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씨버선길에서
찬바람이 불었으나 하늘을 돌아내리는 햇볕은 따사로웠던 날, 새벽부터 외씨버선길을 걸었다. 옷깃을 여미고 걷다가 산자락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임도에서 무너져 내리는 듯 쏟아지는 햇볕을 감당해야 했다. 몽글몽글 영글어가는 가을의 말간 햇볕은 나뭇가지를 타고 흘러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 차라리 불꽃이었다. 그렇게 단풍잎은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내 안의 깊은 곳까지 붉게 물들었다.
車坐愛楓林晩수레 멈추고 앉아 늦단풍을 끌어안는데
霜葉紅於二月花서리 맞은 단풍 2월 꽃보다도 더 붉어라.
杜牧 '산행((山行)’에서
나무는 햇볕을 보듬고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데, 나는 50리를 걸어도 가을을 붙잡지 못한다. 그러니까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홀로 붉은 단풍. 아무리 걸어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하는 산길은 이야기 하나 내놓지 못한다. 홀로 걷는, 화두話頭 하나 챙기지도 못하는 나는 두목의 시구詩句를 가다듬지 못한다. 그렇게 걸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붉은 게 죄다 가을이 아니었다. 나의 걸음은 이미 의미를 잃고 말았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그리웠던 게다.
산골짝 깊이깊이 파고들어 간, 그 외롭고 쓸쓸함 속에서도 눈을 껌벅이고 있는 말간 이야기들을 보고 싶었다. 4,000 평 과수원에 사과가 열리기 시작하면 서울에 사는 3남매 불러 모아 잔뜩 부려먹을 생각부터 먼저 한다는 노인의 주름진 얼굴과 그의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던 담배 한 개비,
ㅡ 아이들은 서울에서 가정을 꾸리고 자기들의 무늬로 삶을 그려내고 있으니 됐고, 나는 내 하고 싶은 대로 오늘 하루를 즐기는 거죠. 이젠 나부터 생각하는 그게 노년의 즐거움이 아닌가요?
그랬다. 나도 그렇지만 나이 들면 그냥 하루하루를 재밌게 사는 게 최고이다. 내 하고 싶은 대로. 아무리 자식이 중하다고 하지만 이제는 나를 앞세워야 하겠다. 당나라 시인 두목이 이미 1.200년 전에 서리 맞은 가을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고 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