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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벌레 Jun 11. 2021

5월에 읽은 책

1. 책갈피의 기분 : 김먼지


예전부터 우러러봤던 직업  하나가 편집자다. 동시에 이번 생에는 절대로 엄두가  나는 일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95% 정도는 편집자의 고충에 관한 무시무시한 증언이다. 마치 편집자로 일하는 친한 친구의 술주정을 듣는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일에 대한 '열정'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놈의 열정. 나도 이제 5 정도 회사 생활을 해왔고 꼼꼼함과 성실함만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도무지 열정만은 어떻게  수가 없다. TV  신입사원이나  책의 저자처럼 "멋지게 해내고 말 거야! 잘하고 싶어!"라는 기분을 거의 느껴본 적이 없다. 반면  사람은 나보다 500배는  많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뜨거운 마음만은 잃지 않는다. 나도 그런 기분을 언젠가 느껴볼  있을까?

" 자리를 빌려 모든 출판사 대표님과 독자 여러분께 알리고 싶다. 오타는 저절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쇄소와 제본소  어디쯤에 사는 오타의 요정이 편집자를  먹이려고 일부러 끼워 넣는다는 사실을. 진짜로, 정말로."


2.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 : 박완서


나는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처럼 아픈 역사적 시기를 배경으로  소설이 싫었다. 암울하고 괴로운 장면만 펼쳐질  같았다. 책을 읽는 소중한 시간을 이왕이면 아름다운 외국 풍경을 상상하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고민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감하며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 편견을 깨고 내가 읽었던  어떤 소설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풍경, 나와 비슷한 감정, 그리고 웃음이 나올 만큼 즐거운 장면으로 가득한 책이었다. 교과서의 흑백사진처럼 낮에도 어두웠을 거라고 상상한  시간에도 이렇게 평범하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니.  사실이 위로가 됐달까? 후반으로 가면서 괴로운 상황이 점차 늘어나지만, 그것조차도  예상만큼 캄캄하진 않았다. 멀게만 느껴졌던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너무나 애틋하다. 이토록 많은 일을 겪고 느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가, 그리고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계속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불현듯 텃밭 사이에서 감자꽃처럼 웃던 엄마 생각이 나면서 가슴이 깊이 아렸다. 최근의 일이라기보다는 진행 중이던 일이었건만 중턱이 잘리고 나니 먼먼 옛날  같았다.  땅에 당장 지상의 낙원이 온다고 해도 우리 엄마가 , 아기자기한   텃밭의 꿈과 바꾸고 싶지 않다는 반혁명적인 생각이 들었다.


3.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박완서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나보다 훨씬 힘든 시간을 살아낸  세대가 있다는 사실은 잊고 싶지 않다.  책을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 또한 '나 때는 말이야' 되지 않을까? 나도 나름대로 고충으로 가득한 젊은 날을 보내고 있지만, 스무 살에 6.25 전쟁을 겪고, 이념 간의 싸움에 휩쓸려 피난을 반복하고, 가족을 잃는 이야기를 보면 절로 숙연해진다. 속사정이야 어찌 됐든 겉모습만큼은 화려하고 깨끗하게 변해가는  나라를 보면서 저자가 느꼈을  오묘한 감정도 조금은 상상이 간다. 이제는 너무 멀어진 과거를 기록해두고 싶은 심정도. 동시에, 힘든 일로 가득해 보이는  시절에 조금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모든지 맨살로 겪으며 살았던 시기라고 느껴진달까? 괴로움도 컸지만 순간순간 나타나는 행복이 너무나 눈 부셔 보였다. 나는 요즘 기쁨과 슬픔  자체를 느끼기보다는 누가 먹다가 뱉은  다시 먹는  같다는 기분이  때가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책에 적힌 시절이 너무나 생생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
 태평성세를 향하여 안타깝게 환기시키려다가도 변화의 속도가 하도 눈부시고 망각의 힘은 막강하여, 정말로 그런 모진 세월이 있었을까, 문득문득  기억력이 의심스러워지면서, 이런 일의 부질없음에 마음이 저려오곤 했던 것도 쓰는 동안에 힘들었던  중의 하나다.


4. 인생은 소설이다 : 기욤 뮈소 / 양영란


드라마나 책에서 좋아하는 등장인물이 죽으면 진짜로 정말로 슬플 때가 있다. 픽션일 뿐이라는 이성적인 말로 위로해봐도  마음이 듣지 않을 때가 있다.  책에 나오는 '픽션과 현실의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다' 말이 와닿는 이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나왔듯이, 정말로 소설  인물이 작가의 손을 벗어나 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나 보다. 어떤 기분일까? 역사책에 나오는, 몇백 년 전에 이런 사람이 살았다는  문장 만으로도  사람의 존재를 믿을  있다면 소설  인물이 다른 차원의 세계에 실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가진 기억들도 사실은 확실한 증거가 없는  대부분인데. 그렇다면 '인생은 소설이다'라는 제목도 절로 이해가 간다. 현실은 100% 진실이지만 픽션은 100% 거짓이라는 이분법을 탈피할 이유가 차고 넘치니까. 개인적으로  소설  등장인물 중에 호감이 가는 인물은 별로 없었지만, 다른 (평소에 좋아하는) 소설의 등장인물은  애정이 가게 만들어 주는 내용이었다. 쓰고 보니  웃기지만.

나는 평생토록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다고 생각해왔다픽션보다  진실에 가까운  없으니까인간이 현실 속에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다왜냐하면 인간이 픽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마치 실존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결과적으로 실존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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