이룰 수 있는 직원 하나와, 어떤 점에서든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주고 내가 틀에서 벗어나 사고의 확장을 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반려(?)직원 또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민완(敏腕)이었으며, 또한 ‘척하면 착’ 할 수 있는, 서로가 같은 피해를 입고 이를 극복하고자 동질감으로 일어서는, 유대감으로 이루어진 자조집단의 일원이었다.


A 덕에 얻은 것도 있었다. 필요 이상의 업무 부담을 느꼈다치면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만큼 새로운 경험도 따라오기는 했다. 그 경험이 이 부서를 떠나서 써 먹을 수 있을 정도인지는 모르겠다만, 나름대로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지 않으니 별 수 없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버티고 버텨왔을 뿐이었다. 그랬던 직장생활의 암흑기는 결국 내가 A를 따로 불러 당신과 더는 일할 수 없음을 밝히는 ‘탈퇴 선언’을 하고 나서야 끝이 나게 되었다.

면담의 골자. 아 물론 대상은 홀수다.

A와의 면담이 끝나자마자 속전속결대로 내부 인사는 처리되었다. 사내에서 A를 감싸고 도는 소문은 무성했다. 상왕(上王). VIP보다도 더 높은 위치에 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월권의 황제.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보다. VIP위에 군림하던 그에게 나 하나쯤의 처분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웠을 것이다. 면담 후 인사발령문이 완성되어 사내 공지로 올라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일. 그렇게 나의 2년은 누구보다도 허무하게 마감되었다.


사내 공지 확인 후 아픔과 후련함으로 밤을 지새기를 며칠, 이윽고 떠날 일이 다가왔다. 마지막 부서 출근일, 함께했던 동료들과 A를 제외하고 따로 석별의 정을 나누는 점심식사 예정이었으나, 그것을 방해한 것은 A였다. 자기와 함께 팀원들과 점심식사를 하자는 권유. 당초 A의 발언 이후 팀원들 사이에는 5분보다도 길게 느껴지는 5초의 적막이 흘렀다.


“그래요. 밥이라도 먹고 가.” B가 말했다. 기왕 떠나는 김에 유종의 미를 거두고 가라는 듯한 말투와 눈짓이었다. 반대편에서 듣고있던 C는 말이 없었다. 나만큼 고통을 겪어온 그였기에 아마도 내 결정에 섣불리 개입하기보다는 내가 내릴 결정을 존중하는 모양이었다.


“까짓거 그러시죠.” 내가 말했다. 그래. 밥이나 먹고 끝내자 이 질긴 악연.


곧 B의 차를 타고 A가 가자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떠나는 나에게 A가 선사하는 것은 바로 콩나물 국밥이었다. 다행이었다. 떠난답시고 뭘 먹여 보낸다느니,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느니 수선을 떨었다면 A에 대한 가증스러움과 증오심이 폭발해 음식은 입에도 못 댈 뻔 했으니까. 그래 차라리 아무 날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굴어주는 게 A답지.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A는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지난 주에는 얼마였는데 연휴가 지나고 값이 올랐느니, 반찬이 달큰하니 입에 착 붙는다느니, 벽면에 붙은 사진이 강원도인 것을 보니 사장님 고향을 알겠다느니... 착 가라앉은 점심식사 분위기를 살려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A와 척을 지고 나가는 내 상황을 보고 B, C도 착잡한 심경인지 말이 없었다. 나 또한 멍하니 창문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주방에서 내 온 음식으로 식탁은 풍요로웠으나 이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황량하고 쓸쓸할 뿐이었다. 펄펄 끓는 국밥 앞의 나는 어느 극동의 겨울보다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래도 몇 술 뜨는 시늉은 해야겠기에 수저를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뚝배기에서 살짝 덜 익은 콩나물을 꺼내 아삭아삭 씹는 순간, 뿜어나오는 채즙만큼 격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 고생 끝에 결국 이런 말도 안 되는 점심식사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시큰해진 콧날을 감추고자 고개를 처박고 연신 수저로 국밥을 떠 먹었다. 훌쩍거리는 코는 아침부터 돌던 비염 기운 때문이라는 핑계를 늘어놓으며 열심히 냅킨으로 가져다 닦았다. 흐르는 땀을 닦는 척 하면서 맺힌 눈물을 닦기 위해 온 얼굴을 쓸어내렸다. 좋아하지도 않는 콩나물 국밥. A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되도않는 소리를 주워넘기는 중이었다. 끝내 우적우적 국밥을 씹어넘기며 비로소 나는 해방되었다. 참 길고 지루한 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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