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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Oct 29. 2024

탁구, 너 나왓! 2

ChatGpt4o가 그려준 그림


ㅡ탁구 어디서 배웠어요?

ㅡ네, 뭐 그냥 직장 동료에게....  

 어디까지 배우셨나요?

복지관에서 볼박스를 하던 탁구 선생님이 불쑥 묻는다.

ㅡ드라이브까지는 했는데 라켓을 놓은 지가 5년이 넘었어요.

잘 배우셨어요. 폼이 좋아요. 


퇴직하기 5년쯤 전에 학교에 탁구장이 생겼다. 식당을 새로 짓고 나서 조리실 공간이 놀고 있었는데 탁구를 잘 치는 행정실 직원 분이 시청의 지원을 받아 문을 열게 되었다.

탁구대 3대를 갖추고 로봇까지 구입해 놓고 회원을 모집한다고 광고를 했다. 무관심했는데 퇴근하다가 구경하려고 문을 열었다가 라켓을 잡게 되었다.


대학생 때 한 달 정도 쳐본 게 다인지라 모든 게 어설펐다.

ㅡ스키를 배우려면 자기 스키를 사는 거죠. 마찬가지로 라켓을 구입하면 훨씬 의지가 강해질 거예요.

감독님(나보다 5년 정도 어렸는데 그렇게 불렀다.)이 옆구리를 팍팍 찔렀다.

ㅡ낼 당장 살게. 그 대신 감독님이 책임져야 해.

도서관 전산화 업무를 몇 년 동안 같이 하며 친하게 지냈기에 말은 편하게 했다.


그때부터  매일 퇴근 후에 2~3시간씩 땀을 흘리며 배웠다. 처음에 4명이 시작했는데 대부분 중간에 그만 두어 나 혼자서만 배우게 되었다.


스트로크, 커트. 쇼트, 풀릭을 배우고 드라이브까지 배웠다. 몇 가지 고질적인 습관 때문에 감독님의 질책도 많이 받았다. 서비스 넣는 방법을 배우고 틈만 나면 300 개 이상 서비스 연습을 혼자 했다. 그러나 쉽게 되지 않았다. 방학 때는 하루 종일 연습하기도 했다.


ㅡ왜 탁구장에 안 와요?

일주일 넘게 탁구장에 가지 않았다. 탁구를 배운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ㅡ이제 탁구장 앞으로 지나다니지도 않을 거야. 진짜야.

정말이었다. 서비스도 안되고 리시브는 더 안 되었다.

열흘쯤 지났을까. 감독이 메신저를 보내왔다.

ㅡ 오늘 퇴근하고 쌍다리회관으로 밥 먹으러 가요. 매운 족발이나 실컷 뜯어보게요.


그래. 좋다. 그동안 가르쳐 준 것도 있으니 오늘 밥값이나 내고 쫑내자.


ㅡ형, 미안해. 내가 능력이 부족한 탓이야. 제대로 못 가르쳐서 그런 거야. 나도 그만할 거야.

감독님이 갑자기 형이라고 불렀다. 친근감이 확 밀려들었다.

ㅡ무슨 소리야. 감독님이 열심히 가르쳐 줬는데 내가 못 따라 간 거지.

막걸리 잔을 무수히 기울였다.

ㅡ형, 이거 테너지라는 러버야. 이거 붙이고 형 집 근처에 있는 아리랑 탁구장에 가서 열심히 배워. 나는 여기까지야.

감독은 러버를 던지듯 하고는 나가 버렸다.


테너지 러버는 버터플라이 제품인데 당시 70,000원이 넘었으니 양쪽 이면 15만 원 정도 되는 고급 러버였다.


그런데 이걸 던져주고 간다? 그러면서 탁구장 문을 닫겠다고? 내가 감독님 속셈을 모를까 봐.


다음날부터 우리는 다시 탁구장의 불을 밝혔다. 테너지 러버 값을 핑계 삼아 부부간에 식사도 많이 했고, 감독님 러버도 몇 번 바꿔드렸다.

그만큼 탁구에 몰입했다. 탁구는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고, 나는 대책 없이 빠져들었다.


ㅡ형, 게임을 하게 되면 탁구를 제대로 배울 수 없어.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어느 정도 감독의 공을 받아낼 수 있게 되었을 때

게임을 하고 싶다며 졸랐지만 감독은 받아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서비스를 넣고 3구 공격, 5구 공격하는 법을 연습했다. 감독이 넣는 서비스를 리시브하는 방법과 4구, 6구를 받아내는 방법도 질리도록 연습했다. 시스템 훈련이라고 서브를 넣을 때부터 공의 방향을 계산하고 공의 길목을 지키는 연습도 많이 했다.


퇴직이 가까워질 무렵 같이 운동하는 10년 정도 후배들과 계임을 하기 시작했는데 배운 대로 되지 았다.

체력의 문제도 큰 핸디캡이 되었다. 1년 정도만  더 하면 좀 칠 것 같았는데 퇴직을 하고 말았다.


ㅡ형, 연습과 게임은 또 수가 다른 거야. 게임 수가 있거든. 퇴직하고 집 옆에 아리랑 탁구장에 가서 게임을 많이 하면 될 거야.



2020년 2월에 퇴직했다. 그해 하필 코로나19가 유행하여 세상이 닫혀버리는 바람에 라켓을 잡아보지도 못했다. 전주를 떠나게 되어 낯선 곳에서 살다 보니 라켓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어느 날 아내가 탁구를 치고 싶다며 복지관  탁구교실에 등록했다. 탁구가 뭔지도 모른 상태에서.


ㅡ나 탁구장 안 갈 거야. 나만 못 치니까  재미가 없어.

두 번 탁구장에 갔다 온 날 아내는 포기를 하겠단다.


ㅡ당신 심정 내가 잘 알지. 내가 가르쳐 줄게.

ㅡ좋아. 그 대신 잘 가르쳐 줘야 해.


아내의 라켓을 구입하고 아파트 탁구장에  가서 잘 치지도 못하지만 열심히 가르쳤다.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부지기수로 한 말이다. 친구들 앞에서 직접 가르쳐보면 스스로 깨닫는 게 있고, 그렇게 배운 것은 완전히 실력이 되는 것이다.


ㅡ팔꿈치 아래로 친다고 생각하고 팔꿈치를 접어 올려.

ㅡ빠르게 접는 게 세게 치는 거야.

ㅡ공을 보고 여유를 가지고 정확하게 잡아서 쳐야 해.

ㅡ발가락에 힘을 주고 가볍게 잔 발을 디디며 쳐.

ㅡ탁구는 손이 아니라 발로 치는 거야.

ㅡ상대의 라켓 방향을 끝까지 봐.


전에 감독님이 나에게 했던 말 그대로다. 그때는 흘러 넘겨버리기도 했고, 이해도 못했던 말들인데 내가 그 말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때는 못 알아들었던 내용을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흘려듣기만 했던 것들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아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내가  배우고 있는 것이다.


ㅡ여보, 세게만 치려고 하지 마. 내가 세게 치면 상대가 받아치는 공은 더 세계 오는 거야.


그렇다. 내가 강한 회전을 넣으면 돌아오는 공은 그 이상의 회전을 머금게 된다. 내가 공격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내가 수세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2.7g짜리 플라스틱공에서 삶의 일면을 보게 된다.  일방적으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공격을 하다가 단 한 번 잘못하면 금방 수세에 몰리게 되고 실점하게 되는 게 탁구이다.


언제까지 탁구를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 힘이 부치기까지는 즐기려고 한다. 아내와 가볍게 랠리를 할 수는 있으니까 재미를 누려야겠다. 문제는 지하주차장에 탁구장이 있어 공기가 탁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탁구장으로 가야겠다. 회원가입하고, 제대로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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