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 프로그램에 탁구 과정이 있는데 오다가다 남들이 탁구를 치는 걸 보니 쳐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마침 다음 학기 수강생을 모집한다기에 온라인 신청을 시도했다. 정말 기적적으로 신청했다. 오전 9시부터 신청이라 5분 전부터 접속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접속이 안된다. 30분 정도가지났다.
ㅡ이미 마감되었을 거야. 포기해야지. 내가 무슨 탁구야.
ㅡ그렇네. 근데 왜 접속이 안되었지? 이상하네.
이미 30분이나 지났지만 장난 삼아 접속을 해봤는데 20명 모집인데 겨우 3명만 신청했다. 접속이 안되니까 모두 포기해 버린 모양이다.
등록은 했고 내가 쓰던 라켓을 꺼내보니 러버가 눌어붙어 버렸다. 일단 러버를 새것으로 갈아서 들려 보냈는데 라켓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갔으니 얼마나 무시를 당할까.선생님한테 5분 정도 레슨을 받고 나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다 올 게 뻔하다.
예상했던 대로 아내는 풀이 죽어서 왔다.
ㅡ나 탁구 안 할 거야.
ㅡ사람들이 상대도 안 해주지?
ㅡ진짜 너무 하더라.
ㅡ다 그런 거야. 누구든지 잘 치는 사람과 치려고 하지.
ㅡ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나를 벌레 보듯이 하는 거야.
안다. 아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나도 처음 탁구 배울 때 다 지나온 길이니까.
ㅡ그럼 내가 가르쳐 줄게.
ㅡ어디에서? 동네에 있던 탁구장도 없어졌잖아.
ㅡ지하 1층 주차장에 우리 아파트 탁구장이 있는데관리사무소에서 키를 받아서 사용하면 된다고 했어.
ㅡ그래? 어떻게 알아?
ㅡ내가 오늘 다 알아봤지.당신이 당하고 올게 뻔하니까.
ㅡ그럼 잘 가르쳐 줘야 돼.
아내 라켓도 구입하고 연습용 공 150개를 구입했다. 다이소에 가서 볼박스용 바구니도 샀다.
참 난감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할까. 나도 잘 치지 못하는데. 맞다. 내가 배울 때 감독님이 하던 대로 해보자.
ㅡ자, 봐. 라켓을 악수하듯이 잡고 집게손가락은 이렇게 최소한으로 러버를 받쳐야 해.
ㅡ 발을 어깨너비보다 약간 더 벌리고, 무릎은 기마자세로 굽히고, 라켓의 위치는 옆구리에....
ㅡ라켓을 조금만 뒤로 가게 하고, 그 상태에서 라켓을 눈썹까지 올려보는 거야. 이렇게. 해봐.
그립과 스텐스, 스윙에 대해 말해줬다. 일단 쉐도우 모션으로 스윙폼부터 시전 해보게 했다.
ㅡ자, 이제 공이 정점에 올라왔을 때 라켓으로 쳐 봐.
테이블에 수직으로 떨어뜨려 준 공을 아내는 맞추지도 못했다.
어색하다. 탁구에서 가장 기본은 스윙이다.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물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재미없고 답답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 길로 이미 들어서버린 걸. 답답해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가르쳐 보자.
아내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스윙을 못했다, 인터넷에서 티티볼이라는 탁구 연습기를 샀다.
스윙과 공을 맞추는 연습을 했다. 집에서 하는 거니까 언제든 할 수 있다. 라켓에 공이 맞는 느낌, 라켓이 이동하는 궤적을 익히라고 주문했고, 아내는 틈만 나면 티티볼을 끼고 살았다. 그러나 70이 가까운 노인네에게는 기대했던 만큼의 도움은안 되었다.
탁구장에서 연습을 하고 또 연습을 했다. 거의 매일 두 시간 정도씩 했다. 그 결과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에는 어느 정도 공을 칠 수가 있게 되었다. 복지관에서는 속도 모르고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칭찬을 받는다고 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번다더니 영락없이 그쪽이다.
ㅡ근데 왜 당신과 선생님이 가르치는 게 달라?
두 달 정도 지나자 폼이 잡히는 듯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툭 던진 말이다. 사실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과 다를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말도 가르치는 때마다 달랐다.
ㅡ더 중요한 건 내가 한 입으로 두 말, 세 말하고 있다는 거야.
ㅡ맞아. 당신은 더했지. 언제는 팔꿈치 아래로만 치라고 하고, 언제는 어깨를 써서 치라고 하고.
ㅡ그건 당신이 올바른 폼을 보여주지 못하니까 그런 거야.
탁구는 참 힘든 운동이다. 겨우 2.7g의 공을 치고받는 경기이고 보니 조금만 폼이 흐트러져도 공은 엉뚱하게 날아가게 된다. 그래서 어느 경기보다 폼이 중요하고, 그만큼 어렵다. 그 어려운 걸 우리는 하고 있다.
ㅡ잘 치는 게 좋겠지만, 즐겁게 치는 게 더 좋아.
넉 달이 지난 지금은 스무 번 이상 공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 아직은 덜 다듬어졌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ㅡ내가 다 갚아줄 거야. 나 무시한 사람들 두고 보라고.
ㅡ여보, 즐겁자고 하는 건데 갚아준다는 게 다 뭐야. 잘 놀아야지.
ㅡ그런가? 맞네. 즐겁게 놀아야지.
ㅡ그래. 겸허한 마음.
ㅡ맞아. 늘 겸허한 마음.
포핸드가 조금 익숙해졌으니까 이제 백핸드를 가르쳐야 하는데 아내가 그 스트레스를 잘 넘기고 커트, 드라이브까지 잘할 수 있었으면좋겠다. 복지관에서 벌이는 탁구판에서도 열심히 즐기고 재미나는 시간을 펼쳐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