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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Jun 16. 2024

프롤로그   산은 우리와 함께 있다

언제든지

6월 한낮, 관악산 정상 연주대 아래 솔봉


프롤로그   산은 우리와 함께 있다




한낮, 여름이 발등까지 따갑게 내린 날. 관악산에 앉아 있었다. 바람도 어쩌지 못하는 햇볕을 그냥 무덤덤하게 솔봉을 향해 앉아 받아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관악산을 즐기고 있다. 시간은 그렇게 모여들어 세월을 이루어낸다. 삶의 모습이다.



         김광섭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 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 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도 되고 명산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창작과 비, 1968. 여름호)

 


폰에 담아 다니는 김광섭의 시는 어느 때나 깊은 맛을 내놓는다. 산을 노래한 시로는 단연 가장 끌림이 있는 시가 아닐까. '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는다. 딱 가슴을 두드리는 시이다.



산은 늘 우리와 함께 있다. 산은 언제나 사람 사는 세상을 그리워한다. 머리 숙여 세상을 굽어다보고, 들어서는 사람을 은근하게 품에 안는다.



솔봉에 앉아 있던 사람이 큰소리를 낸다. 느닷없이 쩍 하고 갈라지는 한낮의 고요. 모두가 눈을 돌려 솔봉을 바라보는데, 무슨 일이냐고 눈을 냅다 는데, 관악산만은 오롯이 새파랗게 내리는 하늘이나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산은 그렇게 세상을 살아간다. 관대하게.



나무를 안아 숲을 이루고, 새를 불러 고요를 짓는다. 바람의 길을 열어놓고 햇볕을 받아들여 나무밑동까지 세세하게 나누어 다. 7년을 땅속에서 어둠을 더듬어 살아야 하는 매미유충에게까지 가느다란 빛이나마 넌지시 흘려주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또 하나의 세상을 내놓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기다린다.

지치고 무너지고 있는 사람들을.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배낭에 온갖 것을 넣어온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산밖이라면 가지고 다니지 않을 것도. 게다가 마음속에 가득한 탐욕까지.



용마능선을 따라 올라왔다. 조용한 산길에서 나를 흩트리는 것은 언제나 나의 발걸음이다. 밤새 쓸고 닦아 쌓아 놓은 정결한 고요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오르는 무거운 탐욕. 버려야 할, 그렇지만 쉽게 버리못하는. 



고려의 나옹선사는 탐욕을 버리라고 설파했다.


노여움도 내려놓고

아쉬움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청산에 앉아 청산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를 움켜쥐고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다. 나를 버려야 한다. 나를 버리는 것. 그것은 산을 따라 사는 것이다. 아닐까? 산이 되지 않고 탐욕을 버릴 수 있을까?



산을 닮아야 한다. 사람이 그리워 기슭을 끌고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내려오는 산처럼. 물같이 바람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나옹선사처럼.



산은 늘상 나긋나긋하게 길을 내놓는다. 마음으로 걸어야 하는 길을 산은 끝없이 챙겨놓는다. 산길을 걸을 때마다 산이 안겨주는 깨달음을 한아름씩, 두아름씩 받아 들어야 한다. 숲이 주는 그늘, 바람,  햇볕과 함께.



대로 산이 되어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고 싶다고 해도 산은 내려가라고 내려가라고 지친 내 어깨를 떠민다고 양희은 노래했던가. 하나의 유행가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예리하지 않은가. 나는 산이 될 수 없다. 복닥거리고 살아야 하는 가녀린 한 사람일 뿐이다.



내려가야 한다. 산이 그리워하고 굽어다보고 있는 세상으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산길을 걸으면서 문득문득 떠올려 본 마음을 이어보려고 한다. 산을 나오면서 적어두었던 청산과 함께 다독였던 생각들. 하찮은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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