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같은 춘양역 텅 빈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비가 올 것처럼 짙은 구름이 발목까지 내려앉았지만 열차는 오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고 나는 혼자였다.
태백의 추전역은 문을 닫고 세상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사람이 오지 않는 까닭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이 오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린 까닭이다. 옹색하게 들어앉아 추전역을 구경이나 해보려는 사람들을 기다리던 허름하기 그지없던 손바닥만 한 카페마저 문에 못질을 하고 돌아서 버린 추전역. 카페 주인보다 추전역을 지키던 사람들이 먼저 떠났다. 역무원이 입던 옷을 빌려주고, 플랫폼에서 역무원처럼 행동하며 그 기분을 느껴보게 도와주던 사람들, 석탄을 캐던 시절의 활발하고 부유했던, 그래서 사람들이 시쳇말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는 추전역을 지켜보려고 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추전역의 문을 닫고 돌아섰다. 커피잔을 들고 어떻게든 추전역에 남아있으려던 사람들마저 가버린 추전역에는 이젠 바람조차 불지 않는다. 세상은 변하는 거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추전역.
동해에서 동대구를 오가는 열차가 하루에 몇 번 서서 허리가 굽어버린 친정엄마를 보러 오는, 자신이 이미 할머니가 되어버린 딸을 내려놓는 춘양역, 그 딸의 효심을 기다리고 있던 후덕한 아줌마 택시기사. 저마다의 이야기로 춘양역에 내리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리는 작고 작은 춘양역. 무리하게 철길을 돌려 '억지춘양'이란 말이 생겨났다는 춘양역은 오늘 아침 참 쓿쓸하다.
춘양역은 그대로 춘양역이어야 한다. 언제부턴가 문이 닫힌 '태양다방'이 '여기는 금연구역'이라는 무색하기 그지없는 안내판도 거두지 못한 채로 후질그레 서 있어도. 외씨버선길을 걸으려는 걸음으로 나 같은 나그네가 혼자, 좀 쓸쓸하다는 생각으로 서있어도, 열차가 조금 늦게 올지라도 춘양역은 그냥 춘양역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인터라켄의 산악열차처럼 춘양역, 분천역, 양원역, 승부역에서 사람들은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 괜히 점심이나 먹는다는 핑계를 들고 교외선을 타는 타이중 사람들처럼 우리는 춘양역을 춘양역으로 지켜야 한다. 10분이나 늦게 와서도 미안한 기색 없이 참 느리게 운행하는 1671호 무궁화호 같은 열차가 더 느리게 다니는 춘양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